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일은 멋지게 보이는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하면 어려운 일들이 많다. 영화감독이 그렇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또한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소설가는 멋지면서도 소화시키기 어려운 직업군 중의 하나다. 펜 가는 대로 마구 쓰는 게 글이라지만 그것이 직업으로 바뀌면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르는 것이고, 출판사와 계약한 건에 대한 완성도 해야하기에 받는 스트레스도 많을 듯 하다. 글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평생을 소설가로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소설가라는 명함으로 작가가 죽기 전까지 써야 하는 작품이 많아야 함은 물론이고, 쓴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지, 아니면 외면당할지도 모르고, 소설의 이야깃거리를 구상하는 것도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다소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내 자신이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삼십오 년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로 살아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대한민국의 독자들을 위해 태어난 작가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일본 작가다. 이번에 출시된 책《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의 작가 생활 삽십오 년을 정리하는 의미이자 소설가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어떻게 쓰며, 왜 쓰는가?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조언해주는 책이다. 소설을 쓰는 방법론에서부터 뭘 써야 하는지에 대한 소설의 이야깃거리들, 장편소설을 쓰는 방법론과 소설에 등장시키는 캐릭터들의 구상과 창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소설을  문학사적인 방법론과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평가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까도 까도 계속해서 나오는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처럼 한 문장의 의미가 문맥상 수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이지만 이런 지루한 반복을 통해 진리나 진실을 발견해가는 것이 소설을 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소설을 쓴다는 것은 몹시 ‘둔해빠진’ 직업이면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창작이라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작업임과 동시에 내가 쓴 소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지 모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작업이고,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소설가야말로 음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 질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노력을 하는 작가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소설가라고 말한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본문 119쪽 中)

많은 분들이 소설쓰기에 도전하지만, 소설을 완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첫 구절은 무엇으로 쓸 것인지, 소설의 소재거리는 무엇으로 할는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쓸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런 고민에 앞서 ‘본인이 현재 소설을 쓸 체력이 충분한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소설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은 많은 책을 읽었는지 질문해보라! 책을 많이 읽고, 내 인생의 경험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뛰어난 텍스트를 연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유명세와 함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자, 준비됐다면 지금 바로 도전해 보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말이다.

책, 직업으로서의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 양윤옥번역, 현대문학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에게 가장 큰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내 집을 갖는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본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다. 치솟는 전셋값에 내 집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나마 전세를 살고 있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난 후 집주인이 언제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할지 모르기게 하루 하루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전세값과 함께 월세도 덩달어 오르는 현실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것도 전셋값 폭등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으나 내집을 갖고 싶다는 열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주는 희망의 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짓게 될까? 본인도 한때는 시골에 황토로 집을 짓고 동물들을 친구삼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지만 시골에 내 집을 짓는다는 건 여러모로 신경쓸 일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을 쓴 저자이자 부부는 용인의 40평짜리 집에서 뛰쳐나와 서울 후암동 자투리땅에 본인들 스스로가 18평 협소주택을 지었고, 그 주택에서 자신들만의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다. 말이 18평 건물이라고 하찮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1층엔 부부의 작업실을 만들고, 2층엔 나이든 부모님의 보금자리, 3층엔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다락방과 함께 권희라, 김종대 부부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4층엔 삼대가 함께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가족실, 마지막으로 옥상엔 어머니의 소일거리인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우게 하고, 아이가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옥상정원을 만든 건물이 바로 이들 부부가 지은 18평 건물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도 정말 알찬 건물이지 않은가? 이 건물의 소개를 보면서 나도 이런 집에서 살면 정말 부러울 게 없을 것이란 생각이 마구마구 맴돌았다.

