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책 제목만 읽고, 참 어려운 책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웬걸 너무나 재미있었다. 무겁게 넘긴 첫 장과 달리, 그 다음부터는 마지막 장까지 쉽게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중간중간 속도를 늦추게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한번 붙은 재미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책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 같았다. 게다가 실제 역사 속에서 나오는 <노자한비열전>이니, <종수곽탁타전>이니, <도덕경>이니 하는 고서들까지 등장하니 현실감까지 더해져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게 했다.
단지 조금 안타까운 것은 나의 얄팍한 지식이랄까. 도덕시간에 노자, 공자, 맹자 등을 배운 것 같은데, 그 이상 그 무엇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알려주는 기록들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조금 답답했다. 나의 지식만으로는 책에 나오는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대신 덕분에 예전에는 전혀 궁금하지 않던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자는 물론이려니와 어려운 고서로만 여겼던 도덕경까지도 말이다.
<노자한비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노자는 초나라 고현의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 자는 담이었으며, 주나라의 도서관을 지키는 사관이었다. 한번은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에 대하여 묻자, 이에 노자가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바는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었고, 오직 그 말만이 있을 따름이오. 게다가 군자는 때를 만나면 마차를 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떠도는 것이오. 내가 들으니, 훌륭한 장사꾼은 깊숙이 숨겨 마치 비어 있는 듯하고, 군자가 덕이 가득차면 용모가 우매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오. 그대의 교만함과 탐욕, 드러나는 표정과 도리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버리시오. 이는 모두 그대의 몸에 무익하오. 내가 그대에게 말해줄 것은 이와 같을 따름이오.”
공자가 떠나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는 날 수 있음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칠 수 있음을 알며, 짐승은 달릴 수 있음을 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잡을 수 있으며, 나는 것은 활을 쏘아 잡을 수 있다. 용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으니,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 내가 오늘 노자를 보았는데, 마치 용과도 같구나!”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았는데, 배움에 있어 스스로 숨기고 드러내지 않음에 힘썼다. 오랫동안 주나라에 있었지만 주나라가 쇠해지는 것을 보고는, 이에 마침내 떠났다. 함곡관에 이르러 관지기 윤희가 말했다.
“선생께서 장차 은둔하려 하시니, 어려우시겠지만 저를 위해 저술해주십시오.”
그래서 노자는 이에 상, 하편을 저술했고, 도덕의 뜻 오천여 자를 말해주고는 떠났다. 그 이후로는 노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 <노자의 유언> p59 중에서 -
“덕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어서 선을 주로 하는 것을 모범으로 삼고, 선에는 일정한 모범이 없어서 능히 한결같을 수 있음을 돕는 것입니다.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릴 수 없고,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길 이가 없으니, 스스로 크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경시하면 안 됩니다. 평범한 남녀가 정성을 다함을 얻지 못하게 되면, 백성의 주인은 더불어 그 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 <노자의 유언> p81 중에서 -
“나는 능히 비방을 그치게 할 수 있다.”
이에 소공이 말했다.
“이는 막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합니다. 물이 막히면 무너져, 많은 이들이 필히 다치게 되니, 백성 역시 이와 같습니다. 이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을 흐르게 하여 인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을 밝혀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 <노자의 유언> p90 중에서 -
<종수곽탁타전>:나무 심는 곱사등이 곽씨 전기
곽탁타의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곱사병을 앓아 등이 솟아 구부리고 다녀서, 낙타와 비슷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타라고 불렀다. 그러자 타가 듣고는 말했다.
“참으로 좋구나. 이름이 내게 꼭 맞는다.”
그렇게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를 역시 탁타라고 불렀다. 그 마을은 풍악이라고 불렸으니, 장안의 서쪽에 있었다. 타는 나무 심는 것을 업으로 삼았는데, 무릇 장안의 세도가며 부자 감상하며 노니는 이들 및 과일을 파는 이들이 모두 다투어 맞이하여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타가 심은 나무는 옮기더라도 살지 않는 것이 없었고, 또 무성하여 빨리 과실이 번성했다. 다른 나무 심는 이들이 비록 엿보고 모방하여도, 같게 할 수 없었다. 어떤 이가 물으니, 곽탁타가 대답하여 말했다.
