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뱃속에서 작품을 함께 한 숨어있는 공동저자인 아들 현제, 수학강사로서 청소년의 일상과 생각을 알려주고 자료조사에 도움을 줬던 남편. 그녀 곁에 이들이 함께 있었기에 작가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픈 아이를 대하듯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벙커>는 학교에서 원치 않는 폭력사건에 휘말려 가해자로 찍힌 주인공이 우연히 한강대교 아래 벙커를 발견하고, 그 곳에서 한 달간 살면서 겪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누구보다도 도려내고 싶은 어린 시절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신념을 가지게 했고, 덕분에 현재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럼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려내야 하는 시간은 없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Q <벙커>는 학교,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주요 테마입니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뉴스나 보도 매체를 통해 청소년 폭력사태를 접하면서 요즘 청소년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 찬란한 시기를 암울하게 함부로 보내버리는 것 같았거든요. 우리 세대보다 요즘 아이들의 세상이 외부세계와 더 단절돼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어른이 되고 보니 훨씬 도드라지게 보였던 것 같아요. 폭력이라는 소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긴 하지만 십대 아이들에게 찬란한 그 시절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Q 소설 속 벙커는 어떤 의미인가요?

Q 하필 한강대교 아래 벙커를 숨겨둔 이유가 있나요?

벙커를 어느 장소에 둘 지는 계속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전철을 타고 한강철교 위를 지나는 순간 한강대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곳을 마음이 숨어있는 공간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며칠 후 직접 그 곳을 찾아가 이곳 저곳 관찰하고 사진도 찍었죠. 순간 벙커 속 주인공의 모습이 투영되더라고요.

Q 이번 작품은 작가의 십대 시절과 맞닿아 있다고 언급했는데, 작가님의 그 시절은 어땠나요.

제가 중3에서 고1로 올라갈 무렵, 저희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었어요. 당시 연합고사를 봐야 하는데 집이 어려워져 공부할 문제집이 없었죠. 먼저 합격한 친구들이 버린 참고서를 방과 후에 몰래 주워다 공부했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안이 서서히 회복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만은 숟가락으로 도려내고 싶을 만큼 굉장히 힘들었어요.

Q 가정폭력은 70%가 대물림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학교폭력 역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 현상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이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작가님만의 해결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전문가처럼 대안까지 내놓으면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평소 생각하는 건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부모의 의지나 욕망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가 어른과 대등한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된다면 이런 폭력의 대물림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Q 주인공은 결국 학교를 떠나 자연의 배움터로 떠납니다. 폭력이 벌어진 학교와 사회에서는 해결이 힘든 걸까요?

요즘 아이들은 매일 아파트-교실-학원-PC방 같은 답답한 콘크리트 속에서 지냅니다. 저는 그 틀을 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서 더 많은 걸 배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인공을 몽골로 보냈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떠난 아이들을 돌아올 텐데, 그 동안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열심히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결국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상처나 불안, 잡념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생각의 벙커에서 나와서 세상 속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Q 이 작품을 통해 작가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도려내야 하는 시간은 없다’라는 겁니다. 힘들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결국 그 순간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해요.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시기를 절대 놓치지 마세요. 언제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Q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처녀작 <내 이름은 망고>는 작가를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언급을 했는데요, 너무 빠른 고민이 아니였는지요. 때문에 두 번째 작품이 나오는 데 부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부담감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번 작품 말고 중간에 다른 원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 보니 제 첫 번째 작품이랑 너무 닮아 있었어요. 앞으로 오랫동안 글을 쓰기 위해서는 쉬운 길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장 그 원고는 버리고, 새롭게 이 작품의 초고 작업에 몰두했지요.

Q 서두에서 작품을 쓰는 동안 엄마가 됐다고 했는데, 작품에 끼친 영향은 없었나요?

캐릭터가 강화됐어요. 세 명의 주인공 중에 민호라는 어린 꼬마애가 있는데요. 제가 아이를 낳고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민호의 비중이 커져 버렸어요. 모성애란 아이를 낳는 순간 폭발적으로 샘 솟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증가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육아를 하다보니 나의 아이만큼이나 남의 아이도 소중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민호라는 캐릭터가 더 애잔하게 다가왔어요.

