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술도 없으면서 의욕만 앞서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쓸데없이 경비만 지출하게 도리 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의욕은 별로 없지만 기술은 뛰어난 사람이 더 반갑다. ‘의욕’은 다른 말로 정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열은 저마다 발휘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무리를 해 가며 의욕을 불태우면 결국 지치게 된다. 이 점은 꼭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은 어떤 특정한 시기에 지나치게 의욕을 불태운 결과다. 혹시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는가? 일하고 싶은 의욕이 안 생기는가?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말자. 일이 좀 재미가 없어야 빨리 끝내고 싶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회사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읽다가 어이가 없어 ‘이게 말이야, 방구야?’싶어 책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출판대국인 일본에서 4만부 가까이 팔렸다 하니... 그 사람들 눈이 삐꾸가 아니라면 뭔가 있겠지 싶어 끝까지 봤는데 역시나... 작가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니 저 말도 부드럽게 받아들여졌다.

 너무 애쓰지 마란 소리다. 너무 애쓰고 애쓰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잘못된 방식임에도 그 동안 너무나 애써왔기 때문에 아까워서, 되돌아 갈 수 없어서 잘못됐음에도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잘못된 끝을 향해 질주하게 되기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말고 쉬엄쉬엄 주위도 봐가면서, 자기 자신도 돌봐가면서, 그렇게 일에 ‘함몰’되지 말고 일하란 이야기였다. 책을 작가의 ‘마음’을 보면서 읽지 못하고 ‘활자’만 읽게 될 경우 종종 오해가 생기곤 한다. 단순하지만 이 작은 경험으로 나는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오해많은 독자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앎이 많다보니 책을 펴기도 전부터 ‘이 책은 이러이러한 내용이겠군.’하고 지레짐작한다. 어느 정도 마음의 틀을 세운 다음 책장을 펼친다. 그 다음부터 전개되는 모든 내용은 내가 미리 만들어놓은 틀에 따라 해석하고 재단하고 오리고 붙인다. 결국 책 한권을 읽음에도 작가의 생각에 나를 풀어놓고 흠뻑 적셔보는 것이 아니라, 발톱만 살짝 담그고 ‘이 책은 좋은 책이군.’ 혹은 ‘종이 쓰레기!’ 하고 던져버리는 것이다. 내 알음알이로 읽은 책이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내 가치관이나 구미에 맞으면 좋은 책이 되는 것이고, 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거나 가치관과 다른 내용이 나오면 태워버려야 할 책이 되는 것이...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게 아니잖나. 좁디 좁은 내 생각의 틀을 넓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모든 경험을 다 할 수는 없기에, 나만의 경험으로 확립한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이 경험해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저 경험해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렇게 여러 세상을 구경하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렇게 해서 내 속만 들여다보는 편협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를 시작한 거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 읽은 책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내 속, 내 안만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을 읽을 때 초반이 그랬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사고가 조금 더 유연해지는 경험을 맛보았다.

 

지금껏 내가 서평을 남겼던 책들도,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랬을 것 같다. 내가 한 경험을 토대로 그 작가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고 사건이어서 몇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공을 들여 펴낸 책을 ‘서평’이라는 수단으로 이리 찢고 저리 찢고 했던 것 같다. 부끄럽다. 나의 편협함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져가는 앎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이렇게 많구나~’가 아닌 ‘내가 아는 건 이건데 이 책은 틀렸군!’ 이렇게 사용해서.

 

 

어느 일에서나 ‘욕구’를 쉽게 해결하면 그만큼 얻어지는 ‘쾌감’도 줄어든다. 그 맛있는 참치 뱃살이나 성게도 어쩌다 먹으니까 좋지, 매일 먹으면 맛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속이 쓰려서 고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섹스도 그렇다. 가끔씩 하니까 좋지 지나치게 자주 관계를 가지면 ‘욕구가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단계로 넘어가 새디즘이니 마조히즘이니 변태 섹스니 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쏠리게 될 수도 있다.

쭉 눈여겨보던 여자가 있다고 해 보자. 재력이나 권력으로 간단하게 여자를 품에 안았을 때와 필사적으로 마음을 얻으려 노력을 해서 마침내 진한 사랑을 나누었을 때를 비교해 보자. 후자가 몇 십 배는 더 기쁘지 않겠는가. 욕망을 채웠을 때 쾌감이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늘 쉽게 채워지는 상태에서는 쾌감도 얻을 수 없다.

