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죄의식 없이 인간을 미워할 수 있고, 죽음에 대해서 담담할 수 있는 지점.
그 지점은 어떤 방식으로 주어질 것인가. 그것은 인간을 허용하는 정서적인 기준에 의한 것일 수 있다.
헤리슨포드 주연의 1980년도 작품 [블레이드런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이 책에서 묻는다.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닮은 기계.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일지라도 동일하다. 용인할 수 없는 존재. 그 안드로이드와 ’관계’를 맺어 버린 순간 죄의식은 생겨났다. 죽음 앞에서 망설인다. 인간으로써의 우월함은 사라졌다.

결국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과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감정이입이였다. 동정, 감탄, 기쁨 같은 감정들 그것이 태어난 인간과 만들어진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 만들어진 인간이 태어난 인간을 넘어설 때까지.

[블레이드런너] 의 어두운 미래, 그것과 소설의 질감은 비슷하다. 하지만 해리슨포드가 가지는 사냥꾼으로써의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인지, 영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시대에서는 이제 우문(愚問)이 되어버린,
’인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아Q정전]

노신선생님의 중편소설. 책은 하나의 중편과 세 편의 단편으로 엮여 있다.
여기 써 있는 이야기들은 중국의 근대사. 책 속 몇몇의 짧은 소설들 속에서,
몇몇의 구절을 읽다가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고향]이라는 단편의 한 부분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중년의 남자가 고향에 돌아온다. 그의 가족은 곧 마을을 떠나려 한다.
짐을 싸고, 사람들과의 헤어짐을 준비한다.
그런 와중에 남자가 어린 시절 알았던 윤씨가 인사를 하러 온다.
윤씨는 남자의 어린 시절에 있어서 환상을 보여주었던 친구였고,
그가 모르던 자연과 세상을 알려주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남자에게 수십 년만의 만남은 어색하기만 하다. 남자는 말한다.
’윤형 오랜만이네요.’
윤씨가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한다.
’나리’ ....

나는 한 번의 어처구니 없는 웃음으로 쉽게 이 장면을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 장면의 아이러니와 희극성 보다 시간과 혁명이 이 둘의 관계를 너무나 멀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비극에서 웃음이 아닌 울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리라.
’나리’라는 말 속에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의 계곡이 느껴졌고,
그것은 격변하는 중국의 근대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의 중국이 사람들 마음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생각 속에서 무너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긴 역사를 유지했던 거대한 나라가 혁명을 통해서 산산히 부서진다. 사람들은 재난을 피하기 위해, 생존을 위해 유치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 시대 속에서 어떤 외침이 있었을 것이다.

’괴롭고 힘든 이 순간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노신선생님은 혁명 속에서 헤매는 중국을 향해서 이런 말을 외쳤던 것이리라.

 수 많은 연극에 대한 이론서들을 읽다 보면, 특히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연극의 이론서들을 보면,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연의 한 장르가 있다. 일본의 ’노’, 이 정형화되고 절제된 공연의 장르,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한다. 사실 이 ’노’를 우리 나라에서 접하기는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궁금증만 가득하다. 어렴풋이 그 ’노’에 대해서 잡고 있는 가닥은 절제와 정형, 그것을 ’형식의 탐미’라는 멋들어진 말로 어떤 분이 표현하셨었다.

 이 책은 그 ’노’에 대한 이론서다. ’노’에서 배우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꽃’이란 무대 위에서 배우가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그득한 매력을 포함한 몸짓이고, 소리고, 그리고 그것은 연기이다. 이 매력을 ’꽃’이라고 표현한 제아미. ’꽃’을 피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제아미는 이 책에 써 놓았다.

 요즘의 연극 이론서처럼 세세한 훈련 방법이나 긴 설명은 없다. 하지만 '노'라는 공연의 본질과 배우는 관객에게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자세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아미가 생각하는 '노'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노'를 하게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기에 도움이 될 몇가지 단서를 얻었음에 흡조해 한다.

"대상에 본래 내재해 있는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유현하게 연기하려는 마음만 앞서서 연기를 대충하고 만다면, 그 대상답게 닮도록 해 보일 수가 없다.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유현하게 해 보이겠다.' 고 여기는 사고방식, 이것은 '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