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 쓸 내용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두껍고 자잘하게 적혔단 말야?'
얼핏 책을 들여다보면서 가진 궁금증였다. 하지만 차례를 펼치자 개별적인 내용들이 모여 하나로 묶여졌슴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설마하니 진짜로 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겠어? 뇌는 써야 팽팽 돌아가고, 공부는 할수록 느는 거라매!
연습도 안했는데 뜀틀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처럼 거저 똑똑해지는 건 이 세상에 없어. 공짜로 바랬다간 된통 당할껄?"
큰애가 책표지를 보면서 한 말였다.
친구들이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무척이나 부러웠던지 사달라고 늘어지길래 결국엔 고민고민해서 골라 구입해줬다.
아이들은 자전거가 오자마자 탈거라며 바로 들고 나갔는데, 마음이야 안장 위에 엉덩이 걸치고 두 발로 신나게 페달 밟아 달렸지만 몸은 이리 휘청 저리 콰당~
넘어지고 다치고 깨져도 굴복하지 않고 자전거와 씨름하던 작은앤 하루만에 탔지만
넘어지는게 무섭고 다칠까봐 겁나고 부딪힐까봐 멈칫거렸던 큰앤 여러날을 시도했지만 도대체가 늘지를 않는거다. 그때 큰애의 마음을 다잡은 계긴,
'아빠가 지켜보고 있으니 쓰러져도 크게 다치진 않을거다, 자꾸 포기하고 미루면 결국엔 부러워만 하다 타보지도 못하고 그친다' 였단다.
그런 경험들이 있어선지 노력이 따르지 않는 결과물이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거였다.
태어날때부터 똑똑했던 난 누군가가 내 자릴 넘보는 건 있을 수 없는, 가당치 않은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난주에 그 가당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제롬이 수학에서 백점 만점을 받은 거다. 분명히 거기엔 이상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무례하다고 나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페피 아저씨가 있을 것 같아 파헤쳐보기로 했다.
늦은 밤 아이스크림 트럭에 몰래 들어갔더니 자물쇠를 채운 특별한 아이스크림 네통이 있는 거다.
기운을 복돋워주는, 긴 코를 위한, 여드름을 없애주는, 잘난체하는 인간들을 위한... 아이스크림들였다.
그래서 심통이 난 난, 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을 빼곤 모조리 모래를 부어 버렸다. 이미 잘난 나인지라 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대서 특별히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맛이나 보자 싶어 한입 먹어 봤는데 어라? 너무 맛있는거다. 도저히 멈출 수 없어 생각없이 마구 퍼먹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이상했다.
"얜 잘 읽어야지, 잘난체하는 인간들을 위한 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이라잖아. 잘난체하는 사람한테 똑똑해질 아이스크림이 왜 필요하겠어? 함정였던게지!"
"얜 참 이상하다, 학원 잘 가고 선생님 풀란 거 잘 풀어서 백점 맞은 걸 수도 있잖아. 왜 노력해서 잘 쳤을거란 생각은 안하지? 저만 잘났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 시골에 사는 고모네로 가서 살아야했던 밥은 다른 건 다 참을만 했지만 화장실만은 아녔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데다 칠흙같이 어두울땐 손전등 비춰 가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 게다가 쇠줄을 잡아 당겨 물을 내릴땐 먼지 날려 으웩~
무성한 잡초를 헤치고 가야해서 항상 긁히기 일수였고 거미줄이 얼기설기 내려앉은 걸 볼라치면 독거미가 내게로 달려들 것 같아 소름 돋기도 했다.
너무나 심심해 나무 벽에 난 구멍을 세고 있는데 엥? 웬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 너머가 훤히 비쳐 맞은편 나무가 다 보였다. 날 보고 있는 건, 유령?
그 다음부턴 절대로 화장실에 가려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 정도는 참을만 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한계에 다다랐다.
고모가 2년가량 영국에 가 있느라 집을 비웠을적에 이 집에 살며 관리를 해줬던 올드 네드라는 사람이 이 화장실에 앉은채로 죽었다더니... 아무래도 그 사람 같다.
너무 무서워 달달 떨다 이까지 부러져 의치를 해 넣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왜 죽어서도 화장실을 떠나지 못하는지, 왜 슬퍼 보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잘못한게 있으면 죽어서도 그 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나봐. 죽었으니 말도 못하고, 사람들은 보면 무서워 벌벌 떨고, 그 귀신도 어쩌지 못해 참 답답했겠다!"
"그래도 다행이야, 훔쳐갔다고 속상해하던 그림을 찾게 됐으니까. 게다가 강풍에 화장실이 무너져 집안으로 만들어 넣었잖아. 이래저래 득였어!"
셔츠도 없이~
말끝마다 이 말을 덧붙이는 버릇이 어쩌다 생겼는지 모르겠다. 수도 없이 의사를 만나 봤지만 아무도 원인이나 치료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놀림감였다.