 

아무래도 일본인이고 남자 작가이다 보니 드는 예도 다분히 그런 색깔을 띠고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불편함 없이 읽었다. 생선회나 섹스를 예로 들어서 그렇지 그걸 ‘나 자신’에 대입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니까.

 

 

한때 나는 속칭 ‘된장녀’들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특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빠졌었다. 내가 ‘된장녀’라기 보다는 어릴 때 봤던 헐리웃 영화 속 주인공들의 손에 들려있던 그 테이크아웃 커피가 너무 멋져보여서... 그걸 너무 동경하다 보니 빨리 커서 나도 저런 커피를 손에 들고, 혹은 저런 공간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일을 하고 싶었고, 정작 커서는 직장 일이 너무 바빠 저런 공간에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페이는 적지만 비교적 개인 시간이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카페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어느 순간 매일매일 그곳에 ‘출퇴근’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년... 어느 순간 전만큼 그곳의 커피가 맛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동경했던 그 커피숍이 처음엔 너무나 좋더니 1년이 되고, 2년이 되니 이제 그곳에 가도 전처럼 기분 좋고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좋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습관이 되어버리니 더 이상 기쁨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계속 하는 것이 그 횟수만큼의 기쁨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것일수록 오히려 횟수와 강도를 조절해가면서 즐겨야 그 즐거움이 계속되는 것이지, 좋다고 해서 무한정 즐겨버리면 그 횟수만큼 오히려 즐거움은 반감되기 시작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비단 먹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사람에도, 사랑에도, 일에도, 세상 모든 일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좋은 경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강도의 ‘결핍감’과 적절한 수준의 ‘충족감’을 스스로 현명하게 조절해서 자신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그 일의 재미와 기쁨이 지속될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지혜롭게 해소하고 현명하게 충족하는 자기만의 한계선, 제한선을 알고 있는지, 제대로 설정해두었는지, 유연하게 잘 조절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펴보게 되는 책이었다. 

 

 

 

올 초 보건소에서 인바디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바디 검사라는 걸 생전 처음 받아봤다. '많이 쪘겠지' 생각은 했지만 충격이었다. 처음 60kg 대에 진입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65kg가 금방이더라. 거기다가 '비만'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이거 내 몸 하나 간수 못하면서 내가 무슨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살아보라고 저렇게 살아보라고 이야기를 하나...

 

하지만 충격이란 게 하루, 이틀 지나면 적응되기 마련. 며칠 지나니 그런가보다 하고 또 심드렁~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밤에 시원한 맥주에 짜디짠 안주 오독오독 바삭바삭 질겅질겅 하면서 미드, 일드 보기. 보면서 새벽에 두툼한 빵 한 조각에 달디단 커피 연속 드링킹.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뭔가를 물고 씹고 빨고... 먹는 습관보다 더 바람직스럽지 않은 건 밤 늦게까지 컴퓨터 하는 것이었다. 한번 미드 보기 시작하면 믹스커피 한 박스 옆에 놔두고 물처럼 마시면서 봤으니... 그렇다고 일을 아예 안한 건 아니고 욕심은 많아서 또 일 할 거 다 하고 학원도 다니고 나름 할 건 다 하고 살았다.

 

근데 일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고, 저렇게 늦게까지 취미생활 즐기려면 하루 24시간 가지곤 모자랄 수밖에. 그래서 잠을 줄였다. 잠을 줄여 놀고 → 다음날 정신없이 일하고 → 에너지가 모자라니까 강렬하게 자극이 되는 음식을 먹고 → 그런 음식을 먹으니 속이 불편하고 몸이 피로하니 또 그 기분 달래려고 놀고 → 놀고 나니 괜히 죄책감 들어 또 과하게 일하고 → 과하게 일하고 나니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또 먹고 → 먹고 나니 기분 좋아 컴퓨터 켜고 → 켠 김에 새로운 거 뭐 나왔나 보고 → 한 편 잡으면 끝장을 보고 → 그러니 피곤하고... 완전 악순환의 연속.

 

1월 초 새로운 마음으로 뭣 좀 해보자 싶어 멋진 다이어리를 사서 신년계획을 적어보았다.

1.

2.

3.

4.

5.

 

써내려가는 데 응? 뭔가 이상한 느낌이...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드는 거다.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건데... 지난 다이어리들을 꺼내봤다. 놀랍게도 지난 10년간 똑같은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다.

