첫번째 에세이는 '스파이크'이다. 스파이크는 구빈원에 딸린 부랑자를 위한 임시 무료 수용소인데, 조지 오웰이 직접 겪어본 스파이크에서의 생활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들만한 대접을 받았다. 더러운 욕실과 형편없는 식사는 그렇다치더라도 행동의 자유가 제약된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다. "무지한 사람이라고 해서 온종일 아무 할 일 없이 가두어둔다는 건 어리석고도 잔인한 짓이다."(p.15)라고 말하고 있다. 무료함이 권태감이, 따분함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미치게 만드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지극히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정책이며, 부랑자들을 자신들과 동일한 인격을 가진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치안과 위생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 대상으로만 본 지배 계층의 시각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자유과 바꿔야만 겨우 면할 수 있는 굶주림과 추위라니. 둘 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이 아닌가.

그리고 흥미로운 존재가 있었는데,음식이 남아도 부랑자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버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목수였다. 그가 스파이크를 운영하는 자들이나 정치인들의 생각에 세뇌되어 버린 것인지, 여타의 부랑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차별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번째 에세이는 교수형이다. 그는 버마에서 경찰간부 노릇을 할 때 교수형을 참관했었나 보다. 교수형이 있는 날 아침의 풍경을 감정은 배제한 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재소자들에게 아침을 먹이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 조금 꺼림칙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형무소장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조지 오웰도 당시에는 사람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었나 보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본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p.26)" 처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죄수는 람! 람! 람! 하면서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곧 죽음을 맞이할 죄수는 오히려 차분하였고 그 소리를 듣는 사형 집행을 참관하는 이들은 견디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양심을 울리는 소리라서 듣고 있기가 거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집행이 끝난 뒤, 그들은 그러한 마음을 털어버리고자, 죽음을 희화화시키며 부러 시끄럽게 떠들고 의미없는 웃음을 남발했다.

세번째 에세이는 '코끼리를 쏘다'인데, 그는 사실 코끼리를 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총을 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쏘지 않고 돌아간다면 자신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바보처럼 보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불필요한 살상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하고 말았다. 살면서 나의 의지 또는 신념과 관계없이 다수와 다른 길을,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일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독재화된 사회가 아니고서는 대중의 눈을, 대중의 생각을 항상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순 없다. 대중의 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아마 그는 이러한 심리적 압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느낀 것 같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고 비록 다수가 비판이나 비난하더라도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네번째 에세이는 '서점의 추억'는 그가 1934.11~1936.1까지 런던의 북러버스 코너라는 헌책방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했을 때의 경험을 담고 있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엽란을 날려라>라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의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자기네 서점에 오던 손님들 상당수에 대한 평은 서점에 와서 특별한 기회를 누리려고 하는 성가신 부류라는 것이다. 그 부류의 예로 1897년에 읽은 너무 좋아하는 책인데, 제목도 저자도 내용도 기억은 못하지만 오로지 표지색만 기억하는 노부인을 들고 있는데, 묘사가 꽤나 재밌다. 바로 조지 오웰 특유의 유머와 독설인가 싶었다. 빈약하기 그지 없는 정보를 주면서 책을 찾아달라는 것도 직원 입장에서는 황당하지만 너무 좋아했던 책인데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이든 저자든 내용이든 셋 중의 하나는 기억해야 할 것 아닌가. 어차피 그 노부인에겐 그 책이 그 책일테니 표지가 빨강색인 책 아무거나 줘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읽는 입장에선 '진짜 성가시네 ㅋㅋ'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대여문고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이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고상하는 척하는 취향 말고 진짜 취향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들, 즉 고전은 옛날 소설로 취급되면서 읽으려고 하지 않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것은 없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강의 내용은 알아서 마치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언젠가는 읽을 생각은 있지만 당장은 아닌 그런 류가 고전의 위상인가 보다. 하긴 나만 해도 읽지는 않았지만 읽은 것 같은 책들이 꽤나 많으니깐. 마지막으로 그는 서점에서 일하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책을 보니 지겨워졌고, 팔자니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업이 되면서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잘 적용되는 얘기인가 보다.

다섯번째 에세이는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하다' 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처음에 이해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스페인 내전의 실상은 정부군과 프랑코의 파시즘간의 대결이 아닌 혁명과 반혁명 세력(노동자들 vs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연합 세력)간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는 대체로 좌파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매우 혁명적으로 위장한 파시스트를 지칭하는데, 스페인에선 견해가 공산당보다 왼쪽이면 트로츠키주의자로, 적어도 배신자로 낙인 찍혀 탄압당하는 형국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정부군에 반대하는 모든 야당과 신문은 탄압당하있으며, 이것 또한 정부군이 맞서 싸우고 있는 프랑코의 파시즘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스페인 내전의 진실을 파시스트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영국에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좌파 신문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쁘게 인식될 것을 우려해서 이런 식으로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단정해 버리는 사람들이 꽤 많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진실은 불신을 낳게 된다. 싸잡아서 욕을 먹더라도, 뭇매를 맞더라도 드러내는 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모로코)마라케시는 일곱번째 에세이이다.

등이 다 벗겨진 당나귀를 보고서는 안쓰러워할 수 있지만 정작 장작더미 밑에 웅크린 노파는 눈에 띄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지적과 세네갈 흑인 군인이 자신에게 보인 존경의 표정과 자신을 비롯한 백인이 가진, 흑인을 언제까지 이용해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더 연민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죽도록 일만 하며 곤궁하게 사는 인간의 곤경에는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까지 끌어 올릴 수밖에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음이 아닐까? 동물한테처럼 마음 내킬때만 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것만으로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예 원천봉쇄해 버리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