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파크도서 북&
[현장스케치] 사진이 보여주지 못하는 그 이면에 대한 고백
지난 8월 5일 월요일 대학로 벙커1에서 르포르타주 사진작가 노순택의 첫 사진 에세이 <사진의 털>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사진작가 노순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벙커1에 모인 사람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 <사진의 털> 표지
노순택 작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전공했으며 <분단의 향기> <얄긋한 봄> <붉은 들> <비상국가> <망각기계> 등의 국내 개인전과 동명의 사진집을 펴냈다. 2009년 올해의 독일 사진집상 은상 그리고 2012년 제 11회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사진은 유망한 게 아니라 요망하다”는 작가의 말로 시작된 이날 강연회는 <사진의 털>에 실린 에세이의 낭독과 함께 사진을 감상하고 작가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사진에 대한 매력을 설명중인 노순택 작가
그가 말하는 사진의 첫 번째 매력은 사진이 매우 쉽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휴대폰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사진 기능이다.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보면 먹기 전에 사진부터 남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사진이라는 것은 중독처럼 굉장히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고대의 어느 비평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것이지만 미래의 문맹은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현대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이미지 생산자인 동시에 이미지 소비자이다. 이미지가 발생시키는 사건과 상황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다.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폴 들라로슈라는 화가가 절망에 찬 비탄을 했다.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고. 이전엔 인간의 손으로 노력해서 재현해야 했던 것들을 사진기의 손을 빌려 간단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순택 작가가 느낀 사진의 두 번째 매력에는 반전이 있었다. 사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쉬워서 시작한 사진, 하면 할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어려워지는 이유는 사진이 대상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상을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 시공간에 함께 존재해야 한다.”
강원도 해병대 부대의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표어처럼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진이 쉽기만 했으면 사진에 그토록 매달리고 집착하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리고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정신노동의 측면보다는 육체적노동의 측면이 더 강하다는 사실이다. 사진을 흔히 존재 증명이라고 한다. 그 존재가 있는 곳에 사진사와 사진기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바다에 가지 않고도 바다에 관한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바다에 관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바다에 가야 한다. 사진에는 공간과 시간이 개입된다. 사진을 찍는 순간 그 장면은 이미 과거를 담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진은 존재증명이자 부재증명이다. 이러한 사진의 속성들이 사진을 더욱 굉장한 매력으로 느끼게 하고 공부하게 만든다.”
↑ 포토에세이를 낭독중인 노순택 작가
노순택 작가는 ‘사진이 사실을 말할 거라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사진이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진 작업을 해나갔다고 말했다. <씨네 21>에 5년째 포토에세이를 쓰고 있고 그것들을 엮어서 <사진의 털> 사진집을 내게 되었다는 그는 <사진의 털>에 수록 된 첫 번째 에세이로 낭독을 시작했다.
낭독을 마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책 제목을 사진의 털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사진이 세상을 다 보여준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착각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이 세상의 일부를 보여줄 수는 있다. 마치 털로 몸의 부위를 알아볼 수도 있는 것처럼. 머리털과 겨드랑이털의 생김새와 질감이 다른 것처럼, 사람과 짐승의 털이 다른 것처럼. 털로 몸통을 암시하거나 몸통을 추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털 자체를 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이 진실이고 세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진을 모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순택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징도 이야기했다.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굉장히 편협한 매체다. 사진은 찰나를 담을 수 밖에 없으며 펼쳐진 세상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극히 일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사진은 일종의 가위질이다. 사진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은 선택과 배제를 통한다.”
노순택 작가는 또한 사진은 겉을 취할 뿐 안은 모른다고 말했다.
“’사진이 인간의 내면을 담았다’라는 표현에 반발감이 생긴다. 사진은 겉만 담을 뿐 안을 담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한 상태여야 사진을 시작할 수 있다. 용산참사현장에 나가있을 때 검은 옷을 입은 용역알바를 하는 아이의 팔이 너무 예뻤다. 그 친구가 내뱉는 욕설이나 고함을 듣다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그의 팔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떤 존재를 향한 증오와 반발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이 친구에게도 일종의 선택이라는 것이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똑같은 삶의 처지에 놓여져 있을 때 누구는 부유층을 증오하는 조폭이 되고 누구는 용역깡패가 되는 것일까? 그들을 가르는 계기와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작가 역시도 그것에 대한 답은 모르지만 현장에서 드는 그런 의문들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썼다라고 밝혔다.
↑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중인 노순택 작가
노순택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로 분단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용산참사도 엄밀하게 말하면 분단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중요한 많은 이슈들이 분단 모순에 의해서 많이 압축되어 가는 것들을 봐왔다. 그런 이슈에서 나타나는 빨갱이, 친북과 같은 문법들이 우리가 분단 체제가 아니라면 그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분단체제 안에서의 한국 사회의 갈등들을 작업해왔다.”
그는 많은 논란에 쟁점인 사진가의 윤리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많은 사진가들이 죽음을 노린다. 특히 20세기를 보여주는 사진들은 죽음의 장면들을 포착하고 있다. 20세기 사진의 정점에 저널이 있다면 그 저널리즘의 정점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2012년 인도 뉴델리에서 한 남자가 분신을 했다. 티베트 출신의 잠뺄 예시라는 이 남자는 후진타오의 인도 방문에 맞춰 분신으로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항거한 것이다. 그의 죽음이 담긴 이 사진을 놓고 트위터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사진가들이 있었음에도 불을 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날 그 장소에 있던 사진가들이 해야했던 일은 자신의 죽음과 그 이유를 세상에 알리려는 잠뺄 예시의 호소를 전파하는 것이었을까, 눈 앞의 불을 끄는 것이었을까.”
그의 질문에 한층 숙연해진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노순택 작가는 “사진가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많이 거론되는 것이 1994년 퓰리처상을 받았던 수단의 검은 독수리라는 사진이다. 굶주린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소녀의 주위를 맴도는 검은 독수리의 사진인데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라는 사진가가 그 이듬해 자살했다.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많은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단의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구호의 손길이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문제는 항상 헷갈린다.”
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진은 항상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만도 않다. 오히려 사진이 보여주는 텍스트보다 사진이 놓여있는 맥락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훈련들이 많이 이루어져야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함께 그 맥락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는 말로 노순택 작가는 강연회를 마쳤다.
↑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가 메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