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요지경이었다. 호스피스 병동 담당의사인 저자에게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수틀리니 대뜸 아줌마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 치료에 대한 모든 내용에 동의했으면서 병자의 사후에 치료가 잘못됐다며 의료진 탓으로 돌리는 사람, 아이의 망쳐버린 중간고사 성적을 잘 나온 기말고사 성적으로 대치하기 위해 시어머니 사망 시각을 바꿔달라던 며느리... 텍스트로만 봤을 때는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 할지 모르지만, 과연 그 상황에 나는 안 그럴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았다. 내 어머니가,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 내일 하는데 방금 숨을 거뒀는데 그 모든 사실을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워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은 마음, 죽음 앞에 악착같이 하나라도 챙기고 싶은 마음, ‘간 사람은 간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도 잊은 채 탐욕을 부리는 모습...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온 것은 수많은 부모, 자식 간에 이른 이별을 지켜본 저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이 적힌 대목이었다.

높은 학벌, 좋은 직장,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인생... 하지만 결국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슴에 담고 가는 것은 자식이 좋은 대학을 나와 남부럽지 않게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나는 단지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나의 아이들에게 나지막이 물어보고 싶다. 

“나를 엄마로 만나서 진정으로 행복했니?”

 

 

그거다.

그거면 된다.

엄마, 나는 엄마에게 좋은 자식이었어?

아빠, 나는 아빠에게 다정한 딸이었어?

언니, 내가 동생이었서 좋았었어?

오빠, 지금은 서로 속이 상해 잠깐 등을 돌리고 있지만... 나 오빠 동생이어서 참 행복했어.

 

 

