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동화 형식을 취한 지식전달서다. 
요새처럼 가족관계가 심플한 시대에 아이들에게 '
당숙'이니 '외종사촌'이니 하는 말들은 아주 생소하다. 이건 무슨 소리...할 수준. 

우리 아이들만해도 외삼촌은 있지만 작은 아버지나 큰 아버지는 없고, 
사촌동생도 한 명 뿐. 
아주 단촐한 식구라 아빠의 사촌들이나 친척들과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촌수나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 기본 그림조차 그리기 어려운 상태. 

이 책에는 가족 관계도가 큰 포스터 (벽에 붙이는)로 함께 제공된다. 굉장히 유용한 포스터.


동화는 미국에 사는 주인공의 가족이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만나게 되는 
가족들간의 끈끈한 정에 관한 이야기다. 
할아버지 생신때 만난 많은 친척들은 처음 만나는 관계이지만 
그 안에 가족간의 질서가 있고 관계가 있다는 것과, 
우리는 마치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자녀, 누구의 손자, 혹은 누구의 조카 등 
많은 사람의 가깝거나 먼 친척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생신때 할아버지의 소원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보는 것이었는데, 
할아버지께 기쁜 선물을 드리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주인공은, 
사실 할아버지께 더 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잊어버리고 살았던 가족. 

단촐한 가족에 익숙해 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주 딱 좋은 책인 듯 싶다.
약간 어려운 한자어들이지만, 관계도를 통해 아이들은 '가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나의 근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는 주인공 아이는 소위 말하는 학원 뺑뺑이를 도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엄마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자신의 교육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시지만, 
정작 아이는 하교 후 늦게까지 다니는 학원에 지치고 힘들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것들은 알아주지 않고 
본인의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어대고 잔소리를 하는 통에 아이는 지쳐만 간다. 
어린이 동화를 쓰는 이웃 작가 아저씨를 만나면서 마음에 조금씩 위안을 받아가는 아이. 
결국 아이는 부모와의 갈등을 겪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일과와 심리를 가감없이 재미있게 그려냈다. 
힘든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기특한 아이지만, 
진정한 소통 없이 혼자 감당해 내기에는 현실이 너무 바쁘고 힘든 아이. 
참다 참다 폭발할 지경까지 이르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게다가 함께 놀거나 소통할 수 있는 형제도 없다. 
오로지 혼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일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

요새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바쁜지...3학년만 되어도 5교시 6교시를 마치면 3시 가까이 된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학원으로 학원으로...’태권도’도 ’피아노’도 학원이라고 여기고 피곤해만 하니...
아이들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기쁨이 있기나 한걸까. 
정말 자기의 필요에 의해 필요에 따라 본인의 의사로 
뭔가를 배우게 될 때 느끼는 희열과 열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부모들은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자신들의 주관으로만 아이를 대한다.


그렇게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한결같다.
어떤 의미의 한결같음이냐하면, 언제나 필요에 의한 말 '숙제했니?' '몇 점이니?' 와 같은 대화.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주고, 일방적 소통이 아닌 진정한 마음의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 아이들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피폐해 지지 않을까. 
그러니 이렇게 아이들이 ’뿔’이 날 수 밖에..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화’나 ’분노’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할 듯 하다. 
상대를 생각하는 대화의 노력과 배려. 가까운 가족 간에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부모의 재혼으로 만난 남녀. 남매가 된 ’그’와 ’나’.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그의 옆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 그의 소소한 심부름에 즐거워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슬쩍 건드려도 보는...
끝까지 ’오빠’라는 소리는 할 수 없는 ’나’의 마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속에서 싹트는 사랑은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다. 
어쩌면 이제 너무 많이 울궈먹어 식상하기까지 한 설정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런 이야기가 쓰인 시대가 1950~60년대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식상함이 놀라움과 참신함으로 바뀐다. 
그 시대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그것도 남매 사이의 묘한 사랑의 기운이라... 

