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사실 나는 뻔하고 지루한 일상 속, 거의 변화 없는 내 감정 곡선에 어떤 자극을 주는 책을 참으로 좋아한다.. 감동하여 울컥하게 하는 책을 보며 맘 놓고 흘리는 눈물이 그렇듯.. 그렇게 푹 빠져 아파하다가도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종종 책을 덮고나서도 끈질기게 여운이 남는 책이 있다.. 그게 좋고도 싫은거다.. 얼마 전에 읽었던 <반짝반짝 빛나는> 같은 경우 순수하던 시절의 첫사랑의 아련함을 건드려주어 좋았지만 이번 책은 그 반대 경우다.. 잊고싶은 철없던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들, 아픈 기억들을 죄다 꺼내 놓았다.. 고작 227페이지의 책이 말이다..

맘의 준비를 할 수조차 없었다.. 지난 달엔가 남들 다 읽고 그제서야 읽은 <완득이>의 작가니, 비슷한 분위기의 발랄하면서도 조금 코 끝 찡한 책을 기대했을 지도 모를 노릇이다.. 71년생의 여자 작가인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숨쉬는 사춘기 남학생을 이리도 잘 그려냈을까 감탄하며 보았는데, 이번에는 사춘기 여학생들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우아한 거짓말> 다 읽고나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보니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가 떠오른다.. 고고한 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요동치며 발버둥쳐야 하는..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14살 ’천지’라는 여중생의 자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 아이가 끔찍한 선택을 해야만 하였을까. 후에 발견되는 다섯 개의 봉인 실인 그녀의 유언을 따라 이야기는 언니인 만지, 엄마, 그녀의 친구 화연, 미라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상. 그렇게 친한 친구들인만큼 더 속속들이 알게되어 좋아하면서도 또한 싫어하는 애증어린 관계, 은근슬쩍 털어놓는 그 친구의 뒷담화, 심지어는 마음이 맞을 경우 생기는 따돌림까지..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대학생인 남동생이 동아리 친구 문제때문에 힘들다며 내게 상담을 청해왔다.. 나는 가차없이, 괜한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졸업하고도 계속 연락을 하고 이렇게 힘겹게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있는 친구냐고 물었다.. 공부나 하라고 했다.. 책이나 읽으라고 했다.. 8살 차이가 나지만 거의 친구처럼 지내온 나인데, 역시 나도 이제 엄마나 하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괜히 이 책을 읽고나니 너무나 미안했다.. 그 시절에는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는걸 나는 몰랐던가.. 나도 그랬다.. 여중, 여고를 지냈던 나로서, 학창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건,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12시까지 하였던 야자도 아니었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수업 시간도 아니었고, 그저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그때는 그랬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게 정말 싫었고, 점심 시간에 혼자 밥 먹으면 큰 일 나는지 알았다.. 그래서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하였고, 내 생각과는 다른 친한 친구이기를..여학생들 끼리의 질투는 또 얼마나 심하였던가.. 새롭게 맘 맞아 친해진 친구와 원래 친했던 친구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매점 한번 가는 것도 누구랑 갈지 눈치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습지만 그 세계에서는 그랬다..

엄마는 학창 시절의 내 추억이 묻은 보따리로 하나 가득인 쪽지와 편지들이 밉다고 한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당신의 큰 딸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유지되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노릇이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만, 그때는 그런걸 알수가 있었나.. 나는 쾌활하고 농담도 잘 하고, 그래서 친구가 많은 아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만사 태평해 보였는데도 속으로는 내내 그랬다.. 물론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행복한 기억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행복하고도 그만큼 불행했다..

우아한 척 서로를 위하는 말들을 나누지만 그 세계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거짓말들은 또 얼마나 무수했던가.. 나는 천지일 때도 있었고, 화연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한 생명을 사그라들게 한 큰 일 앞에, 나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잘 모르겠다.. 자살한 천지가 피해자임에 분명해 보이지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분위기상 그렇게밖에 안되게 흘러가던 일들도 있었다.. 작가의 말을 읽으니 너무나 아프다.. 그 시절 힘들었던 나에게도, 나때문에 아팠을 누군가에게도, 진심을 담아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어른이 되고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더라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 게 아니니까요.

혹시 내 어렸을 적과 같은 아픔을 지금 품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뜨겁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페이지 : 깊은 상처로 때로는 세상을 등지고픈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따뜻한 인사- 작가의 말 中에서..

김려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