 

1. 건강하게 다이어트 하기

2. 하체에 힘 키우기

3. 저녁에 일찍 자기

4. 먹는 걸 건강하게 먹기

5. 영어, 일본어 공부 계속하기

 

와... 진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더라. 순간 머리에서 뎅~ 하고 종이 울리는 기분.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지난 10년간 생활이 똑같았단 이야기지. 지난 10년간 변한 게 하나도 없단 소리지. 정말 가슴 아프지만, 지난 10년간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실제로 살고 있지 않았다는 거였다. 사회적으로나 가족 내에서는 변화가 있었을지 몰라도 내 내면은, 내 개인적인 상활은 전혀 달라진 게 없이 똑같이 그대로 살고 있다는 증표가 바로 거기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자기 계발서를 1년에 수십 권 보지만 거기서 받은 쇼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64kg에 비만이라는 인바디 검사결과보다 10년간 다이어리에 같은 새해 계획이 적여 있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10년간 같은 새해계획이라니... 그럼 내 10년 후는?

오싹하더라. 10년 후에도 같은 소리 하고 있을 건가? 10년 후에도 나는 "아~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아, 다리에 힘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 그럼 등산도 자주 하고 제주 올레도 하루 한 코스씩 끄떡없이 걷고 그럴 건데" "아, 초저녁에 그냥 잠 올 때 자는 건데..." "이제 건강 생각해서 먹는 것 좀 가려야 하는데..." "이러다 다 까먹겠네. 영어, 일본어 좀 툭 치면 툭 튀어나오게 계속 해야 되는데..." 이럴 건가? 10년 후에도 나는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건가? 그 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깔짝깔짝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운동을 하도록 저를 이끈,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그냥 웃자고 올린,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보게 되었다.

 

 

 

다니는 헬스클럽에 몸무게가 좀 나가는 남학생이 있어요.

7월쯤부터 봤으니까 벌써 3개월 정도 됐을 거예요.

열심히 꾸준히 나와서 다들 칭찬 많이 해주는 친군데,

그 친구가 수첩 앞 장에다가 이렇게 써 놨더라고요

 

"열달이면 사람도 만든다" ㅋㅋㅋㅋㅋㅋ

10개월이면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는 기간인데

그 열달 동안 운동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는군요.

 

진짜 기특하고 귀엽고~ ㅋㅋㅋㅋㅋㅋ

진우야, 아줌마가 니 얘기 썼다 !

오늘도 헬스장에서 보자꾸나~ㅋㅋㅋ

 

 

와... 이거 정말 맞는 소리잖아! 여자라면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사람도 만들어내는데, 습관 하나 기르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어렵다, 힘들다, 내가 될까... 징징거리고만 있었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체조 한판 했던 기억이 난다. 국민체조 하고 났더니 조금 혈액순환이 되는 것도 같으면서 몸도 좀 가볍고, 뭔가 그래도 했다는 것에 기분도 좋고. 그러다 전에 인터넷에서 찾아놨던 다이어트 체조도 한번 해보고. 어느 블로그에서 이 운동 좋다는 글을 보면 몇 달 해보고, 질리면 유튜브에서 또 다른 것 찾아서 몇 달 해보고, 그렇게 운동을 계속 하게 되었다. 10년간 같은 새해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한 충격, 조금도 변하지 않는 나, 여전히 불만스러운 나를 올해에도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뱃속에서 애 키워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보다 습관 하나 만드는 게 쉽겠다는 생각의 전환,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계속 운동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운동하다 보니 운동한 게 아까워서 커피도 끊어보고(지금은 다시 마시지만), 빵도 좀 줄여보고, 과식하던 습관을 음식 한 입에 30~40번씩 씹으면서 ‘많이 먹었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실제로는 위장에 적당히 찰 정도로 먹게 식사 습관도 바꿔보고. 무엇보다 저녁에 기를 쓰고 일찍 자봤다. 그러니 새벽에 일찍 눈이 뜨이더라.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업무 준비를 하니 더 잘 되고. 출근도 일찍 하게 되고. 길도 덜 붐비고 출근길에 보대끼지 않으니 오전 업무도 수월하고...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건강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시중에 출판되는 건강 관련 서적들은 빠짐없이 사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 책은 그 와중에 만난 것이다. 현직 트레이너가 딸과 함께 직접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운동하면서 살을 뺀 85일간의 여정이 적혀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와 함께 어떤 운동을 했는지, 어떤 기분일 때 어떤 음식이 땡겼지만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느 땐 기분 좋게 먹어주고, 어느 땐 좀 자제해보고... 그냥 평범한 일상 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서 무리하지 않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을 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다만 ‘트레이너’라는 직함이 내가 생각하는 피트니스 센터의 ‘트레이너’가 아니라는 것(사실 ‘트레이너’라는 명칭은 어떤 식으로든 쓰일 수 있는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독자 개개인의 몫이지만), 그리고 식단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동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적힌 책도 아니어서 약간 애매한 느낌은 있었다. 책의 컨셉이 그랬는지 아침, 점심, 저녁, 간식을 어떻게 먹고 무슨 운동을 얼마만큼 했는지, 오늘은 무엇을 느꼈고, 내일은 어떤 기분이었는지가 시시콜콜 적혀 있어서 이건 책이라기 보다는 개인 블로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운동학&영양학적 지식으로 중무장한 다이어트 책에 질린 독자라면 이 책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고 ‘한번 해볼만 하겠다!’라는 의욕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자세한 ‘비법’을 기대한 독자라면 아쉬움이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다이어트에 무슨 ‘비법’이 있겠는가. 내 위장에 적절한 양의 음식을 먹고, 내가 날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도 강도도 만만한 운동을 골라 실제로 매일 하는 거 말고.

