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현대사에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시기이다. 그 시대를 거치면서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삶은 뒤틀려 버렸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더욱 잘 이해한다. 이 이해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강요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은 타인이 왜 그런 생각과 신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강요하고, 다른 생각을 ’적’이라고 규정하는 사회에서 이런 예민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점차 힘들어진다. 그들에겐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개인의 다름과 당연함이 도리어 당연하게 부정당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그 사람들에게 버겁다.

작가는 파리를 이상주의적인 도시로 그리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화 사대주의가 아니라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의 진의를 이해한다. 그는 우리가 배우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 하지만 배워야 하는 것들을.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과 상황 속에서 상처 받았던 사람들은 그 ’다름’이 당연시 이해되는 사회에 대해 그가 보여준 묘사를 당연스레 동경하게 될 것이다. 이해되지는 못하더라도 단지 ’다름’이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나 아렌트의 책 ’폭력의 세기’ 처럼 한국의 근현대사는 바로 그 ’폭력의 세기’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폭력이라는 도구를 너무 손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계승되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많은 순간 느꼈다. 하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 여건 이라는 핑계였을 뿐.

그 핑계를 인정한다.
그것이 핑계였음도 인정한다.
그래도 나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
내가 가진 문제와 이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지금 이 나라 이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다. 아니 그것은 책임이 아닌 그냥 내가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운명일 것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람으로써의 책임.

이 책은 나에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항’하는 것이 바로 ’실존’이라는 살아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들었다.
인간은 부조리에 저항하고, 운명에 저항하고, 이상과 꿈을 가지고 현실에 저항하는 존재.
반항의 숙명을 타고나, 반항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 사카테요지의 다락방 공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달인이 만든 한접시의 회와 같다.’
정밀한 칼솜씨와 좋은 횟감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기술을 녹여내어 만든 공연이다.
날카로웠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기에 공연은 매우 좋았지만, 보기에 편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그의 희곡을 근 1년이 지난 뒤에 다시 읽는다.

그의 희곡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은 일본의 ’지금’을 이야기 하고 있구나 라는 것.
지금 일본이 움켜쥐고 있느라 이미 곪아버린 상처를 그는 헤집어서 끄집어 낸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 한다.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지금의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긴 역사와 여러 사건을 통해서 들추어 낸다. 그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일본이었다.
가끔은 너무 섬뜩한 표현들이 난무하기도 하였으며, 어떨 때는 이해하기 힘든 정서와 대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희곡도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분명 좋은 희곡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 지금의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들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음에도 글은 잘 읽혀지지 않았다.
날콰로운 비판과 그 특유의 위트로 꾸며나가는 이야기에 대한 매력이 있었다.
가득한 포만감을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깊은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희곡이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쥐덫]
누가 이 작품의 대본을 들고 공연을 한다고 하길래 ’어 애거서 크리스티가 희곡도 썼어?’
하고 넙죽 구입해서 보니... 역시나 소설이었다는 거.
희곡은 소설을 기본으로 작가가 직접 각색했다는 사실을 작품해설에서 알게 되었다는 거.
희곡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플롯이 소설과 동일 할테니 뭐 공연을 보면 나머지는 알게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중편 [쥐덫]과 다양한 단편들이 모여 있었다. 앨런 포우 소설은 몇개 읽어 보았었지만 막상 애거서의 소설은 그러고 보니 처음 읽어보는 거였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결국 밝혀질 범인이 누군인지 모른다는 것과 그 범인이 저지른 범죄(대부분은 살인사건이기는 하다) 속에 숨겨진 사실들이 첨예한 논리를 통해서 하나씩 밝혀질 때 유발하는 호기심일 것이다.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중편 [쥐덫]은 재밌었는데, 다른 단편들은 내용의 전개가 너무 빠르고 범인을 도출하는 호흡이 짧은 편이라서 별로 재미는 없었다. 추리소설은 적당한 길이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적당한 간보기나 반전과 결과를 암시하는 복선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서나 서정이 아닌 날카로운 논리의 전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논리의 타당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단편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뭐 아쉬운 소리가 많기는 하지만 결론은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