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책 읽는 가족’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침 제8회 푸른문학상 공모가 마감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 공모했던 작품들 중에서 뽑힌 작품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빨리 읽고 싶었지만, 7개의 작품 중 가장 관심이 갔던 작품은 ‘도서관 길고양이’였다. 아무래도 제목에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또 이 책의 제목도 ‘도서관 길고양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도서관 길고양이’에서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책 표지에도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서 책 내용에도 고양이가 꼭 등장할 줄만 알았었는데. 

‘도서관 길고양이’에는 내가 요즘 하는 고민이 잘 담겨 있었다. 내 바람과 달리, 우리 아이가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 말이다. 억지로 책을 읽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책과 멀어지게 놔둘 수도 없고. 책 읽기를 싫어하는 다미에게 다미의 부모님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다미에게 무작정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다미를 그저 책과 한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것. 그렇게 책과 함께 있던 다미는 조금씩 책에 관심을 보이다, 결국에는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책을 펼치게 된 계기는 도서관 길고양이가 만들어주었지만 말이다. 

다미에게 공감이 많이 갔던 건, 왠지 모르게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하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아이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왜 자신을 도서관에 있게 하는지 잘 알던 다미. 그렇기에 책에 관심이 가면서도 부모님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다미. 부모님이 하라면 더 하기 싫어지는 그 묘한 심리를 다미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기에, 난 다미에게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속이 꽉 찬 작품들.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어른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오히려 세상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 연필과 지우개 -

이 책의 저자가 강숙인 작가님인 것을 보고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강숙인 작가님은 역사동화만 쓰시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동안 강숙인 작가님의 역사동화만 만났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는 ‘강숙인 작가님은 역사동화 작가님’이라는 공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비록 이 책은 강숙인 작가님의 역사동화는 아니었지만, 작가님의 부드러운 문체나 섬세한 묘사는 여전했다. 달랐다면, 그리 멀리 않은 과거를 담았다는 것만 달랐을 뿐. 

제목처럼 거울은 거짓말쟁이었다. 희주가 꽃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거울은 희주의 얼굴이 아닌 아버지의 얼굴을 비추며 거짓말을 했고, 어린 시절 연극 무대에서 본 거울 역시 희주보다 나래가 더 예쁘다며 거짓말을 했다. 거울의 거짓말은 희주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희주를 한층 더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거울의 거짓말을 처음부터 알았차렸던 것은 아니다. 거울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희주 아버지가 희주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희주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아버지의 단 한 마디. ‘저런 거울이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거짓말쟁이 거울. 하지만 거울은 희주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창이 되어주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희주와 함께 희주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내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거울은 어떤 걸 보여줄까. 희주를 따라 거울을 봤기 때문일까. 내 거울 속에도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내 나이셨던 우리 아버지의 옛 모습이. 그리고 어린 오빠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주셨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언젠간 우리의 곁을 떠나실 우리 아버지. 아직 그때가 멀기만 한 것 같았는데, 희주의 거울을 본 뒤로 그 때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은 우리 아버지. 아버지에게 조금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실 때. 그럼, 나중에 거울에 아버지가 비쳐지더라도 가슴이 덜 아플 테니 말이다. 

지은이의 말을 읽으면서, 책 속의 희주가 강숙인 작가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작가님의 고백도 고백이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야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잘 묘사하실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결핍은 동경을 낳는다’는 작가님의 말이 가슴에 팍 와닿았다. 작가님에게 아버지는 진한 그리움이 아니셨을까.. 



- 연필과 지우개 - 

제목부터가 확 공감이 갔다. 시험,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괴로운 말인지. 학창시절엔 학교만 졸업하면 더 이상의 시험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해도 시험은 계속 있었고, 시험이라는 괴물을 이기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한 마디로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책 속에서 만난 준석이 역시 시험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실 시험 자체가 준석이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시험에서 받은 안 좋은 성적 때문에 괴로워해야 했던 것이다. 시험이란 것은 원래 내가 공부를 제대로 했나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검사이지만, 어느 순간 시험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준석이는 성적 때문에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어야 했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야 했고, 엄마에게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시험이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험을 잘 보는 친구는 멋진 친구고, 시험을 못 보는 친구는 멍청한 친구가 되는. 시험 점수가 좋지 않은 준석이에게 있어 시험이란 무서운 괴물이기만 했다. 

그런 시험 괴물에게서 준석이를 구해내준 것은 우연히 주운 시간 투시기. 준석이는 시간 투시기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재미있는 시간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미래에 가서 시험 문제를 미리 알아내서는 시험 괴물을 물리치고 100점을 맞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운데, 실제로 경험한 준석이는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 투시기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준석이와 친구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시간 투시기를 이용한 대가로 미래 감옥에 가게 생기게 된 것이다. 미래 감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과제였지만, 덕분에 준석이와 친구들은 스스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항상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겨우겨우 하던 공부를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된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부. 한 마디로 자기주도 학습. 준석이와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엄마들이 원하고 바라는 내 아이의 공부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100점 맞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기주도 학습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 련지. 아이가 공부의 재미를 스스로 깨달아야지만 가능한 공부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 공부의 재미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은 많은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준석이처럼 스스로 깨닫고 변화되어 간다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준석이에게는 시간 투시기가 게기가 되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게기를 마련해야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아직은 나중일이긴 하지만, 머지않아 나에게도 닥칠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알아서 공부할 건데 일일이 간섭하는 엄마가 너무나 싫겠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공부 안 하고 노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준석이가 스스로 공부를 한 것이 엄마의 잔소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그랬고, 아마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