 

 

사실 저 위에 적힌 ‘올 초’라는 문구는 2013년 이야기다. 2015년인 지금, 나는 여전히 운동을 계속 하고 있고 (언제나 ‘끊자’ 하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몸에 좋은 음식과 가끔은 몸에는 좋지 않지만 입은 즐거운 음식을 오가고 있다. 2013년 1년 동안 뺀 몸무게는 12kg. 지금은 거기서 4kg정도 더 쪘지만 체지방은 더 줄고 근육량은 늘고, 무엇보다 옷 사이즈는 12kg 감량했을 때와 동일하다. 무엇보다 기초대사량이 1270kcal에서 1357kcal로 늘어 얼마 전 인바디 검사를 해준 보건소 의사로부터 “이젠 많이 먹는다고 푹 찌고, 굶는다고 확 빠지는 그런 몸이 아니네요. 축하해요.” 라는 기분좋은 말을 들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내 몸이 저만큼 혼자 알아서 열량을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비법’은 없다. 오직 ‘실천’만이 있을 뿐.

물론 내게 좀 더 맞는 방법, 덜 고통스러운 방법은 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실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다’라고 생각한 방법대로 해야 건강하게 살이 빠지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내가 매일 매일, 한 달 두 달, 1년, 2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을 내 몸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저자가 책을 이렇게 쉽게 쓴 것도... 아마 그 의도가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정해진 길을 가지 말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가서 흔적을 남겨라.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라. 

남들이 뭐라든 네 길을 가라.”

 

 

만일 이 책이 이런 구절 투성이었다면 나는 아마 바로 벽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내가 기대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대학을 나와 꿈에 그리던 언론사에 입사했지만 3년 만에 팽게치우고 배를 탄, 스물 아홉 청년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한 인간이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망망대해를 건너며 느낀 게 고작 이런 거란 말인가... 고작? 고작? 하지만 다행히도, 사실은 정말 감사하게도 저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책과 SNS에는 옳은 말들이 별처럼 쏟아졌다. 어찌 보면 다 아는, 빤한 말들이다. 나는 그런 글들을 가벼이 읽고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다. 정보의 홍수, 지식의 과잉.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우리는 진리를 읽는데 익숙하면서 실천은 모른다. 실천해야 할 ‘나’는 없고 ‘말’들만 남았다. 진리란 무엇인가. 아는 것인가, 배우는 것인가, 깨닫는 것인가, 아니면 실천하는 것인가. 심지어 우리는 그 답이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은 않는다.

 