이 책《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엔 권희라, 김종대 부부가 부모님, 아이와 함께 자신들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담기 위해 상상하고 설계한 집을 짓기 위한 500일간의 고군분투 집짓기 프로젝트였다. 불편한 신도시 생활을 탈피하고 아이에게 좋은 집이자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서로의 사생활은 최대한 보장하게끔 하고, 마당과 옥상을 갖춘 집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땅은 협소하고, 원하는 희망사항은 많으니 내가 원하는 집을 그대로 짓기엔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힘든 점에 대한 토로와 고민이 이 책 속에 들어있고,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음에 협소주택을 짓는 사람들은 실수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집짓기는 자존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

(책 첫머리에서)

내 집을 짓기 위해서 어려운 점은 너무나도 많다. 땅을 고르는 일부터 건축가의 말을 어디까지 믿고 신뢰할 것인지, 시공은 어떻게 하고, 치솟는 건축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겼을 때의 타협과 시공 중 발생한 문제에 대한 설계변경 등등 내 스스로 집을 짓는다는 게 이렇게나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 줄 미쳐 몰랐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아파트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새집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가면 집안 인테리어나 벽지, 베란다 확장 등에만 신경썼지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건 상상불가의 의미였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이 바라고 원했던 집을 지은 권희라, 김종대 부부가 내심 부러웠고,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들을 살집에 적용해서 멋스러운 집을 만든 이들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들의 말처럼 이제 아파트 시대는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어깨 쭉 피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때 그 삶은 행복한 것이고, 그런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몽블랑 하우스를 꼭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우리가만약집을짓는다면, 후암동몽블랑하우스, 권희라김종대, 리더스북

외국도서에서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책이 외국소설이라면 어떻게 번역을 했는가에 따라서 독자가 느끼는 감동이나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번역자를 고르는 것도 출판사의 고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인 《백야행 1, 2》는 대한민국에서 추리소설로 가장 뜨거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자, 이미 출간된 소설을 번역자만 바꿔서 재출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본 문학의 번역하면 믿고 읽을 수 있는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이라서 어느 부분 하나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표현하려고 했던 사건들의 빠른 진행과정들과 사건의 실마리(복선)들을 잘 표현해서 더 돋보인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짓다 만 채 방치된 폐허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그 사건을 파헤치려는 형사, 그리고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사람들, 피살당한 피해자의 과거 동선을 파악하던 중 피해자와 만났던 한 여인(나시모토 후미요)과 한 남자(데라사키 다다오)가 나타나게 되고, 그 남자와 여자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하던 중 피의자였던 남자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다른 여자는 가스중독이라는 사고로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 이 살인사건의 전말에 용의자(나시모토 후미요)의 딸인 나시모토 유키호와 피해자(기리하라 요스케)의 아들 기리하라 료지가 나서게 되는데 이 살인사건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처럼 하얀 어둠 속을 걷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하나의 살인사건을 가지고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소설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도 대단했지만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범인의 윤각을 알기 위해 계속 읽어야만 했던 걸 생각하면 이 소설의 재미 또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전작들에 비해 재미나 완결성에 있어서 실망한 사람들도 많은 걸 봤을 때 이번에 재출간된 《백야행1, 2》는 재미와 완결성이라는 두마리의 토끼에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후 소년과 소녀 사이에 어떤 약속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약속이랄 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사사가키는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 결과 유키호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고, 료지는 지금도 어두운 배기관 속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백야행2, 527쪽 中)

무대가 끝난 후 관객이 다 빠져 나간 무대에 남아서 공허함의 여운을 즐기는 연극배우처럼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료지와 유키호가 어린시절에 받아야 했던 상처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공허감이 밀려 왔고, 이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치료해주고 싶었다. 돈을 위해 자신의 딸을 판 엄마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짐승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던 아빠를 그들은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종이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 유키호를 만나고 싶었던 료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움이 밀려올 뿐이다. 자신들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어린 자녀들을 방치한 채 밀회와 성적 유희를 즐긴 그들에게 마음 같아선 그들의 이마에 ‘간음(Adultery)’이라는 주홍 글자를 찍어주고 싶다. 커가면서 하얀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백야행을 해야만 했던 료지와 유키호를 생각하면 ‘부모’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아이들은 외면한 채 성적 일탈만 일삼은 인간들에게 ‘간음’이라는 주홍 글자도 과분할 것이다.

소설, 백야행, 김난주번역, 히가시노게이고, 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