Q 훗날 청소년기를 겪을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Q 앞으로도 쭉 청소년소설을 쓸 계획인가요? 혹시 본격 성인소설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세요?

제가 글을 쓰면서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글을 쓰자." 다음 세대는 어린이가 될 수도, 청소년이 될 수도, 성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받은 재능을 오롯이 다 쏟아 부을 수만 있다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 입니다. 힘든 순간도 좋은 순간도 결국엔 지나가고,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도 사라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담담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멋진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요. 독자분들도 각자 그런 멋진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뽀글머리가 꽤 어울리는 40대 아저씨가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북 칼럼니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작가이자 자신의 재능을 아낌 없이 나눌 정도의 재주도 있다. 어느 날 그는 단골 술집에서 여자, 출세, 재테크, 부동산 따위 말고 품위 있는 멋진 이야기를 해보자고 지인들에게 제안했다. 모임은 본인의 이름을 따서 ’수요밥장무대’라 지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이 모여 인문에세이 <밤의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외로움, 연애, 인간관계, 일과 꿈, 돈 등에 얽힌 그의 개인사와 독서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2~30대 도시남녀를 위한 책 처방전이다.

저자 밥장은 ’진화는 돌연변이를 좋아한다’며 엉뚱한 돌연변이임을 자처한다. 돌연변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보험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평균으로 남고 싶지 않아 철 드는 것을 거부한다는 그는 재미 하나만을 좇아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요즘 재능나눔에 한창 빠져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아주 다양했습니다. 모임 일주일 전에 블로그를 통해 미리 알렸습니다. “맥주값을 들고 더 빠로 오면 ‘사치품의 상대성 원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뭐 이런 식이었죠. 교과서 편집디자이너, 기자, 군인, 심리상담가, 작가, 대학생까지. 회를 거듭할 때마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분야에 있는 친구들이 더 빠로 모였습니다.

Q 주제와 관련된 도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나요?

닥치는 대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일본 생물학자가 쓴 <모자란 남자들>을 읽고 수컷들이 암컷보다 왜 일찍 죽는지 저자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수컷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또 <은교>와 <싱글맨>을 읽고 멀어져 가는 젊음을 바라보는 늙은 이성애자와 늙은 동성애자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구상에 60억 인구가 살고 있다면 60억 개의 사랑도 존재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감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원고를 쓰게 돼 있듯이 수요일이 가까워지면 없던 아이디어도 샘솟았습니다.

Q 수요밥장무대가 기존 인문학 특강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다른 인문학 특강을 들어보지 못해서 뭐라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저 수요밥장무대에서는 제 경험과 독서에서 얻은 이야기를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품격있는 대화를 이끌어가는 40대 남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주위에 둘러봐도 멋진 인용을 날리거나 여유있게 이야기 들려주는 아저씨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남 탓 하지 말고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허세도 끼어있는 셈이죠(웃음).

Q <밤의 인문학>에는 작가의 개인사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혼, 연애, 성적 취향 등 자기 고백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몇 년 전에 모 출판사 사장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란 자신이 쓴 글이 징그러울 정도로 써야 한다’고 말이죠. 꾸며대기보다 날것 그대로 드러낼수록 독자들이 받아들일 여지가 많아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장님 조언대로 있는 그대로 써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꺼내놓고 나니까 ‘음. 별것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걸 이야기하지 못하고 감추려고 했을까. 잘했다. 시원하다’라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 뒤로는 "솔직하게 말해서"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럼 나머지 말들은 솔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요? 

Q 이번 책은 도시남녀를 위한 책 처방전이라는 부제가 있는데요. 소개된 주제 중에 도시남녀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요?

외로움, 사랑, 일과 꿈, 돈 같은 주제입니다. 2~30대 도시남녀는 멋을 알고 삶을 알고 재미를 압니다. 다만 모든 걸 쫓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돈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즉 내가 생각하는 삶과 실제 하루하루가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돈’과 ‘성공’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믿는 겁니다. 돈을 벌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 걸까요? 또 성공이란 정확히 어떤 ‘상태’, 어느 ‘순간’인 걸까요? 삶이란 어느 순간에 멈춰 있지 않고 지금도 조금씩 꾸준하게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걸 받아들이고 인생에 대해서 알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 책에는 도움이 될 만한 멋진 이야기들로 차고 넘칩니다.

