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본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나 가끔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제목이나 내용 한 토막 제대로 기억나는게 없으니 찾을 수가 없다. 눈 덮힌 우중충한 숲 속, 회색 누더기를 걸친 무서운 마녀 할머니가 살고, 그 집은 혼자 움직이는 영화였다. 그 영화 속 집이 좀 높았던 건 기억이 나는데, 다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집 혼자 돌아앉기도 하고, 마녀나 주인공 꼬마의 말을 들어줬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닭다리가 달린 집’을 봤을 때 추억이 눈 앞에 다가온 느낌이었다. 작가는 어렸을 적 들었던 북유럽 신화와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신화를 읽고 이 책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신화가 누군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되고, 다시 소설이나 영화가 되며 다른 어린이를 만나며 끊임없이 살아있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현대는 영화, 소설로 모습을 변모해서 살아간다. 허구의 존재라도 현실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닭다리 달린 집에서 할머니와 사는 마링카라는 13살 소녀다.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본 영화에 나오는 마녀와 비슷한 존재이다. 할머니의 직업은 마녀는 아니고 ‘야가’이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북유럽 신화처럼 거칠고 무섭지 않다. 할머니는 음식을 잘하고 따뜻한 할머니다. 마링카는 닭다리 집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온 여자아이로 예비 야가로 운명지어져 문명과 동떨어진 채 살아왔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여느 13살짜리와 똑같다. 어린이를 지나서 사춘기로 접어들며 환경에 불만도 가지고, 반항도 하며 막연히 일반 인간 세상을 동경한다. 북유럽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음울한 숲이나, 트롤이나, 납치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소설은 신화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마링카는 살아본 적 없는 삶을 동경하며 할머니한테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환상 소설 속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 주인공으로서, 마링카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다. 마치 어린애가 놀다가 집에 불을 지른 듯한 심각한 사안이었다. 마링카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이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동경하던 일반 어린이의 삶을 잠깐 맛본다. 그 과정에서 일반 세계가 자신이 동경하는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링카는 현실의 삶과 동경하던 삶에 대해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책 말미쯤에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는 성장 소설이라도 걱정이 되었다. 마링카가 천애 고아가 되어 길에 버려질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우주는 철없는 소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나는 시리즈 물이 될 수 있는 열린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다리가 달려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이야기 속이라도 삶에 대한 진실이 들어있을 수 있다. 정말 먹을 것도 없는 극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소중한 축복이다. 꿈과 이상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내 현실에 맞는 옷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북하고 불쾌할 뿐이다. 올바른 결정은 때로는 행운과도 같은 결과를 줄 수도 있다.

억대 연봉 애널리스트의 지하 경제 실사 탐험기. 저자는 왜 위험을 무릎쓰고 지하경제의 실제 세계로 뛰어든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저자 서문에 나와 있다. 수 많은 영화와 소설이 범죄자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멋지고, 매우 부유하게 묘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감상이 끝난다. 놀랍게도 저자 코너 우드먼은 실제 범죄자들의 실제 사업과 재산의 출처를 알아보러 세계 곳곳의 범죄현장에 뛰어들겠다는 결정을 한다.

실제 범죄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수 많은 장면은 영화보다 더 긴장감이 들고 스릴이 넘쳤다. 책을 읽으며 이런 스릴과 긴장은 오랜만인 듯하다. 저자는 놀랍게도 범죄 현장의 피해자인 척 범죄자들에게 ‘접근’한다. 다 접근한 범죄자를 놓칠 때도 있고, 범죄를 포착하려고 시도한 일에서 의외의 다른 범죄 수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는 무서운 범죄 현장에 들어가는 건데, 마치 낚시를 할 때 같은 즐거움과 스릴을 느끼며 접근한다. 물론 긴장되고 무섭다는 언급도 있다. 이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즐거움 쪽이 더 크니 하는 일일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스릴을 느끼며 범죄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니, 저자가 마치 영화 주인공인 스릴러라도 보는 것 같다. 실제 현장이기 때문에 흔한 영화와는 달라 내가 읽는 챕터가 어떻게 끝날지 예상도 안 된다.

