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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서평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게 된 책.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서른, 환승역입니다 - 매일매일 여행하는 여자 정세영의 오늘>이라는 제목만 읽고 망설임 없이 응모했는데 역시 읽고 나니 응모하길 잘했다, 참 잘 읽었다 싶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이건 아마 평소에 책 좀 읽는다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터.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보는 책은 자기 계발서인데 요즘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국내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짜증 그 자체이다. 조금 경험한 걸 가지고 마치 그것이 사람 인생의 전부인양 속단하고 일반화시키고 가르치려 든다. 그보다 더 난감한건 그나마 그런 경험조차도 없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격증과 지금 잠깐 엉덩이 걸치고 있는 자리값 빌려 외국의 유명 자기 계발서와 성공했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괜찮은 인문학, 철학서에 나온 문구들을 버무려서 ‘완성작’인양 출판하는 거. 아... 정말 이런 책을 내주는 출판사는 모니... 이런 책을 자신 있게 얼굴사진 박아서 내는 사람들은 모니...

그 다음으로 글쓴이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책이 바로 여행서다. 국내 여행서 시장 초반에는 남들이 안 가본 곳을 갔다 오거나, 세계여행 같이 길게, 여러 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의 신기한 경험담이 주류였다면 요즘에는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여행기가 속속 출판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별 대단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속이 제대로 영글어 돌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별의별 경험 다 했지만 결국 자기만의 세상에서 자뻑으로 끝내는 사람도 있다. 그 많은 곳을 다녔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서 단 한 번도 자기생각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하고, 상대 문화와 사람들을 자기 틀로 재단하면서 몸만 여행한 사람, 마음과 정신은 떠나기 전 그대로인 사람, 여행을 통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사람의 여행기를 읽고 나면 참... 여행비도 아깝고 책값도 아깝고 그렇다.

<서른, 환승역입니다> 이 책은 달랐다. 비까번쩍한 해외 여행기가 넘쳐나는 요즘, ‘국내여행기’는 상대적으로 외면받기 쉽다. 갔다 왔다고 해도 다들 아는 곳이고, 말해도 뽀대(?)도 안 나니까. 그리고 흔히 여대생들의 선망직업이라는 스튜디어스의 책도 넘쳐나는 마당에 관광열차 승무원이 낸 책이라니...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작가, 사람이 참 깊다. 자기가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우기지도 않고,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번 돈으로 다시 대학을 간 것, 중국유학 생활까지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진짜 고생했다,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자화자찬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관광열차 승무원이 얼마나 대단한 직업이고 고단하지만 멋지고 화려한지 애써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지난 길을 읊고 관광열차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얻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들을 조근조근 말하고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을 애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게 너무너무 예쁘다. 자기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 한켠을 비워두고 언제든지 배울 자세, 자신이 아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 행간 곳곳에서 느껴져서 읽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관광열차 프로그램 중 승객들이 엽서에 사연을 적어주면 객실 승무원들이 마치 DJ처럼 읽어주면서 지금 여행하는 지역에 감흥을 더해주는 시간이 있는데 그 중 한 토막,

잠시 후 인상 좋으신 아버님이 엽서를 내미셨다. 신청곡에는 나훈아의 ‘홍시’가 적혀 있었다. 무슨 자연인지 미리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통인은 언제 오려나. 큰 형님은 6.25 전행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는 늘 사립문을 열고 형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작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이런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 부분을 읽다가 울컥해서 결국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저 사연을 읽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손님들 몇 분은 나처럼 울고 계셨다. 겨우 눈물을 참고 말을 이어갔다.

“고객님,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에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선배 승무원의 말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떡해. 고객님께 선물 드리려고 갔더니 울고 계세요.”

가슴이 정말 아팠다. 하지만 내 가슴이 아파봤자 이 아버님만큼 아플까. 그날 우리 열차는 눈물의 기차였다.

(중략)

기차를 타면서 실향민들과 국가유공자 승객들을 맞이할 때마다 쉽게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피난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직접 겪은 게 아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분들의 아픔과 슬픔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난 그저 옆에서 같이 손을 잡아주고, 눈물 흘려주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한 발짝 옆에 서 있을 뿐이다.

그렇게라도 그분들에게 잠깐이라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어떤가? <서른, 환승역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관광열차 승무원이 되어 우리나라 곳곳으로 누비고 다니는 기분은 물론, 정말 괜찮은 여자사람과 친구가 된 느낌, 그리고 이렇게 좋은 봄날, 무거운 엉덩이 일으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