그 당시 신문화와 서구적 연애에 대한 동경이 있던 젊은 층에게는 충분히 어필하는 단편 소설이지 않았을까 가늠도 된다. 
그 때의 시대상황을 보면 소재 자체도 그렇지만, 강신재 작가의 감수성 예민한 문장들이 그런 분위기를 더욱 부추킨다. 

짧은 단편 속 그의 문장들에 빠져 읽어내려가다 보면 여러가지 상념과 추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성을 건드리고 
그 옛날 아슬아슬한 감정들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온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지독한 절망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기쁠 수 있는 것. 
표현되지 않지만 알 수 있는 서로의 감정의 교류들....
이 둘은 한참을 그렇게 가까와지다 멀어지다를 반복하다 결국 ’계속 사랑하기로’ 한다. 
아직 젊고 푸르른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안은 두 사람.

짧은 소설 속에는 줄을 타는 듯 세심하고 위태한 순간의 감정들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 ’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어느새 ’그’의 비누향기를 맡게 된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정확히 얼굴 생김생김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의 옆에 서면 항상 마음 설레게 했던 어떤 향기는 그대로 기억해 낼 수 있다. 아주 나중에 그 향이 어떤 브랜드의 향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아직도 그 향수 냄새는 내 몸 속 어딘가 - 아마도 심장 근처-에 저장되어 지금도 누군가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처음 그의 향기를 맡았던 것이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아마 그래서였을거다. 낯설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흔치 않던 향수 냄새..그리고 멋졌던 그의 옆모습이 오래도록 남았던 것이. 약 10일간의 파리 출장을 함께 갔던 그는 쾌활했고 동시에 우울했다. 일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틈이 없어서 다가갈 수 없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온통 즐거운 기분이었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표정과 몸짓은 가벼웠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는 내 얼굴에 짖궂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유 시간에 내 뒤를 쫏아와 결국 내 쇼핑을 방해했다. 악세사리를 좋아했던 내가 어느 작은 가게에서 반지들을 이리저리 껴보았을 때, 내 옆에 서서 내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던 그의 옆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센 강 옆에 위치했던 호텔 덕에 잠깐의 여유 시간엔 강변을 산책했다. 함께 벼룩시장을 누비고, 센강 주변에 늘어 놓은 그림들을 구경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일이 있어 만날 때마다 뭔지 모를 설레임과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처지였기에, 어느 누구도 한걸음 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옆을 스쳐가던 그의 향기와, 세심한 손길과 배려, 약간 긴장한 듯한 침묵들...이상하다. 그의 얼굴은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데 그 모든 분위기들은 그대로 또렷하게 기억이 나니 말이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실상 내가 설레고 즐겼던 것은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가 주었던 ’향기’나 ’웃음’ ’작은 손길’ 따위였을지도. 알듯말듯한 감정 같은건 약간의 두려움도 주지만 긴장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짜릿함마저 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일. 그때 그와 함께 내가 느꼈던 모든 감각적인 감정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 이후로 많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한 사람을 사랑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잠깐 스쳐가는 인연과의 짧은 사건에서, 혹은 그냥 친구였던 ’그’였지만 잠시 느꼈던 아련함이라던지 살짝 비껴가던 누군가의 손길이라던지, 알듯말듯한 세심한 배려에 잠시 흔들리는 마음이라던지...그런 감정들은 한밤중의 화려한 올림픽 대로의 비현실적 조명, 어둑한 캠퍼스 뒷산 어딘가에서 풍기던 소스락 낙엽 냄새, 지하철 역 구석진 작은 서점에서 나는 오래된 종이 느낌 같은 것이 배경이 되어 이렇게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잡고 있다. 

 

사랑은 아니었다. 분명.
그런데 어떤 때는 사랑보다 더 강하고 매혹적인 순간들이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익지 않은 열매같고 쉽게 내딛기엔 쳐두른 담이 높을 때, 그런 순간들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애매모호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위험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은...언제까지 간직하고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돌아보면 아련해지고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나를 살게 하고 생기있게 하는 순간들. 소중했던 날의 순간들. 

60여년 전 쓰여진 짧은 소설 한 편에 한참을 멀리 날아갔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