Q 이번 책을 통해 밥장 저자의 독서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평상시 독서량이 어떻게 되나요?

양보다 책읽기를 바라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작년 한 해 100권 정도 읽었습니다만 진짜 독서광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한 숫자는 못 됩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밑줄 긋고 노트에 옮기고 다시 그림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책에서 양분을 얻어 한 걸음씩 내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읽기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또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외로움과 사색은 좋은 친구이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Q 평소 좋아하는 작가와 책을 소개해주세요.

알랭 드 보통을 싫어합니다(웃음). 왜냐하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 다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의 기술><불안><일의 기쁨과 슬픔>. 그가 쓴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얼른 글을 써야지’라는 조바심이 듭니다. 그럼 뭐합니까? 이미 다 보통이 써버렸는데 말이죠. 게다가 잘 쓰기까지 합니다. 진심으로 화가 납니다. 어렵사리 ’수요밥장무대’를 만들어 <밤의 인문학>을 냈는데 보통은 이미 작가들을 모아서 <인생학교>란 걸 냈더군요. 맥이 빠집니다.

Q 명문대 졸업, 대기업 취업 등 순탄한 길을 걸어왔는데, 그 길을 박차고 나온 이유가 뭔가요?

그때도 잘 지냈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일이 있었지요. 퇴사와 이직, 결혼과 이혼,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등. 하지만 이 정도는 살면서 누구나 겪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인생도 이렇게 과장, 부장을 달고 운이 좋으면 임원이 되어 퇴사하고 연금을 받으며 마무리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래, 미래는 모르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더 설레는 거야. 파도타기를 하듯 인생을 매끄럽게 넘어볼거야’ 이렇게 바뀌더군요. 어떤 일을 겪느냐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림에 빠지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어느 날 그림이 제게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로 꾸준히 그린 것뿐입니다.

Q 현재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북칼럼니스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나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인생은 흐릅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먼저입니다. 저는 제 시간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계획을 세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또한 새로운 일이라면 일단 해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보고 배우고 피드백을 얻고 다시 해보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까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Q 작가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되는 것.

Q 뒤늦게 꿈을 이루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안정과 권태, 설렘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지금 사는 게 지겹다면 그만큼 안정된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지금 몹시 불안하다면 설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권태를 없애고 불안을 없앤다? 그러면 안정과 설렘도 함께 사라집니다. 문제는 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쉽지 않으니까 재미있고 값진 것입니다. 쉬운 일은 재미없습니다. 권태롭습니다. 안정이 찾아와도 다른 재미를 찾아 기웃거리게 됩니다. 호기심은 누구도 쉽게 끊을 수 없는 최고의 마약이자 중독입니다.

Q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되자"는 말처럼 밥장식 시간 관리법을 소개해주세요.

좋아하면 오래 버틸 수 있고 오래 버티면 잘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차곡차곡 쌓으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잘하면 전문가로서 남보다 더 큰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됩니다.

Q 꿈 많은 저자의 20대가 궁금합니다. 그 시절 어떤 사람이었나요?

저는 지금 더 꿈이 많습니다. ’20대가 꿈이 많다’라고 단정 짓는 건 어쩌면 선입견이 아닐까요? 실제로 만난 몇몇 20대 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러준 생각과 태도를 그대로 되풀이했습니다. 부모님 말씀만 들으면 부모님보다 못한 사람이 됩니다. 전문가도 모든 걸 다 아는 게 아닙니다. 또한 세상이 말하는 상식과 트렌드는 그저 과거에 대한 분석일 따름입니다. 저도 20대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님 말씀 좋아하고 상식을 따라 평균을 지켰습니다. 이른바 모범생이었습니다.

Q 작가님은 ’철이 든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들립니다. 평균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진화는 돌연변이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많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살면 미래에 대처할 방법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도 필요하고 변호사도 필요하고 백수도 필요하고 연예인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직업의 수만 하더라도 만 개가 훨씬 넘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더 잘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2007년부터 쭉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데요, 재능기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재미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돈’ 이외에 다른 가치있는 것들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팬들, 주민들의 따뜻한 배려, 멋진 작가라는 평판, 새로운 일에 대한 경험, 낯선 세계로의 떠남… 이 모든 것들이 재능기부로 얻은 가치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재능기부 대신 재능나눔이라고 말합니다. 재능을 나누면 그만큼 가치있는 다른 걸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는 것(기부)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내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서,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달려갈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재미나겠다’ 싶은 역할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진화는 언제나 엉뚱한 돌연변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Q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 페이스북(realbobchang)과 블로그(blog.naver.com/jbob)를 지켜보시면 됩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책 속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쓴 <순정만화>란 글의 한 구절이고요.

