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밸리는 눈에 보이는게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풀섶에 가려 돌무더기에 덮혀 그 안에 동굴이 있다는 걸 알 수 없었듯이 말이다.
폭스밸리는 사람들 맘속에 거울을 들이밀라 말한다. 한순간에도 갖가지 생각들이 상념 돼 쌓이는 숱한 마음속 가지를 어떻게 쳐내는지 잘 살피라면서 말이다.
자잘한 글씨에 꽤나 두꺼운 책였다. 처음 몇장을 넘길적엔 헉~ 숨도 막혔다.
후덥지근한 열기속에 두툼한 책장이나 넘기며 씨름해야한다니... 등줄기에서 비오듯 땀이 쏟아지는 열기에 순식간에 휩쓸렸다. 아~
하지만 두께만큼이나 줄거린 방대하지 않았다.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가 그걸 메우기 위해 사채업자의 돈을 빌린 라이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삶의 실패 혹은 어두운 면을 남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가면 쓰고 기를 쓴채 산 켄과 알렉시아의 삶이 어떻게 됐는지,
주변 사람들과 고리 엮어가며 풀어내고 있다.
다만 방대하게 지면을 할애하고 있던 건 사람들의 내밀한 심리상태를 깨알같이 그리며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란 공감대를 자극하는 일였다.
라이언은 한적한 주차장에 혼자 있던 바네사를 납치해 그만의 장소, 폭스밸리에 가둔다.
그녀가 죽거나 다치길 원한 적은 없다. 다만 그의 남편에게 돈을 뜯어내면 바로 풀어줄 생각였다. 며칠전 몸싸움 한 것이 폭행상해로 문제 될 줄 어찌 알았겠냔 말이다.
경찰서를 빈번이 들락거렸던게 문제가 돼 불구속 집행이 되지 않아 바네사를 풀어 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말했다간? 납치한 것까지 보태지면 형량이...?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라이언이 잊고 있었다. 그게 자신의 정신상태를 갉아먹는 좀벌레가 될 거란 사실을!
메튜는 고용불안에 떠는 것보단 새로운 곳에서 날개를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바네사는 익숙한 곳을 떠나길 싫어했다.
그것때문에 티격 대다 맥스(개)의 소변 문젤 처리하려 잠시 주차 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산책을 하쟀다. 바네사가 같이 가지 않겠대서 두고 온 것 뿐이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바네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도 바네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말다툼을 하고 혼자 산책하러 간 자신을 추궁했다.
메튜의 삶은 바네사가 사라진 외진 주차장, 그곳에서 멈췄다. 살아도 산게 아녔다. 잊기 위해 억지스레 일한 덕분에 안정된 자리까진 올라갔지만 삶은 무의미했다.
그때 나타난 지나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길 간절히 희망하게 만들었다. 정지된 시간을 돌리고 싶어졌다.
노라는 자신이 도움 돼는, 그래서 자기 곁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을 원했다. 거기에 라이언이 딱 맞았을 따름이다.
암울한 유년시절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을뿐 그의 심성은 너무나 유약하고 선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리 믿었다.
라이언이 모범수로 가석방 됐을때 자기 집을 기꺼이 내주며 엄만냥 그를 품었다. 하지만 그의 전여자친구가 성폭행 당해 엉망인 상태로 도움이 필요했을때,
그의 어머니가 납치 됐다 히피족에 의해 살아돌아왔을때, 데몬이란 사채업자에게 빚독촉을 받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됐을때... 그때 노라는 라이언을 놔줬어야했다.
배배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거란, 도움 될 거란 생각, 그 자체가 망상였슴을 그녀는 몰랐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알렉시아라는 여자가 납치된 사실에 라이언이 괴로워하며 털어놓은 바네사 납치사건의 실체를 알고도 그녀는 라이언의 편에 서려고 했다. 왜?