저자는 범죄자들과 금방 친해진 것처럼 범죄에 대해 아주 솔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해줘서 저자도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도 대단하다. 여러 번 한 일이라 저자의 노하우도 느낄 수 있다. 범죄자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일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일생을 망칠 수 있는 일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이런 이야기를 참으로 열심히 들려주고, 범죄 현장을 실제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느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기를 동아시아가 치안이 좋은 편이라 동아시아인들 해외 범죄에 취약한 편이라고 한다. 나 같은 동아시아인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위험한 범죄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멕시코나 인도같이 위험할 것 같은 나라말고도 영국 버밍엄 같은 도시도 범죄의 온상이라니 정말 놀랐다. 버밍엄이 세계 최대 대마초 재배 시장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해외 나가기 무서워졌다. 역시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

이 책 중 스페인과 영국 편에서는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나온다. 요즘 세계 이슈인 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빈곤한 나라 사람들을 부유한 나라로 옮겨서 복지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기반이 없는 곳에서 외부인으로 떠돌며 생계를 위해 범죄에 빠진다. 또한 그것을 개인의 타락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핑계를 덧붙인다. 본인의 나라에서 국가 발전에 힘을 써야 하는 젊은이가 외국에서 범죄자가 되고 남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 경제 이주민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아하고, 규칙을 지키고, 동정심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돕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범죄자들은 능력있는 척 떠들어대지만 결국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에 기대어 살고 있다. 인류 대부분이 그들 같으면 생산적인 일은 안하고 서로 사기치고 잡아먹다 괴멸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저자 코너 우드먼과 같은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이상한 곳에는 가지 말고,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어렸을 적 축약본 동화로 읽었던 '호두까기 인형'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다. 밤에만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과 전투, 공주님, 헌식적인 기사 호두까기 인형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서구권 병정 인형, 호두까기 인형, 궤종 시계 등은 동화의 마법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눈에도 축약본은 뭔가 많이 빠진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보다만 허전한 느낌을 성인이 되어 다시 보게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은 고전 동화의 틀을 빌려 쓴 시공간을 뛰어넘는 환상 동화이다. 선한 인물이 악한에게 저주를 받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고통을 받다가, 저주를 풀고 행복해지는 고전 동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액자형식도 아니고, 현재와 과거, 현실과 마법의 나라,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한 설정이다. 현실과 중첩되는 환상의 세계는 어린이들이 흔히 상상하거나 동화책을 통해 보는 마법의 세계이다. 잘생긴 청년은 못생긴 괴물로 변한다.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고, 과자로 만든 성이 있고, 꿀이 강처럼 흐른다. 쥐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인격을 가지고 있다. 상상같은 세계가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현실과 마구 이어진다. 현실인 듯 비현실인듯, 둘이 분리가 되지 않는 세계관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마법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현대 소설이나 다른 동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비한 느낌이 든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생각보다 그로테스크한 동화다. 환상의 세계도 잘 지켜지려면 군대와 전쟁이 필요한가보다. 시공간을 왜곡하며 긴 세월을 따라다니는 살벌한 원한과 저주, 전쟁과 유혈사태가 있다. 인간은 수명이 있어 죽으면 끝나기나 하지, 환상의 세계 주민들의 원한은 끝이 없는 듯하다. 이 저주가 사람에게까지 미치기도 한다. 여주인공인 어린 마리는 환상 세계 주민에게 현실에서 여러번 공격과 협박을 받았다.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쳐서 누워있기도 하고, 한 밤중에 정체 불명의 쥐한테 협박도 받고 물건을 빼앗긴다. 어른들에게 호소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실질적 위협에 호소할 곳이라고는 살아 있는 듯 아닌 듯한 호두까기 인형 하나뿐이다. 드로셀마이어 대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조력자이지만 끝까지 음칙하고 수상쩍다. 내가 어렸을 때 본 동화가 축약을 시킨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유치원생이 보기에 이해가 어렵거나 살벌한 장면은 빼 놓았던 것 같다.

 피곤한 현실을 잠시 떠나 글귀가 전달해주는 환상의 세계가 필요한데, 어렸을 때의 호기심도 해결해주고, 신비하면서 조금 무서운 느낌도 있으면 좋고, 해피 엔딩도 필요한 나같은 독자에게 반가운 동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