“나 탁타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우거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천성을 능히 따름으로써, 그 본성을 다하게 할 뿐입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은 뿌리가 펴기를 바라고, 흙은 고르게 돋아주기를 바라며, 그 흙은 본래의 것이기를 바라고, 흙을 다짐은 촘촘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미 그렇게 하면 건드려서는 안 되고, 걱정해서도 안 되며, 떠나면 다시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심을 때에는 자식 같이 하지만, 내버려둘 때는 버린 듯이 하면, 곧 그 천성이 온전해져서,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는 그 성장을 해치지 않을 뿐, 크고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열매 맺는 것을 억누르고 없애지 않을 뿐, 일찍 번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 심는 이들은 저와 같이 하지 않으니, 뿌리를 구부리고 흙을 바꿉니다. 그 흙을 돋움은 지나치지 않으면 곧 미치지 못합니다. 참으로 저와 반대로 하는 이들은 그것을 사랑함이 지나치게 두텁고, 그것을 걱정함에 지나치게 부지런합니다.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며, 이미 떠났으나 다시 돌아와서 돌보니, 심한 자는 그 껍질을 긁어서 그것이 싱싱한지 시들었는지 검사해 보고, 그 뿌리를 흔들어서 심어진 상태가 성긴지 촘촘한지 살펴보다, 나무의 본성이 점차 흩어져 떠나게 됩니다. 비록 그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해치는 것이요. 비록 그것을 걱정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죽이는 것이라서, 그러므로 나와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니, 내가 또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묻는 이가 말했다.
“그대의 도리를 관청의 다스림으로 응용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에 탁타가 말했다.
“나는 나무 심는 것을 알 따름이지. 관청의 다스림은 나의 본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고을에 살면서 관청의 수장을 보니, 그 명령을 성가시게 하기를 좋아하던데, 이는 백성들을 심히 어여삐 여기는 듯하지만, 마침내는 화를 입히게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관리가 와서 소리쳐 말합니다. ‘관청에서 너희들의 경작을 재촉하게 하고, 너희들의 번식을 권면하게 하며, 너희들의 수확을 감독하게 하고, 서둘러서 우선 누에고치를 켜게 하며, 서둘러서 실로 옷감을 짜게 하고, 어린 아이들을 양육하도록 하며, 닭과 돼지를 키우게 하도록 명령하셨다!’ 북을 울려 백성들을 모으고, 목제악기를 두드려 그들을 소집합니다. 우리 서민들은 저녁밥과 아침밥을 보충하여 관리들을 위로하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또 어찌 우리 삶을 번성케하고 우리 본성을 편하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병들고 게을러집니다. 이와 같으니, 나의 본업과 또한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요?”
묻는 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훌륭하지 않은가! 나는 나무 키우는 것을 물었는데, 사람 돌보는 방법을 얻었다. 그 일을 전하여서 관청의 훈계로 삼겠습니다.”
- <노자의 유언> p94 중에서 -
읽는 동안 재미에 푹 빠지게 만들면서도 결코 재미만 담고 있는 책이 아니었다. 중국 고대 사상가인 노자를 소재로 한 책이다 보니, 이야기 안에는 깊은 철학적 관점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철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나는 <종수곽탁타전>을 보며 내가 돌보는 사람들, 내 두 아이들의 육아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탁타가 자신이 나무 돌보는 방법을 관청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과 연결 지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들이, 아이들을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사랑이 지나치고, 걱정이 지나치어서, 아이들이 잘 자라게 한다는 것이 도리어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노자의 <도덕경>이 철학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를 다뤘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번역한 내용을 근거로 말씀드리자면, 노자의 <도덕경>은 1장부터 마지막81장까지 모두 정치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다룬 정치이론 서적입니다. 노자는 태평성대 특히 그 중에서도 궁극적으로는 대동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였는데....”
- <노자의 유언> p140 중에서 -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선조들은 자본주의적 중앙집권세습체제를 유지하고 또한 상위 0.01%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막대한 권력과 재부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이렇게 전 세계의 정계 및 재계 지도자 계층의 공조하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 <노자의 유언> p142 중에서 -
이제 1%가 아닌 99%를 위한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 시위대의 구호는 ‘베리타스’였다. 지도자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며 또 그들을 위해서 딴 마음을 품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애쓰는 것이야말로 참된 정치라는 노자의 뜻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진 때이기도 하다.
- <노자의 유언> p212 중에서 -
이 책에 의하면, 노자는 일관되게 소강의 ‘예’와 ‘법’을 통한 통치를 반대하여 ‘덕치’를 펴는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대동 사회는 어떠한 말이나 제도 등의 명분화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삼가고 노력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겁니다. 또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삼가 인재를 잘 등용해야 하고, 이러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가장 큰 역할이자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책 소개를 드렸습니다.
- <노자의 유언> p214 중에서 -
책을 읽는 동안은 이 책에 담긴 깊은 뜻을 절대 헤아릴 수 없었다. 스릴 넘치는 이야기의 전개에 푹 빠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기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책에 담긴 심오한 뜻을 조금이나마 알 듯 했다. 그리고 이 책의 표지 안쪽에 적힌 저자의 짧은 이야기 역시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서 알리고자 했던 핵심은 세상을 초탈하라는 형이상학적 무위자연사상이 아니라, 참된 지도자가 갖춰야 할 현실적 정치 자세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이다.
이 책은 웬만한 추리소설 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않더라도, 어느 곳에서건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가벼운 마음이 들지 않겠지만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