켄은 선박제조회사를 알렉시아 때문에 접고 스완지로 옮겼다. 알렉시아가 성공한 커리우먼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고,
그는 자연스레 집안일을 전담하며 육아를 맡을 수 밖에 없었다. 군소리없이 알렉시아의 성공을 지원하는 친절한 캔의 모습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알렉시아의 친구인 지나는 그들 부부를 롤모델 삼으며 부러워했다. 닮고 싶어했다.
갈수록 신경질적이며 여유가 없어져가는 알렉시아를 사장이 옥죄는 업무적 스트레스 때문이라 안타까워 했다.
라이언이 자신의 주변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을 놓고 데몬의 간접적인 빚독촉일지, 바네사가 어찌어찌 관속에서 나와 복수의 화신이 된 걸지 고민할때 난...
메튜의 갑작스런 심경변화가 의심스러웠던지라 그가 우연찮게 라이언의 뒷덜미를 알아챈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납치범에게서 아무런 언질도 못 받았는데 어떻게?
정말이지 바네사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혹은 허술하게 박힌 못이 빠져 살아 돌아와 라이언을 괴롭힌 걸까?
하지만 그 외진 곳에 사람이 올리도 못을 허술히 박지도 않았을텐데 어떻게?
메튜를 사랑하게 된 지나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의심스러워 쫓다가 알게 돼, 라이언을 괴롭힘으로써 바네사의 일을 털어 놓게 만들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일을 사주하기엔 그녀는 너무 가난했다. 지켜보는 시선을 의심하긴 했어도 가볍게 얼버무렸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바네사의 친구이기도 했던 알렉시아마저 비슷한 방식으로 납치 돼자 모두들 혼란스러워 했다. 연쇄납치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바네사의 납치가 라이언인게 아는 우리로선 그럴리가, 의아했다.
라이언은 알렉시아를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바네사의 납치가 다시 표면으로 불거져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으니까.
라이언에게 바네사 얘기를 들은 노라는 며칠을 고민하다 그의 전여자친구였던 데비를 찾아간다. 같이 동굴로 가 확인해보자고.
차라리 데비는 확실하게 라이언을 정리할 수 있었을게다. 상황에 떠밀려 그리 됐을뿐 심성은 선하다... 마음 밑바닥에 미련이 남았었으니까.
그러나 노라는 그래도 라이언을... 였다. 상황이 자꾸 어그러져 꼬일뿐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도움의 손을 내밀지 않는 건 한 사람을 방치하는 거라고.
라이언이 자신의 삶에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자신만큼이나 자신이 위기에 몰아넣은 사람의 안위도 염려했더라면,
누군가를 잃은 상처로 괴로움에 빠졌을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여유가 있었다면 그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았을게다.
자신을 걱정 할 엄마를, 도움주고 싶어한 데비와 노라를, 죽음으로 몰아간데 대한 사죄를 외면하지 말고 부딪혀 해결해 나갔으면 말이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니 상황은 덮으려 또다른 상황을 만들 수 밖에 없었고, 브레이크 망가진채 도로를 달릴 길 밖에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알렉시아의 납치는 바네사의 납치와는 별개의 사건였다. 우발적인 사고를 덮으려 과거의 사건에 묻어간!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이중적인 우리네 삶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바깥사람한텐 사근사근했다가 집엣사람한텐 버럭대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처럼
우리는 나를 어떻게든 포장해 보이고 싶어한다. 실수나 실패는 감추려 안달낸다. 지지리 궁상인 걸 티내지 않으려 빚내서라도 치장한다.
곁이 외로운게 싫어 어떻게든 사람들 붙들려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피페해져 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삶에 있어 중요한 건 주변사람이 아니라 나란 걸 자꾸만 잊는다. 과거나 미래도 아닌 현실을 산다는 걸 잊고 얽매인다.
무엇을 쫓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슴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순간였다.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중심을 잃을때 어떻게 되는지 느낀 순간, 내안의 자아를 어떻게 세울지 고민하게 됐다. 심지가 굳으면 흔들림도 적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