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혹은 살인자》

 

 

아! 이런 설정, 이런 캐릭터 정말 너무 좋다. 완벽에 가까운 추리능력, 박학다식한데다 아이큐까지 어마어마하게 높은 까칠한 탐정이나 형사와는 전혀 다른, 똑똑하긴 하지만 ‘사립 탑정’ 이 되기에는 기본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여 각종 추리소설과 구글 검색으로 공부하는 탐정이라니!

 

작품을 이끌어 가기위해서는 개성 있는 캐릭터와 흥미로운 사건이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우청’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성공적이다. ‘우청’은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공황장애를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한 의사 때문에 청소년기를 불행하게 보냈으나 이 과정에서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정도 깨달음까지 얻었다. 그러나 그런 과거 속에서 형성된 조금 비뚤어진 성격 때문에 결국 잘나가던 교수직과 극작가의 명함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타이완의 어느 허름한 동네로 들어가 ‘사립탐정’ 간판을 내 건다.

 

별 다를 것 없던 동네에 ‘사립탐정’이라는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자 주위의 의심어린 눈초리가 계속되고 그 과정에서 경찰 ‘천 뚱’과 이웃 ‘아신’이라는 인물,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 처음으로 사건을 의뢰 받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어 파트너까지 된 ‘톈라이’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설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이들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 식사를 하는 장면은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그리고 천 뚱을 통해 타이완 최초의 '연쇄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의 정보를 알게 되어 큰 관심을 보이는 주인공. 그는 첫 의뢰 사건을 조사하는 중에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며 구글을 통해 연쇄 살인에 대해 나름의 심도 깊은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쇄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된 주인공!

 

소설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타이완은 CCTV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는데, 이 CCTV 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되나니, 희생자들과 우연히 같이 있던 모습들이 발견된 것. 소설은 이 후 언론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난도질 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이런 언론을 배경으로 삼은 경찰은 몇 가지 정황으로 주인공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의 정신병력, 대칭강박증, 잃어버린 손전등은 그를 괴짜 탐정으로 여기던 독자도 속일 장치인 걸까? 그는 진짜 범인일까,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게 될까? 소설의 반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소설은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렇게 무겁거나 끔찍하진 않다. 요소요소 유머코드는 읽는 내내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직감’과 ‘검색’ 실력으로 조금씩 진짜 탐정이 되어가고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잊고 있었던 따뜻한 인간미를 찾아간다.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세웠지만 그 경찰 덕분에 더욱 탐정의 길에 다가설 수 있었다.

 

주인공과 경찰이 함께 힘을 합쳐 범인을 잡는 과정은 꽤나 흥미진진했고 추리의 즐거움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 진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지웨이란’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꼭 찾아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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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죽음》

 

 

 

살기 위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충족요건은 무엇일까. 자신의 생존과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돌이켜보면 언제나 ‘자기희생’을 전제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니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래서 이 소설이 나는 너무나 불편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소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너무나 ‘낭만적인’ 생각을 해온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묘사해온 것처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의 그것을 나도 모르게 학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 작품들을 보면 극한의 상황에서 인류의 모습은 그리 긍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소설《풀의 죽음》은 바로 부정적인 인류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충리 바이러스’로 인해 ‘볏’과의 풀이 사라진다는 것을 가정하여 기아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처음엔 아시아 지역만의 일인 줄만 알았던 바이러스는 그곳을 초토화 하고 결국 유럽을 강타한다. 기아와 폭동이 일어난 아시아와는 달리 식량보유와 바이러스 방역에 아무 문제없다고 선전하던 미국과 유럽 정부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나고 두려움에 잠식당한 국민들이 일으킬 소요와 폭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부족한 식량 자원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인구수만 남겨 두고자 영국 정부는 여러 도시에 폭탄을 투여해 국민을 사살한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야 만다.

 

주인공인 ‘존’은 친구 ‘로저’ 를 통해 이 소식을 먼저 접하고 그의 가족과 함께 폐쇄된 런던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무리의 리더가 된 ‘존’을 필두로 길을 떠난 두 가족의 목적지는 농부인 존의 형이 있는 영국 북서부의 계곡이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그들이 런던을 탈출하여 처음엔 차로 나중에 도보로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은 채 며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며칠 사이에 심지어 실제로 기아에 허덕이거나 극한의 상황에 노출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무리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다른 가족을 너무나 쉽게 죽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모든 도덕을 벗어 던져버리고 만다. 마치 봉건주의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그 며칠 사이에. 그리고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고 만 그들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까.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류와 동물의 주식인 볏과 식물들 ‘풀’이 죽자 일어나는 일은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 그러나 단 며칠 사이에 인류가 그렇게 쉽게 모든 문명과 도덕을 버리고 포식자인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동물이 된 인간은 다시 문명의 삶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을까. ‘존’이 인간임을 포기한 순간순간에 자신의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처럼, 그 곳에만 가면, 그 곳에만 도착할 수 있다면 가진 것 없이 땅을 개척하며 하루하루를 살던‘ 인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소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쩌면 자연의 역습은 예견된 일 아닐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과 결정이 과연 납득이 되는지 아니 옳고 그름을 떠나도 되는 일인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남자와 그를 따르는 남자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며 어쩌면 소유물 정도의 존재로 전락해버린 여성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지. 너무나 쉽게 힘에 굴종하고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이 나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러나 그래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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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훌륭한 예술은 늘 새롭게 변주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꿈을 꾸게 하거나 순수한 즐거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선배 예술가들에게 늘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앨리스 죽이기》또한 루이스 캐럴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게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다.

 

물론 어떤 생각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먼저였는지 아니면 내 옆의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것의 미스터리가 먼저였는지, 아니면 꿈과 현실이 과연 진정한 실체인가 하는 이미 많은 작품들의 주제가 된 ‘호접지몽’의 설화가 먼저였는지. 어느 것이 먼저였건 상관없이 이 작품은 이 상상력만으로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앨리스가 도마뱀 빌과 다소 답답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달걀 덤프티 험프티가 담벼락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흰 토끼가 앨리스가 그 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라고 말하는 바람에 졸지에 범인이 된 앨리스는 ‘네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고 네가 범인이기 때문에 다른 희생자도 죽였어’ 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그렇다. 이 외에 연달아서 살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부적합할 지도 모르지만)이 일어나고 그 범인으로 앨리스가 지목되었고, 진범을 잡지 못하면 목이 잘릴 처지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 아리는 눈을 뜬다. 앞서 말한 일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꿈속에 일어났던 일들과 비슷한 형태의 죽음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달걀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연구원이 옥상에서 추락사 하고 교수 한명은 굴을 먹다 사망한다. 주인공은 꿈과 현실사이에 연관성을 의심하다가 꿈속에서 도마뱀인 이모리를 만나 사건을 해결하기위한 방법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살인 혹은 사망사건에 차례로 등장한다.

 

과연 이 둘은 사건의 진범을 찾을 수 있을 까. 어떤 방식으로 찾게 될까. 이 둘의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얼까. 시시각각 시간은 다가오는데 가끔씩 꿈속의 세상은 왜곡이 되기도 하고 꿈속의 인물과 이어진 현실의 인물들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나비일까, 나비가 나의 꿈을 꾼 걸까.

 

소설은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정도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호러로 변주된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다소 놀랍고 끔찍한 장면이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순환논법으로 이어지는 대화와 현실에서는 맞지 않지만 그 세계에서는 정당한 논리들로 주인공을 몰아가는 부분을 넘어선다면 미스터리 작품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판타지 작품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의외의 반전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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