죽음 앞에 뭐가 더 필요할까? 사랑한다는 말, 당신이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해주었다는 말, 별 것도 아닌 일에 버럭버럭 화를 내서 미안했다는 말,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그 말 말고 죽음 앞에 대체 뭐가 필요할까? 최근 2년간 교통사고가 두 번 있었다. 모두 내 불찰이었다. 다행히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고 여기저기 부딪혀 차만 박살나고 말았다. 첫 번째 교통사고는 금방 추스릴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사고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튕겨나가 바깥 쪽 가드레일에 부딪혀 다시 고속도로 중앙으로 퉁겨나왔던, 제법 큰 사고였다. 중앙 분리대에 부딪혀 튕겨나가면서 바깥 쪽 가드레일이 튼튼하길, ‘저기가 절벽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안 살아왔던 세월이 짧은 순간 필름처럼 스쳐지나가지 않아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보네.’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100km 이상 속도로 달리는 차들 속에서 다른 차를 한 대도 박지 않고, 다른 차 역시 나를 박지 않고 모두 속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솔직히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고로 병원에 잠깐 있었는데, 몸의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씻지 못하는 것이었다. 입원한 지 며칠 만에 다음 닝겔을 꽂기 전 두 팔로 자유롭게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살 것 같다! 살 것 같아! 내 손으로 씻을 수 있는 게 이렇게 대단한 일이었다니...’ 하고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퇴원하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저 팔에 꽂은 주사바늘을 빼고 화장실 가서 내 마음대로 일을 보고 뒤를 닦을 수 있었으면, 찬물을 몸에 좍좍 끼얹으며 마음껏 씻을 수 있으면 세상 불평할 일 따윈 없을 것 같았는데... 다시 나는 또 사소한 일로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세상에 불평불만을 가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와 내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밤잠을 설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때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엉망으로 부서진 차 속에서 내 두발로 걸어나오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던 기억... 병원에서 닝겔을 빼고 두 손으로 처음 샤워를 했을 때의 그 시원함, 병원을 나와 처음 집으로 가서 대문을 열었을 때 맡았던 익숙한 냄새, 다시는 사소한 것에 불평, 불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기억들... 죽음 앞에 뭐가 중요할까. 그깟 시험에 좀 떨어진 거? 다른 여자들보다 좀 더 튼튼하게 생겨서 늘 부끄러워하는 허벅지? 누구든 한 번 보면 뿅 갈만한 미모로 태어나지 않은 것?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사회에서 한 자리 떡 하고 꿰차지 못한 거? 나를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지 못한 거? 죽음 앞에 뭐가 중요할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직업도, 미모도, 몸매도, 뛰어난 머리도, 넘치는 돈도, 심지어 사랑하는 이와 가족도 데려갈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들고 가지 못한다. 그 때...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까. 나 자신을 어떻게 느끼게 될까? 잘 했다? 수고했다? 아쉽다? 아깝다?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책에서 저자는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작년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배우가 읊었던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저는요,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던 사람도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떨곤 한단다. 저자는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 보다는 결과물이라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라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잘 죽기 위해’ 일생의 의미를 찾고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알아내고 엄청 멋진 버킷리스트를 적어서 시간이 다하기 전에 원없이 해보라고 하지 않는 그녀가 고마웠다. 담담히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라고, 그거면 된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또 하나, 정말 마음에 와닿는 대목이 있다. 근래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속칭 ‘꿈강사’라며 블로그를 개설해 자신의 일상을 시시콜콜 전달하고 강사로써 자신을 마케팅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심 못마땅했는데 이 책에 바로 그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적혀 있었다.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 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이보다 더 소명과 비전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있을까? 속칭 ‘꿈강사’들은 자기 꿈을 찾으라 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란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그걸 찾아 완수하란다. 가뜩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걸 찾아내라는 이중고를 안긴다. 심리 분야에서 10년간(10년이 짧다면 짧을 것이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고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진정한 자신의 소명과 비전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찾는다 해도 그 순간 마법처럼 모든 고통이 끝이 나고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르게 하기만 해도 막 신이 나고 일이 이상하게 잘 풀리고... 그런 일은 없다. 진짜 ‘내 길’이라 해도 힘듦이 존재하긴 마찬가지다. 그 길을 가는 동안에도 고통스럽고 아프고 수시로 벽에 부딪힌다. 마법은 없다. 지팡이 한번 휘두르면 호박이 마차로 변하고 넝마가 드레스로 변하는 그런 마법사도 없다.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그 동안 나에게 덧씌웠던 ‘내가 아닌 것’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또 아프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잘남’과 ‘잘함’들을 내려놔야 한다. 무엇이 진짜 나이고 가짜 나인지 알아내려면, 다 벗겨놓은 다음에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작가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보일 거고,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은 에너지와 단단히 키워놓은 맷집으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또 행복은 결과가 아닌 그 길을 가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맞다. 작가의 말이 맞다. 누구를 만나서 물어봐도 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더라도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안다. 그걸 그냥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이 고통스러울 거라 지레 겁을 집어먹고 피한다. 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냥 하면 되는데 안 할 이유를 수십, 수백 가지 찾는다. 그러는 동안 진정한 나는 더 고통스러워진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을 내면의 나는 알고 있으니까. 이게 나만의 소명과 비전이라는 것을 찾는, 진짜 비법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정말로 살고 싶은 인생은 지금 이 순간 직감적으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찾아가는 365일간의 여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365일 동안 일상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담고 있는 편집 도서이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종묘에 가야지.” “빗줄기가 쏟아지는 마당을 그냥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보온병에 뜨거운 정종을 담아 홀짝 거리면서...” 등등 작가가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365일 동안 ‘일상의 버킷리스트 365개’를 만들자는 프로젝트로 커졌고, 거기서 나온 여러 가지 이야기, 아이디어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듯하다.

 

 

 

이 책에는 365일 동안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나열되어 있다. 저가 항공을 예약하기, 엄마랑 여행가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집밥 파티, 잔디밭에서 맨발로 걸어보기, 헌책방 가서 책 사고 팔기 등 온통 습관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줄 여러 가지 이벤트, 프로젝트들로 가득하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 각 페이지 밑에 그 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을지, 어디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친절하게 팁이 달려 있다. 요즘 유행하는 도시에서 벌치기(양봉)를 해보고자 한다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준다든가 해외여행 가면 해변가에 해먹을 쳐놓고 누워서 바다와 바람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다면 당장 해먹을 사서 집 베란다에 걸어놓고 같은 기분을 내보라고 국내에서 해먹을 구입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주는 식이다. 버킷리스트 작성하려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다른 사람의 버킷리스트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든가,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다보니 너무 지쳐 오늘 하루 무언가 색다른 일로 새바람을 불어넣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 다음은... 자기 몫이다. ‘버킷리스트’는 누구나 한번쯤 만들어봤거나 아니면 언젠가는 한번 만들어보리라 생각하는 주제일 것이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모아놓은 리스트. 나도 한 때는 다이어리를 살 때마다 페이지를 할애하여 적어놓았다 실행에 옮겨보곤 했으나,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적다 보니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TV나 광고에서 ‘이건 멋진 것이다’라고 하니까 괜히 따라 해보려고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뿐더러 ‘한 번 해봐야지’ 했다가 시도해본 일들이 하는 순간엔 잠깐 신선했으나 그 행위가 끝나는 순간 다시 평소 마음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서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잠깐의 기쁨이나 리프레쉬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변화라는 데 생각에 미치는 순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과 만나게 되었다.