이 순간 카페 의자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읽던 내 자세가 바로 펴졌다. 등을 쭉 펴고 정자세로 앉아 책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이거다. 이거야. 이 책, 장난 아니구나. 저자는 진짜 ‘자기’를 만났구나. 자기가 누구인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사람인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어떤 의미인지 느꼈구나! 그런 확신이 들면서부터 다른 그 어떤 책보다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더 반가웠던 건, 퇴사 일주일 만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자기고백을 한 대목이었다. 퇴사한지 반년이 지나니 아침에 눈을 뜨기조차 싫었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이 작가는 자기 경험을 미화시키지 않는구나! 책이 더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세이 집, 특히 자기 경험을 다루고 거기에서 무언가 ‘얻었다’ 하는 책들을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자기 이야기에 취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고, 한 일을 안했다고 하며, 솔직하게 사건을 풀어놓지 않고 요리조리 미화하고 각색해서 겉으로는 아주 매끄럽지만 속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그런 글들로 가든 차있는 걸 발견한다. 특히 ‘말’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글들 읽으면 마치 식용유를 사발로 꿀떡 마신 것처럼 속이 매스껍고 불편하기만 했다. 또 그런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죄책감이 생기더라. ‘이 사람은 이랬는데... 난 뭐지?’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했는데 난 뭘까?’ 용기가 나기는커녕 자꾸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틀에 얽매이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훌훌 날아가기는커녕 뭐만 해도 겁이 나고 두렵기만 했다. 이 책은 정말 다르기를 바랐고, 실제 읽어보니 정말 달랐다. 그래서 너무 반갑고 고맙고 읽는 내내 행복했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는 과정에서 다녔던 직업 전문학교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았다. 손에 기름 뭍히고 살기 싫다고 생각하며 과정에 참여했던 자기와 달리 어렵게 자라 온 마음을 다해 과정에 참여해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는 동료의 눈을 보며 느꼈던 소회.

 

나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재준이의 미래를 가늠했다. 녀석이 기술을 배워 대단히 성공한다 해도 동네 정비소 사장이 전부일 것 같았다. 대학 졸업장씩이나 가진 나는 그의 미래를 훤히 내려다보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 그런데 정작 내 꿈은 뭐지...

나는 남의 꿈을 깐깐하게 저울질하면서 내 꿈은 달아보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과감히 사직해놓고도 주변의 눈치를 봤다. 사실 직업으로 사회적 위치를 배정받는 게 두려워 이때까지 빈둥댄 셈이다. 대기업 아래 중소기업 직원이 되기 싫어서, 그보다 못한 비정규직이 되기 싫어서 그냥 백지 같은 백수 상태를 즐긴 것이다. 유치하게도 나는 만족하는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토익 시험을 미뤘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그게 나일 것 같아서다. 그래놓고 남이 받은 700점이니 800점이니 하는 점수는 속으로 ‘그까짓 거’ 하면서 조롱했다.

 

얼마나 마음에 와닿던지...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원하는 일을 찾았고 프리랜서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이 일을 좀 더 심화시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다시 사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가 않았다. 어려운 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여러 가지 자격 조건도 까다롭고. 자격 조건은 어떻게 어떻게 갖췄는데 마지막 관문인 시험이 내 발목을 잡았다. 열심히 준비하면 내가 그저 그런 인간이 될까봐, 더 나아가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질까 봐 두려워서 나는 대충대충 준비했다. 그래야 떨어지고 나서도 ‘그래, 난 열심히 안 해서 떨어진 거야. 열심히만 해봐. 딱 붙지.’ 하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결국 몇 번을 떨어졌다. 프리랜서로 일을 계속 하고 있기에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고 시도만 계속했던 경험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떨어진 거면 최소한 내 자존심은 지키는 것일지 알았는데, ‘열심히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 그 자체가 아픔이었다. 모든 힘을 다 해보지 않았던 것, 힘을 아낀 것, 할 수 있는 만큼 원 없이 살아보지 않았던 것이 ‘떨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훨씬 아팠다. 그러고 ‘이제 어떡하지...’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난 거다. 그러니 저자의 고백이 더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많이 읽는 데 욕심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읽은 만큼 행동해야 할 때다. 

스스로 깨고 나갈 때다. 

주인공이 되어 삶을 개척할 때다. 

두려움이 용기를 낳았다.

 

 

이 뻔한 말이 이렇게 다가오다니... 누구나 다 아는 저 문구가 그냥 ‘문장’으로 느껴지지 않고 펄펄 살아 숨쉬는 ‘목소리’로 들리다니... 그만큼 이 책은 짧고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긴, 본심으로 그득한 책이었다. 솔직히 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만난 사람, 느꼈던 소회보다는 떠나기 전 저자의 마음 상태, 그리고 배를 타는 중 아무 일 없이 무료한 시간을 철저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으로 보냈던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같은 책을 봐도 마음 상태에 따라 사람들마다 보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보고 또 어떤 부분에 반하고 어떤 부분에 감복할까? 궁금하다. 그리고 저자에게 감사하다. 내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해. 간만에 책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게 해준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