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후 나는 끊임없이 끌려 다녀야 했다. 고발이 그렇게 잇달아는지 저희끼리 나 하나를 가지고 서로 조리돌리는 건지 그 내막은 알 도리가 없고, 또 궁금해할 경황조차 없었다. 별의별 청년 단체들이 다 나를 보자고 했다. 그들은 나를 빨갱이 년이라고 불렀다. 빨갱이고 빨갱이 년이고 간에 그 물만 들었다 하면 사람도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장이고 나발이고 인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빨갱이를 색출하고 혼내 줄 수 있는 기관은 수도 없이 난립돼 있었고, 이웃이 계속 우리를 수상쩍게 여기는 한 난 그들의 밥이었다. 그들은 라를 함부로 욕하고 위협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에 비하면 그 정도는 인권침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짐승이나 벌레처럼 바라다보았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돼 주었다. 벌레처럼 기었다. 정말로 그들에겐 징그러운 벌레를 가지고도 오락거리를 삼을 수 있는 어린애 같은 단순성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빨갱이를 너무도 혐오했기 때문에 빨갱이의 몸을 가지고 희롱할 생각은 안 했다. 나는 내가 너무 귀족적으로 자란 걸 다 원망했다. 잘 먹고 잘 입고 떠받들어졌다는 소리가 아니라 수모에 길들여질 기회 없이 커 왔다는 뜻이다.'

기억에 의지해서 쓴 글이라고 했다. 기억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기억은 단편적이고 감정적이고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이 글은 그 기억에 의지해서 쓰여졌다. 작가가 본 두 장소의 차이, 박적골과 현저동. 공간의 변화는 어린 작가에게 여러 혼란을 야기시켰고, 이중성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그것은 혼란이었을 것이다.

해방이 되고, 몇년 후 전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들의 억눌린 욕망들을 타인에게 끊임없이 분출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하루 밤이 지나고 세상이 변했다. 변한 세상은 사람의 목숨을 요구 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깔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 시체 위에 세워진 세상에서 증오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시체 위에 나라가 서고 그 위에 또 시체가 쌓였다.

난 '싱아'의 맛을 모른다.
난 고향이 없다.
난 도시를 넘어서지 못했다.
내 의식도 시멘트의 정서에 갖혀 있다.
그 때문일까. 난 여전히 인간이 그립다.

'그들은 존재한다는 죄악으로부터 몸을 씻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그렇게 했다. 이 생각이 갑자기 나를 압도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하게 나를 어루만지는 그 무엇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가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감히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이었다. 일종의 기쁨이었다.
흑인 여자가 노래한다. 그러면, 그녀의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조금이라도 몹시 겁을 먹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내가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눈 속을 걸어와서 완전히 얼어붙었다가 갑자기 따뜻한 방으로 들어온 사람과 같았다. 그 사람은 문지방에서 아직도 찬 몸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온몸에 느릿느릿한 소름이 퍼져 있을 것이다.'

글을 읽고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고, 내 행동은 제약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거창한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고민인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숨을 쉬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생각한다는 것,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는 것.
본질이라는 것조차도 존재에 의해서 의미지워지는 것이라는 것.
사르트르의 말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가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범상한 휴머니즘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무의식을 파헤친 최초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그의 저서 [꿈의 해석].
이런 수식어들로 인해서 이 책에 대한 기대치는 꽤 높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별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자아와 초자아에 대해서 이야기한 최초의 사람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막상 이 시대에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다. 아마도 현재의 이론이나 문화들이 그런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이미 상당히 깊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상담 했던 여러 사람들의 꿈을 분석하고, 그 분석의 방법을 일반화 한다. 그리고 거기서 환자가 겪는 정신병리학적 원인을 발견한다. 뭐 이정도.

’꿈을 얘기하는 사람은 다시 말해 줄 것을 요구받으면, 내가 꿈을 분석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그는 저항하면서 직접적인 표현을 생뚱맞은 표현으로 대체하고, 꿈에서 약하게 위장된 부분을 보호한다. 이때 나는 상대가 빠뜨린 표현에 주의를 집중한다. 꿈의 해석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보면 꿈의 외관이 얼마나 철저하게 구축됐는지 알 수 있다.’ - 본문 중 발췌 -

의식의 저편에 존재하는 무의식. 그 숨겨진 무의식은 종종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감정이 되어 혹은 어떤 행동이 되어서 튀어나온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내 욕망에 대해서 무의식의 숲을 파헤쳐 그 실체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나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