땅 파는 걸 워낙 좋아하는 강아지 셔블 탓에 우린 쫓겨 나 묘지 관리인이 쓰던 집으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다. 셔블이 무덤은 제발 파헤치지 말아야 할텐데...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달리 셔블은 어디를 파헤쳤는지 발가락뼈를 가져다 내 앞에 내려 놓는거다, 경악했다. '아 셔블, 무덤을 파헤치면 큰일 난단 말야, 어디서 팠니?'
그렇게 셔블이 찾아낸 뼈조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나섰다가 브라이언은 해변가 여기저기에서 뼈조각들을 찾았다. 울음이 터져나올만큼 슬퍼졌다.
하지만 뼈조각들이 함께 있을땐 그나마 슬픈 마음이 가셨다. 아주 오래된 신발 한짝도 찾았다.
신발바닥에 세겨진 이니셜을 보고 문득, 고조할아버지를 떠올린 브라이언은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뼈다리와 셔블이랑 열심히 구덩이를 파서 모두 찾아냈다.
파낸 구덩이 안에서 뼈들은 이리저리 제자리 찾아 맞췄고, 아주 오래된 셔츠를 던져주니 그제사 편히 자려는 듯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묻어주고 났더니...?
"셔츠도 없이, 이건 옷도 없이 죽어서 흩어진 할아버지의 유골이 내는 소리였던거야. 어떻게든 알아차려서 해결 해 달라고."
"강아지가 있었길래 망정이지, 평생 셔츠도 없이를 말끝마다 달고 다니며 얼머나 손가락질 받았을까? 강아지가 사람 말을 했다면 훨씬 빨리 해결했을텐데... 그렇지?"
채소 재배가 취미인 아빠 덕분에 그레그는 항상 거름 냄새를 묻히고 다녔다. 물론 채소들이 쑥쑥 자라 맛이 좋대도 거름 주위로 몰려드는 파리떼며
갖가지 똥들을 섞어 만든 거름 냄새만큼은 죽을만큼 싫었다. 항상 소똥을 져다 날라야 했던 탓에 그레그는 소똥남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도 받아야했다.
그러다 소똥에 박쥐똥, 토끼똥, 웜뱀똥, 도마뱀똥, 캥거루똥, 썩은 호박까지 들어간 72번 거름 소똥 커스터드는 특히나 냄새가 지독했다, 파리떼도 몰살시킬만큼.
숨쉬기가 곤란할만큼 털이란 털은 모조리 빠질만큼 지독했던지라 내다 버릴 수 밖에 없었는데, 이웃들의 항의가 너무 심하자 냄새없는 100번 거름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나 문젠 사람들에겐 나지 않는 냄새가 파리떼한텐 나서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만큼 파리떼가 몰려들었다는데 있었다.
세상을 뒤덮은 파리떼를 없애기 위해 72번 거름을 어렵사리 만들긴 했지만 성난 마을사람들을 피해 외곽에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래서...?
"적당히 좀 하지, 아무리 똥에 영양가가 많대도 냄새 구린데, 그걸 왜 자꾸 섞어서 새로운 걸 만드냐고. 거름을 발명품으로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똥은 똥일뿐!"
"똥으로 종이도 만들잖아. 집안에 바르면 진드기나 빈대가 사라졌대. 배 아플때 똥물을 약으로도 먹었다는걸? 그러니까 쓸모있는 뭔가로 탈바꿈 했을지 또 모르지!"
"아 그 털을 홀라당 없애버린 소똥 커스터드, 그걸로 털제거제 쓰면 되겠다. 냄새만 덜 나게 만들어서~"
그렇게 엉뚱하지만 기발한 이야기가 여덟편은 됐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몇가지만을 들었는데 기 막혀 죽겠지만 그 이면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똑똑해지는 아이스크림은 잘났다고 업신여기며 거들먹거리다간 제 발등을 찍고 말거라던가,
행운의 입술은 키스를 부르는 투명 립스틱을 잘못 썼다가 암퇘지의 키스세례에 죽어라 바둥댔다던가(자만,욕심은 화를 부른다),
화장실유령의 비밀은 갚아야 할 빚을 남기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채 슬픈 영혼이 돼 떠돈다던가,
소똥커스터드는 이웃에게 해를 끼쳐 도망쳐 살아야 했지만 한가지 일에 매달리니 결국엔 그게 기회가 되더라던가,
셔츠도 없이는 후손에 의해 편히 안식을 취하게 된 조상님의 유골을 통해 가족이 갖는 유대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했다.
"평범한 걸 놓고 기발한 상상을 덧붙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져. 딱 4시간만 뛰어난 접착력을 가진 기펜의 풀로 떼돈 벌던 기펜이 만족할 줄 모르고
하늘을 나는 상자를 훔쳐서 더 큰 돈을 벌려고 했다가 망했잖아. 플렌티가 상자를 기펜의 풀로 붙일게 뭐람, 딱 4시간만 강력하게 붙어 있을뿐인데..."
"그러니까 여기선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이야길 풀어 놓은거야. 상황만 다를뿐 같잖아. 잘난체 하다 바보 됐고, 욕심 부리다 죽고, 밀어붙이다 놀라까무라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