 

 

 

(‘버킷리스트’ 뿐만 아니라 세상 무슨 일이든 깊이 파고들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나는 언제 기뻐하고 언제 슬퍼하고 무엇에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 사람인가.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의 심리적인 문제를 함께 나누면서 느낀 점은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결국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언제 슬퍼하고 언제 기뻐하는 사람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 ‘나다운’ 삶을 매 순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다운’ 삶이야 말로... 정말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강사다.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따박따박 넣어주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나 자신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10년을 매진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특정 상황에 부딪히면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는지, 왜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며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도 조금도 바뀌지 않는지,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던 건 과연 진실인지, 나는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는지, 그럼에도 강한 부분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온 몸과 마음을 바쳐도 좋을 만큼 내게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을 찾고, 알고 싶었다. 수많은 개인 상담을 받았고,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쫓아다녔고 심리학, 상담학, 교육학 서적을 탐독하며 나 자신을 철저히 해부했다. 그 와중에 대학에 다시 들어갔고 대학원을 두 군데를 더 다녔다.

 

 

 

상담과 학업을 병행하며 나 자신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새 강단에 설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배우면서 또 누군가의 배움을 도우면서 살아오던 중, 인생의 다음 계단에 올라설 때가 됐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조직 생활’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녹록치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중에 <직장인 자기혁명 공부법>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철저하게 직장인을 타깃으로 기획된 책이라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과거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데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려가며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읽으려고 노력했다.

 

 

 

3개의 학사학위와 2개의 석사학위, 세 가지 직업을 거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역시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많이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건방을 떨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나의 무지를 깨달아갈수록 마음의 벽은 더 낮아진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누군가가 나에게 한 충고를 귀담아 듣고 한번 시도해보게 된다. 하지만 배움의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많이 알게 되니 나 자신이 더 커진 느낌을 받는다. 더 강해지고 왠지 더 높아진 것 같다. 내가 ‘획득’한 작은 배움이 이제 남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수단이 된다. 비교하고, 무시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상대를 가늠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는 껍데기뿐인 관계가 된다. 그러면서 공부를 계속한다. 남보다 더 크게, 남보다 더 세게, 남보다 더 강하게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나갔던 초반에 나는 후자였던 것 같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것과 엄청난 양의 독서로 확장된 지식을 토대로 ‘나 잘난’ 여사가 되어 내가 ‘아는 것’이 곧 ‘나’일 거라 믿고 건방을 떨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앎’은 내가 머릿속에 넣어놓은 1차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을 뿐, 아는 것이 ‘나 자신’이 되기까지는 그것을 몸에 녹이는 과정이 필요하더라. 그리고 내가 아는 대로 실제로 살기까지는 엄청난 시도와 실패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내가 아는 것이 내가 아님을, 내가 아는 대로 실제 살고 있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나불거리고 다녔다는 것을 깨달은 게 불과 몇 개월 되지 않는다. 부끄러웠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나보다 배움의 끈은 짧지만 자신이 아는 대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앎과 삶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에 그 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있고 행동은 본받을만 했다. 함께 있으면 피곤하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힘이 나고 ‘저 사람처럼 나도 살아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희망을 품게 된다. 이게 바로 아는 대로 사는 삶이라는 것을, 진정한 ‘배움’의 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았다.

 

 

 

자기가 아는 대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앎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자신의 앎이 절대적이라 생각하지 않고, 상대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언젠가는 상대가 자기 자신을 위해 좀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하리라 믿고 기다릴 줄 안다. 왜냐면 아는 대로 살기 위해서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한지 아니까.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언제까지 무엇이 되겠다, 언제까지 무엇을 이루겠노라 자신을 한정짓지도, 한계를 만들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아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일 뿐. 굳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어도 이런 사람은 정말 많았다. 내가 ‘나 좀 배웠소.’ 하는 틀을 내려놓으니 주변에 배울만한 사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한 사람이 천지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자극받고, 내가 알고는 있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막는 현실적 혹은 정신적 장애물은 무엇인지를 보고 제거하고, 그 힘으로 실천에 옮기고, 그렇게 얻은 에너지로 또 몸과 마음의 기운을 충전시켜 더 멀리 뛰어보고...

 

 

 

이게 진짜 배움이 아닐까?

우리가 배움의 끝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바로 이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