이어서 말씀드리면 이 구절입니다.

<러브 액추얼리>나 수목드라마 속 사랑은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은 왜 그다지 멋지지 않을까요. 내가 조인성이 아니고 너도 김태희가 아니라서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사랑의 마법’은 편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시작부 연애 장면처럼 번쩍하고 황홀한 순간만 오려내 연달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롱테이크입니다. 

사진제공: 앨리스

Q 세계문학상 우수작에 당선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판사 편집자, 만화가에 소설가라는 직업도 추가됐네요.

직업이 여러 개라기 보다는 ‘스토리텔러’ 하나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으면 특성에 맞게 영화, 만화, 소설 어떤 매체에 어떤 장르로 그려낼까 고민해요. 사실 전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가가 꿈은 아니었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사에 입사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이야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좀 더 창조적인 작업이 하고 싶기도 했고요.

Q 이번 작품이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들었습니다.

첫 번째 장편소설은 여러 공모전과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들었고요. 그래도 첫 작품이라 너무 소중해요. 이번 작품은 3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시나리오 작업과 병행하느라 소설에만 전념할 수 없어서 스스로 답답하기도 했지만 즐겁게 썼어요. 캐릭터 또한 그 동안 살면서 쌓아온 캐릭터고요. 도전이라기보다 자신 있게 그려낸 이야기에요.

Q 주인공 영준은 본인의 삶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인가요.

일견 그래요. 그런데 영준이 100% 저라고 말할 순 없어요.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영준이 가난한 창작가이다 보니 자전적 소설이라고 오해하시는데 영준의 직업과 주변 상황만 경험에서 가져왔어요.

Q ‘작가의 글’을 읽으니 작품 속처럼 남자 5명이 같이 지냈던 경험이 있던 것 같은데.

3년 전 합정동에 살고 있을 때 선후배들이 놀러 와서 안가고 저희 집에 하룻밤 묵은 적이 있어요. 대학원생, 무명작가, 일 없는 번역가, 만화 스승님이었죠. 20대에서 50대까지 각 세대의 사람이 모여서 놀다 남들 출근할 때 일어나서 해장국을 먹었죠. 그 때 상황이 다들 안 좋아서 서로 고개 숙인 남자라고 놀리고 그랬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마냥 웃고 있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구나’라고. 누가 보면 루저지만 저희는 ‘해피 루저’들이었죠. 거기에 영감을 받아 느긋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자 결심했어요.

Q 표지에서부터 유쾌한 남자들의 분위기가 물씬 나요. 남자들만 등장하는 남성 위주의 소설은 오랜만인 것 같아요.

‘브로맨스’라는 장르가 있어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인데 남자친구들끼리의 가까운 사이를 뜻해요. 이번 작품이 브로맨스 장르는 아닌데, 그런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완성하고 보니 실제 브로맨스처럼 세련된 느낌보다는 칙칙한 느낌이 더 강해졌네요(웃음).

Q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의 남자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세대를 구성한 의미가 있다면요.

다양한 세대의 고민과 삶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30대니까 딱 중간 세대잖아요. 60대 건물주 할아버지와 가출한 10대 소년까지 조금은 어긋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이 강했어요. 서로 자조하면서 격려하고 또 서로의 상황을 환기시켜줄 테니 이야기가 되겠다 싶었죠.

Q 개인적으로 독설가 캐릭터로 나오는 ‘슈퍼 할아버지’가 인상 깊었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이죠. 산업화 시대를 겪고 그 시대를 기억하며 ‘노는 젊은이’에 대한 경계가 심한. 실제로 대학 때 농촌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 비슷한 캐릭터의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그 분 별명도 ‘슈퍼 할아버지’였는데 슈퍼를 운영하시는 분은 아니고 무슨 일이든 잘 하시는 분이였죠. 대학생인 저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키셔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작품에 집 나온 젊은 놈들이 모여있으니, 젊은이들보다 정신적으로 힘이 센 캐릭터를 넣고 싶었어요.

