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는 인류의 요긴한 발명품이다. 무거운 물건을 쉽게 옮길 수도 있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배를 제외한 거의 모든 탈 것은 바퀴를 이용해 굴러간다. 수레바퀴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톱니를 달고 톱니바퀴가 되어 기계를 움직이기도 하고, 물레바퀴가 되어 물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방앗간의 연자방아가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하나의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와 같다. 숨이 붙어있는 한 인생은 계속 굴러간다. 마음대로 멈출 수 없다. 이 수레바퀴는 이 세상 사람의 수만큼 아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각자의 수레바퀴를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는 똑똑하고 너무나 성실한 소년이다. 목표가 있다면 과정이 힘들지라도 열심히 달려가는 인내력도 있었다. 주위 환경,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기도 하다.
소설은 한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한스의 눈으로 보는 주위 환경은 헤르만 헤세의 다른 글에서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 펼쳐진다. 한스는 사계절을 즐기며 산에서 돌아다니고, 강에서 낚시를 한다. 철마다 찾아오는 여러 가지 축제, 사과즙 짜기 같은 동네 축제도 있다. 한스가 가게 된 신학교 건물과 주위환경도 너무나 아름답다.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변하는 산책로, 겨울에 얼음에 미끄러지며 놀 수 있는 호수가 있다.
이런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한스는 고뇌와 피로에 휩싸여 지냈다. 공부를 잘 하는 한스에게 선생님과 아버지는 주시험 통과, 신학교 진학이라는 과정을 정해준다. 그들은 그 길이 바르다고 열렬히 믿고 있다. 어른들의 바램을 따르는 과정에서 한스는 많은 것을 빼앗기게 된다. 소년들이 흔히 누리는 취미와 놀이를 할 수 없게 된다. 한스가 특별히 재능을 보인 낚시도 그만두게 된다. 한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도리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대신 몸이 약한 한스에게 지나치게 많은 공부가 배분된다.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는 허영과 실체없는 기대도 덤으로 얻게 된다.
영민한 소년인 한스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그가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이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의 친구 하일너는 자신의 갈 길을 찾아 학교를 박차고 나가 성공한 어른이 된다. 신학교만이 어른들이 말하는 행복과 성공의 가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신도 아니고 남의 일생을 어떻게 좌지우지하고 결과를 예견할 수 있겠는가? 다른 동네 친구들도 고향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 잘 지내고 있었다. 한스는 자신만 뒤처지고 돌이킬 수 없는 실패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스는 실패자가 아니었다. 원래 손재수가 좋았기 때문에 훌륭한 기계공이 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기회가 있었다. 한스는 어른들이 씌운 굴레를 벗지 못하고 연자방아처럼 무거워진 인생에 무게에 짓눌려버리고 만다.
공부만 잘하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우월한 종족으로 변모하여 다른 세계에라도 사는 것처럼 묘사하는 잘못된 이야기가 한스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내려온다. 왜 남들보다 우월한 것에 인생의 가치를 두는가? 남들은 내 인생에 신경쓰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해서 쓰면 된다. 공부를 잘 하고 좋아하면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고, 손으로 만드는 것이 좋으면 손을 쓰며 살아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이 것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21세기 현대에는 한스의 시대보다 더 많은 한스가 자라나고 있다. 하일너 같은 아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일너는 많은 비난을 받고 퇴학처분을 당했다. 구둣방 아저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필요하다. 최소한 한스의 적성이나 바램을 무시하고 정해진 과정만을 강요하는 시스템과 사회분위기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