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내일 결혼식을 앞 둔 26살 다케나카 하나와 이 책의 제목처럼 그 남자로 나오는 그의 양아버지인 42살의 구사리노 준고.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이 기묘한 부녀의 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졌고 알고 싶어졌다.과연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이루어진 아버지와 딸의 관계인지, 준고의 얼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내일이면 결혼을 하는 하나의 얼굴에 기쁨이라는 느낌을 하나라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책 <그 남자>의 주인공들인 구사리노 준고(그 남자)와 다케나카 하나가 어떻게 부녀관계가 되었고, 지금의 기묘한 가족관계가 어떻게형성되었으며, 그들에게 숨은 비밀은 무엇인지...그들의 과거를 시간상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소설은 시작한다.(이 소설의 특징이다.)
#1 2008년 6월 하나와 낡은 카메라
1장에서는 오자키 요시로와 결혼하는 다케나카 하나와 그의 양아버지인 구사리노 준고의 심리적인 묘사가 주를 이룬다. 결혼식을 앞 둔 상황에서 그들에게 흐르는 묘한 감정들...그 감정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밖에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준고와 하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포착한 낡은 카메라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복선을 낡은 카메라로암시한다.이 책<그 남자>에서 카메라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알아 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중의 하나일 것이다.
#2 2005년 11월 요시로와 오래된 시신
2장에서는 하나와 결혼하는 요시로가 하나를 알게 된 사연과 벽장속에 감추어져 있는 다오카 형사의 오래된 시신이 앞으로 이어질 이 책<내 남자>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이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3 2000년 7월 준고와 새로운 시신
3장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하나와 퀵 서비스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준고의 모습들을 보여주고,한 노인의 살인사건을 쫓고있는 다오카형사의 급작스런 방문에 당황하는 준고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준고에게 보여주는 카메라...이미 다오카 형사는 한 노인의 죽음에 하나와 준고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찾아 온 것이다.이 걸 눈치 챈 준고는 칼로 다오카 형사를 살해하고 마는데...
#4 2000년 1월 하나와 새 카메라
시간적 배경은 훗가이도의 북동쪽,몸베쓰 동네. 초등학교 시절 하나의 모습과 바다의 경찰이라고 불리우는 해상보안부에 근무하는 준고. 그리고 그들이 밤마다 벌이는 충격적이면서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사랑,(이 책을 읽고 한 동안 충격에 빠진 부분이다.) 이 소설이 정상적인 부녀 관계는 아니지만 어찌됐건 양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무너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이게 사랑인가? 과연 이 사랑은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를 반문하고 또 반문해 보아야만 했다.
내가 보았을때 준고와 하나의 사랑은 집착과 연민이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반사회적 사랑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와 준고의 모습을 사진기로 담아버린 오시오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게 한 하나의 행동에 또 한번 충격에 빠진다.
정말 충격적인 모습들을 많이 담고 있는 이 소설 <내 남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 일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5 1996년 3월 고마치와 잔잔함 / #6 1993년 7월 하나와 태풍
준고와 결혼할 사이였던 고마치의 눈으로 본 준고와 하나의 이야기다.그리고 불운했던 준고와 하나의 과거에 주목한다. 준고와 하나는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라는 점에서 서로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는 준고와 4명의 가족을 지진으로 모두 잃어버린 하나가 준고에게서 처음으로 가족의 냄새를 맡게 되면서 서로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킨 채 둘 만이 퇴폐적인 사랑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 이후 절대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는 하나와 준고...이 외로운 영혼들은 절망적으로 뒤엉키고 사랑하면서 한없이 어두운 나락으로 빠져든다. 광기로 가득한 이들의 사랑은 이미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준고와 하나가 힘을 꽉 주어 손을 잡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아, 나는 이 손을 영원히 놓지 않으리라.(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 대사)
이 책 <내 남자>를 읽으면서 과연 이 충격적인 내용(아버지와 딸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상당한 고민에 빠졌었다.
반사회적(아버지와 딸의 사랑), 비현실적(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했기에 머라 할 말은 없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런 소재를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껄끄럽고 이런 소재 자체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할 것이다.이런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내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준고와 하나는 모두 고아라는 불행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된 준고와 하나,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버린 아버지와 딸의 관계, 또 이 책 속에 나오는 하나가 정말 준고의 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하나가 준고의 친딸이라는 점을 여러 대화에서 복선으로 암시하기도 한다. (’엄마는 옛날에는 술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많이 컸구나". "통 안 닮았네." 그런 말을 주로 들었다. 오빠와 여동생은 아빠를 닮아 눈과 코가 크고 눈썹도 짙은데, 나는 눈이 길쭉하고 얼굴도 몸도 가냘픈 게 전혀 달랐다.(354페이지)/그리고 조그만 상자안에 들어있는 하나의 어렸을 때 (7~8세 때의) 사진들...(420~21페이지)
나는 준고가 하나의 양아버지가 아닌 친 아버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는 다른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만약 양아버지가 아닌 친 아버지라면 정말 이 소설속에 나오는 준고와 하나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런지도 너무 궁금하고......
이 부분 역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내 남자>를 읽으면서 많은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일본의 사쿠라바 가즈키란 소설가를 알았다는게 큰 소득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던져 주었던 소설 <내 남자>......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138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내 남자>의 심사위원이었던 기카카타 겐조씨의 심사평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칠려고 한다.
이 심사평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에의 심사평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이상한 점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반도덕적, 반사회적이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작품이다. 이것을 세상에 내놓고 한 번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