Q 그래도 역시 애착이 많이 가는 건 주인공 ‘영준’ 아닌가요?

아니에요. 영준에게는 제 이야기가 조금은 있어서 거리를 두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싸부가 애착이 가요. 싸부 캐릭터는 실제 인물이거든요. 2년 전에 돌아가신 만화 스승님인데 생각이 많이 나요. 8월 2일이 마침 기일이라 찾아가서 책도 드리고 인사하고 오려고요.

Q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소설에 대화체가 참 많아요.

제가 그렇게 밖에 못써요(웃음). 소설 문체를 특별히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풍성한 대중소설을 쓰다 보니 대화가 많이 들어갔죠. 중요할 때만 대화를 사용하는 게 세련된 소설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역량 부족인 것 같아요. 문체에 더 신경 쓰고 대화를 아끼고 싶긴 한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서 노력해야죠. 대신 독자들에게 잘 읽힌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대중소설이니까 편하게 읽히면 그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에 영준이 ‘수유녀’ 선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부분은 작품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소심했던 영준이 욕심을 가지잖아요. 소설 속에서 선화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남자들을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여자에요. 볼링공이 볼링핀을 맞추듯이 여자가 나타나자 영준과 그 무리들도 알아서 동거를 끝내죠. 소심하고 나약한 영준이 선화를 만나면서 소중한 것이 생겼고 그걸 지키려는 용기를 발휘해요. 그게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 혹은 정서적 공감 같아요. 원래는 다들 폭탄 하나씩 안고 끝나는 느낌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게 더 현실적이니까. 모든 나쁜 상황이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잖아요. 선화와 함께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돼 아쉽기는 한데 웃으며 소설을 덮을 수 있어 만족해요.

Q 작품 속 인물들은 처절한 상황임에도 굉장히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본인은 어때요.

원래 제 성격은 인물들과 정반대에요. 굉장히 안달하는 성격이죠. 그런데 계속 일이 잘 안 풀리다 보니 달관하는 면이 생긴 것 같기도 해요. 그게 소설로 표현됐고요.

Q 망원동에는 계속 사신 건가요?

추천사에 잘못 들어간 게 있는데 망원동에 거주한 적은 없어요. 합정동, 성산동에 살았죠. 망원동은 그냥 옆 동네니까 자주 갔어요. 실제로 굉장히 좋아하는 동네에요. 망원시장도 정말 좋고. 그래서 망원동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실제로 지역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따뜻하거든요.

Q 앞으로 소설과 시나리오 창작을 병행할 것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뉴욕을 털어라>라는 작품이 있어요. 미국 고전소설인데 영화로도 제작됐죠. 최근에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마이클 셰이본, 스콧 스미스, 이사카 고타로 작가들의 작품이 영화화 됐는데 전 영화로 변신할 수 있는 작품을 즐겨봐요. 궁극적으로 저는 제 소설을 시나리오로 쓰고 싶어요.

Q . ‘재미있는 이야기’ 그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떠들고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스토리텔러, 이야기꾼을 목표로 삼았어요. “이야기하는 사람은 가난하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잖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는데 과정으로서의 꿈이지 완성으로서의 꿈은 없는 것 같아요. 살아가고 이야기하고 그러는 게 그냥 꿈 자체죠.

Q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로 준비중인가요.

대리여행자요. 바쁜 사람을 대신해서 혹은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여행을 가는 특별한 남자 이야기에요. 의뢰자 컨셉대로 여행을 가고 SNS에 올리는 거죠. 저는 단기여행보다 체류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좀 더 다녀보고 그 후에 완성하려고요.

Q 독자들한테 한 마디 해주세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랑 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때 사회가 뒤숭숭했어요. 아버지가 “세상이 참 요지경이죠?”라고 택시 기사님한테 물으니 그 분이 “그쵸. 다들 소설을 안 읽죠”라고 하더라고요. 답을 듣고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는데 기사님이 말한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하는 거더라고요. 학교에서 만난 문학 작품만 소설이라고 인식했었는데 그 이후로 생각이 변했어요. 그 때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일지도 몰라요. 제가 쓰는 소설로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사는 게 힘들지만 많은 분들이 낭만과 유머로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