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점점 늘어나는 짐들 때문에 집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집을 예쁘게 꾸미고도 싶었지만, 너무 많아진 짐들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나름 그때그때 필요 없는 것들은 처분하기는 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본 말이 생각났다. 인테리어의 시작은 버리는 것이라고. 이 책 역시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는 것을 수납, 정리의 2단계로 놓고, 수납과 정리에 앞서 먼저 해야 될 것으로 삼고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그냥 정리습관도 아니고 엄마의 정리습관이었다. 엄마로서 왜 정리습관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명확하게 알려주며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맞다. 집이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으면, 공간 뿐 아니라 시간마저 비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을 감소시켜 엄마와 아이들 간에 가질 수 있는 교감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책에서 보여 주었던 실험처럼 같은 요리를 만드는데 공간활용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요리 시간이 달라지는 것처럼, 공간활용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살림하는데 들이는 시간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정리정돈으로 문제를 해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과 육아로 힘들다고 힘들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공간활용을 통해 효율적인 시간활용해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야지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은 아이들도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집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집이 지저분하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다. 아이들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사물이나 환경을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요즘 들어 사람의 이름을 인식하고, 물건의 주인을 알고, 자기 물건에 대해 집착을 하는 우리 첫째 아이. 음료수를 다 마신 다음에는 음료수통을 싱크대 안에 넣을 줄 알고, 마신 컵은 식탁 위에 놓을 줄 알고, 책은 책꽂이에 꽂을 줄 아는 우리 아이. 지금이 우리 아이에게 정리정돈의 습관을 잘 가르쳐야 하는 때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 시기에 엄마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지 싶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효율적인 공간활용과 효율적인 시간활용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래본다.

 

물건을 수납하고 정리하는 5단계

1단계 : 물건을 보관하는 기준을 세운다.

2단계 : 필요 없는 물건은 처분한다.

3단계 : 놓을 장소를 정한다.

4단계 : 넣는 방법을 정한다.

5단계 :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 <엄마의 정리습관> p97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  

표지에서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읽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이 책이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인 줄 몰랐을 것이다. 이 책은 확실히 이금이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과는 달랐다.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담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깊이가 달라져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전의 작품들이 아동 도서의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청소년 도서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쩌면 이 책을 쓰면서 이 책의 제목처럼 작가님이야 말로 드디어 얼음을 깨고 나오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끝의 작가의 말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어디서 작품 활동을 하셨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작가님이 처음으로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기거하시면서 작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책에 깊이가 깊어지고 몰입도가 높아졌구나 싶었었다.

 

사실 그동안 이금이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첫 부분을 넘기기가 참 힘들었다. 왠지 모르게 첫 부분은 부드럽게 넘겨지지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첫 부분에서는 거의 항상 목에 작은 뭔가가 걸린 것처럼, 낮지만 급한 경사를 힘들게 넘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기가 힘겨웠다. 난 그것이 어쩌면 작가님이 작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어렵게 첫 부분을 쓰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남몰래 해왔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부드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나올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무엇보다 첫 장부터 나의 호기심을 끈 것은 지오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이었다.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 중에 주인공 이름이 나와 같은 이름인 소희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 둘째 아이와 같은 이름인 지오가 주인공이라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러다 언젠가 우리 첫째 아이의 이름인 주노도 이금이 작가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만 한 조건을 갖추고 있던 두 아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문고에 다녔던 지오와 석주. 지오라는 아이는 캐나다 유학파 출신이었고, 석주는 전교 1등으로 입학 한 수재였다. 조건만 놓고 보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었고, 이대로 잘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은 물론 사회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잘 살 것 같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두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무엇이 탄탄대로일 것만 같은 두 아이들의 삶을 바꿔놓았을까. 무엇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부모님의 불화와 이혼, 그리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거기에 한 가지 더 한다면 사춘기의 고민들이 두 아이들을 방황하게 했고 삶의 방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선택의 기로에 서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선택을 했다.

 

지오는 명문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입시를 치르는 선택을, 석주는 대입시험을 앞두고 여자아이와 잦은 만남을 갖는 선택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후에 그들을 또 다른 큰 선택의 기로 서게 만들었고, 결국 그들의 현재 삶을 만들었다. 그들이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말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는 것 또한.

 

지오와 석주가 선택한 삶이 그들에게 행복이라면 행복일 수도 있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이로서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예전에 했던 어느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 있던 <이휘재의 인생극장>이라는 코너였는데, 주인공이 중요한 문제를 놓고 선택의 순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각각의 선택에 따른 결과 또한 각각 보여주며, 선택의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나았는지를 생각해보게끔 했다. 만약 지오와 석주가 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 책과는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이 책의 마지막에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을까.

 

가지 못한 길이기에 알 수는 없지만, 지오와 석주가 가지 못한 그 길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이런 식의 아쉬움을 전혀 품고 있지 않았다. 그저 온전하게 지오와 석주의 마음과 선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인생은 자기의 선택으로 이루어 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것이 지오와 석주의 선택이고 인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 연필과 지우개 - 

 

첫 장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며 어렵게 삶을 버티고 있는 기아바이 경섭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난 경섭을 보면서 기아바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끔씩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보던 이들이 기아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줄은 미처 몰랐다. 받침이 없어 어감만으로 일본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굶주림의 기아와 판매의 바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우리말이었다. 전통과 서구 문화가 섞인 것처럼 국어와 영어가 섞인 기아바이. 우리의 현재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첫 장을 다 읽고 다음 장을 넘기면서도, 계속해서 기아바이 경섭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각 장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성별도, 직업도, 상황도 모든 것이 다 다른 이들이 서로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 장을 넘길 때마다 자꾸만 이들 간의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읽는 동안 내내 찾아지지 않던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침묵이었다.

 

책을 읽기 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돌이 것만 왜 굳이 책 제목을 <돌의 침묵>이라고 지었을까 싶었다. 모두가 무겁게 느끼는 돌과 침묵이란 단어를 보며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왠지 모를 고독과 외로움은 느껴야 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더 깊은 고독과 이로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힘겨운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고 공허한 마음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이들을 보며 오히려 나는 나의 삶도 나의 마음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단한 것이기에 누구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을 뿐,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돌의 침묵처럼.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