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생각한다.

“나에게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훌쩍 커버린 몸 뿐이라고....”

난 사춘기때와 변한 것이 없는데 세상은 나에게 ‘어른‘이라고 말한다.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왠지 어색함과 민망함이 밀려온다.

내 마음속에 어린아이는 보지 못하고 모두들 날 ‘어른’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10대에도 늘 갈팡질팡했고, 20대에도 인생의 겉저리만 맴돌았다.

그래서 30대나 40대가 되면, 나의 학창시절 완고하고 단단해 보였던 부모님의 삶의 모습처럼 무언가 인생이 뚜렷해지고 확실해 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도 난 늘 불안하고 나의 인생 또한 확실해 진 것이 없다.

늘 망설여지는 인생 앞에서 확신과 담대함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누구나 한 번은 고민해 봤을 법한 나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 어느 군간 숨 막힐 정도로 삶이 버거워질 때가 있다.

현실과 효율만 따지다 나는 온통 벌레 먹은 사과처럼 제 값어치를 못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그 벌레 먹힌 자국이 ‘괜찮아’보인다.

나는 벌레 먹힌 자국이 보기 싫어 짜증만 냈는데. 김난도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듯하다.

”아직 건강하니까 벌레도 먹는 거야. 살아 있잖아.“』

 

인생에 한 번쯤은 꼭 들어볼 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이 시대의 ‘신정아’라는 인물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일그러진 세상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세상살이의 결과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학력, 스펙, 지연이라는 얼룩으로 뒤덮힌 사회가 결국은 ‘신정아’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포악한 언론의 폭력과 사회의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철저히 희생될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동료라 믿었던 이들의 비난에 대한 배신감을 이 책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게 세상은 나를, 내가 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버린다.

가십과 이슈가 필요한 이 세상에서 철저한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그녀는 어쩌면 언론 몰이의 최대의 피해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후회는 있으되, 반성과 성찰이 없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무조건 그녀의 편에만 설 수 없도록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소위 말하는 ‘신정아 사건’을 내세운 흥미위주의 책팔기가 아니라면, 자신의 삶의 회고와 억울함에 대한 호소 보다는 조금 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를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일대의 논문 대필이나 유부남과의 불륜에 대한 잘못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말이 좋아서 일이 너무 바빠서 논문 대필가에게 더욱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지.. 거의 다 대필을 했을지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줄의 레포트를 썼더라도 내가 한 부분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이미 자신의 논문이 아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력의 문제가 커다란 이슈화가 된 것은 자신에게 유감있는 사람들이 작은 흠집을 파고들어 문제를 확대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신정아 본인이 별다른 노력없이 손쉽게 예일대라는 학위를 가지려 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논점이 어긋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이 책이 끝나는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남이 하면 볼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공식이 이 책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공감을 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이 책으로 소위 우리네 사모님들과 정치권의 미술품의 자금이 어떻게 운영이 되고, 깨끗한 정치인이라 부르짖는 사람들의 지저분한 뒷모습은 당연히 자극적인 흥밋거리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느낌은 그저..... 흥밋거리, 그냥 가십거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솔직한 소감이 될 것 같다.

 

 

누구나 행복한 세계를 꿈꾼다.

어떤 이는 그 행복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저 자신의 행복한 세계를 가슴속에 묻어둔 채로 살아간다.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현실은 너무나도 비정하고 삭막하기에 어쩌면 꿈으로만 바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당하더라도 그저 모른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그것에 무뎌지게 되고, 내가 처한 현실이 부당한 것인지 조차도 모르게 무감각해지다 보면, 그냥 살아가게 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정원> 이 소설에서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부당한 세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안탁까운 젊은이들의 아픈 청춘을 그리고 있다.

부당한 세상은 이미 그들을 외면하고, 사회의 불순분자로 몰아내기 바쁘다.

독재자들이 독식하는 세상의 그들은 눈에 거슬리는 가시같은 존재일 뿐이다.

젊은이의 목소리를 무참히 묵살하며, 학살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오현우와 한윤희의 젊은날의 삶들이 그려진다.

 

 

18년만에 정치범으로 수용된 오현우가 세상의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많은 것이 변해버린 이 세상은 이미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이미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세상은 왠지 공허하고 삭막하다.

18년동안 갇힌 생활을 하며 굳어져버린 가슴이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의 소식에 어처구니 없게 뒤늦게 가슴이 아파온다. 아픈 마음인 것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굳어져 버린 가슴이 그녀를 기억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렇게 그리운 그녀를 떠나보낼 수 밖에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석방 후 곧 한윤희가 남긴 그녀의 편지를 보고 그와 그녀가 같이 살았던 갈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살던 집에서 그가 투옥된 후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노트와 그림들을 보게된다.

  그가 모르는 사이 아이를 가지고 그녀도 세상밖에서 절름발이 인생을 살아간다.

평생을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무기수인 오현우를 그리워하며, 부당한 세상과 맞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부당한 세상에 억눌려 살기에는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게 사랑을 하고, 행복을 누리는 당연한 권리도 왠지 사치스럽게만 느껴지는 이 시대가 그녀를 점점 세상에 경계하게 한다.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처럼 그녀는 세상의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그녀가 이제야 겨우 휘청이던 그녀의 삶에서 바로 서려고 할 때 죽음의 병마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린다.

 

 

그네들이 꿈꾸던 세상을 외쳤던 그들의 댓가는 너무나 공허하고, 허무하다.

이렇게 많은 희생을 이루어진 지금의 세상이건만, 우리는 지금 그들이 꿈꾸던 세상속에서 살고 있는가?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쓸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가냘픈 개인을 통해서 본 세계는 나에게 무채색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잊혀진 사랑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을 두고 느릿느릿 다가온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겨운 감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림이 지금의 세상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