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의 시선을 끄는 건 시각적인 요소가 크다. 일러스트로 그려진 존와 요코 그리고 그들의 아들. 그들의 특징이 잘 잡혀 있어 표지만 봐도 그들인 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만화책 표지 같은 느낌은 이 책이 지루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주었다. 작가가 눈에 들어온 건 그 다음이었다. 오쿠다 히데오. 내가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친숙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이 작가의 작품 중 내가 이미 읽은 책이 있었던 것. <공중그네> 이 책을 읽고 독특한 시각을 지닌 작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아졌다. 독특한 작가가 마흔 살에 내놓은 그의 데뷔작이라니. 

이 책에는 팝스타 존이 아닌 인간 존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일 하는 부인을 위해 가정 일을 신경 쓰는 주부 존,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존,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 존, 복통과 변비로 고통 받는 환자 존. 그리고 우리는 미처 몰랐던 내면의 아픔과 회한을 갖고 있는 존을 그리고 있었다. 

40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많은 겪고, 또 많은 걸 남기고 간 존. 그는 생을 마감하기 전 4년의 긴 휴가를 떠났다. 팝스타 존이 아닌 인간 존이 모습으로. 이 책은 그의 긴 휴가 중 단 며칠만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존은 치료를 받는다. 신체적인 치료를 넘어선 심리적인 치료를.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 같고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을 것 같은 대스타 존이지만,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고 상처는 있었다. 

치료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의 치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존의 치료법은 그저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뿐이었다. 과연 그게 다 사실일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이 모든 게 사실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가 긴 휴가 기간 동안 그의 고민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 소설처럼 치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번도 정상적인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그가 긴긴 휴가 기간 동안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치유가 되지 않았을까. 그를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와 그를 최고로 생각하는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존 레논의 죽음에 관한 음모설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그의 아내 요코 오노가 그의 죽음에 관여했을 것이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음모설을 떠나서 그녀에게 퍼부어졌던 비난처럼 그녀가 존을 사랑한 게 아니라 이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었다. 존이 요코를 만고 비틀즈를 떠난 뒤의 행보는 비틀즈의 존이 아니라 존 레논의 행보이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선 요코의 꼭두각시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은 정말 서로를 많이 사랑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존의 숨겨진 아픔을 치유하는데 요코와 이뤘던 가정 생활은 많은 치유가 되었을 거라 여겨졌다. 요코는 존에게서 그런 점을 끄집어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뮤지션 존이기 이전에 인간 존으로 먼저 살아가는 법을 말이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해주는 작가. 그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



- 연필과 지우개 -

벤이 나와 조금 다르다는 제목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도 어릴 때 자라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해왔었으니까. ‘과연 벤은 뭐가 남들과 달랐을까?’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벤에게는 분명 남들과 달랐다. 다른 이들은 잘 몰랐던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남들과 조금 달랐던 벤은 그 장애 덕분에 그만의 재능을 가질 수 있었다. 벤에게 있어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단지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었고, 오히려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이해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가 세상을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를 단지 자신들과 조금 다를 뿐이라 여기고 그를 이해해주는 이들 덕분에 다른 이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었다. 

우리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한 학년에 반이 12반이나 되었다. 그리고 그 반들과 별도로 학년과 관계없는 특수반이라는 반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반에는 벤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들이 들어가는 반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았다. 혹시나 마주쳐도 피하기까지 했다. 왠지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게다가 조금 짓궂은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놀리며 괴롭히기까지 했다. 외관상으로 그 아이들과 나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특수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마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반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마음과 달리 학교에선 남들과 다른 아이들은 특수반이라는 곳에 모아놓고 다른 아이들과의 어울림을 막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아이들의 남들과 다름은 더욱더 두드러져 보였고, 다른 이들은 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이질감을 느꼈다. 친구들과 가끔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왜 저 아이들은 특수학교에 안가는 걸까’ 하고.. ‘그곳에 가면 더 어울리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어린 마음에도 그들은 우리와 너무 달라보였고,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아이들은 우리가 가졌던 이질감보다 더 많은 소외감을 갖지 않았을까. 

벤이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었을 때 특수반이라는 곳에 보내어졌으면 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벤은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남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친구들 역시 벤이 자신들과 조금 다른 친구로 대하지 않고, 자신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함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 연필과 지우개 -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책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책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까지 서두가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난 나의 집중력을 붙잡아두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보다 나의 집중력도 길러지고, 나도 나이가 들어 진득해졌기 때문인지 이번에 읽을 때 나는 처음과 달리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려면 잠깐 동안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변.. 출생과 성장과정, 성장 환경을 알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클레오파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긴긴 서두를 풀어놓는다. 클레오파트라의 부모님과 형제들, 그녀가 속한 왕조에 대한 이야기며,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한 도시, 나라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이야기를 드려주는 만큼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조마심이 나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클레오파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은 클레오파트라는 인물은 너무나 유명했기에 이미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난 이제야 그녀를 잘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영과 함께 시작한 톨레미 왕조지만 점차 극악무도하게 변해버린 톨레미 왕조의 후손으로 그 피를 물려받은 그녀였으며, 사막으로 둘러싸인 이집트지만 비옥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왕족으로 태어나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이 성장한 그녀였다. 풍족하고 번영한 나라의 왕녀인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왕위에 오른 뒤부터는 더욱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부와 권력, 미모까지 갖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그녀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는 적들과의 대 결투 중에도 홀로 비겁하게 후퇴를 했고, 절박한 순간에 홀로 비겁하게 도망쳤고, 홀로 살아남아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동안 내가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너무 큰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여태까지 클레오파트라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했을 때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한 줄 알았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죽음에 당도했을 때 불혹의 나이인 40살이나 되었을 줄이야. 나의 환상은 깨어졌지만 난 클레오파트라를 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