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지만 늘 위로가 되는 양식.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혹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소. 내 인생은 언제나 ‘정상’이라는 것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었고, 내 삶은 떼어버리고 싶은 혹처럼 남들에게 부담이 되었으니까.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보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브리야 사바랭) 이 말을 난 이렇게 바꾸고 싶소.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보라. 당신의 꿈을 말해주겠다.’

음식에 담긴 건, 맛이 아니라 어쩌면 꿈인지도 모르지.

(‘반 고흐와 감자’ 편..)

‘대가를 위로한 소울 푸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저자가 머리말에 밝힌 것처럼, 그 소울 푸드에 대한 열전 그러니까 ‘그나 그녀와의 음식 (중심의) 대화록’이라기보다는 ‘대화식으로 풀어쓴 그, 그녀와 관련 있는 음식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한 내용이다. 대가의 소울 푸드 레시피 정도만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신변잡기를 그러모은 정도로 오해하여 다소 실망할지도 모를 일. 하지만!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그저 음식일 뿐인데 거기에 어떻게 대가의 소울이 깃들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안목이라면 이 책은 굉장히 맛있는 요리가 될 듯하다. 그러니 선입견으로 가볍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란 얘기.

가상 대화 중에 나오는 내용들은 방대할뿐더러 굉장히 충실하다! 여기서 잠깐, 다시 머리말에 저자가 밝혀둔 내용을 옮기면, ‘영문 자료 중에도 베끼고 베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오래전에 쓰인 이 분야의 원서 중에서 추려서 자료를 모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꽤나 고생하셨구먼. 그러니까 소급에 소급을 거듭, 그야말로 원천(源泉)과도 같은 원전(原典) 찾기의 여정 끝에 낚아 올린 팩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내용이라 탄탄하다. 그리고 이렇게 완벽주의(기자, 그것도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라 그런가)에 가까운 저자 덕에 읽는 이는 대가의 소울을 탐닉, 만끽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베끼고 베껴 죄다 고만고만한 글에서 얻을 수 없는 사실(事實)의 성찬이 흥미롭게 꾸며진 대화 형식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책 읽는 내내 마치 대가와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유쾌하면서도 무언가 지적으로 충전된 듯한 뿌듯한 감정마저 품게 될 정도로 말이다. 글 짓는 이가 이런 식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덤벼준다면 읽는 이의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이구나 하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 사례라고나 할까. 아무쪼록 검색 등에 의존하여 들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짜깁는 원고의 달인들은 반성해주시기 바랍니다, 좀 닮도록 하세욧!! 호호

대가 자신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미끈하게 빠진 대화. 식욕만 자극하는 게 아니다. 지식욕도 마구마구 자극 재미 돋는, 아무리 섭취해도 S라인을 해칠 염려 없는, 책임에 틀림없다! 대가 양반 밥 한번 먹읍시다~하는 기분으로 읽어주자!

(한 가지 아쉬운 건 ‘호치민과 쌀’부분인데 흠 뭐랄까 정말 호치민이 살아서 대화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 식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듯한데;)

소울 푸드(soul food)란, 뭔가 거창한 게 아니라, 어쩌면 자기의 가장 비참한 인생이 아름답게 녹아 있는 그런 음식들인지도 몰라요. 가난한 소년의 기억은 가수왕이 된 나에게는 영원히 아프고 영원히 그리운 기억이었는지도 몰라요.

(‘엘비스 프레슬리와 정크푸드’ 편..) 

 

 

생활 자체가 궁핍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 기쁨을 누린다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물질 풍요의 기반 위에서 간단히 얻어 누리는 기쁨과 비교하면 궁핍한 중에 얻어지는 그것은 얻어진다기보다 차라리 애써 찾고 또 찾을 때 가까스로 발견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찾은 걸 기쁨이라 이르긴 해도 실제로 그건 기쁨 그 자체이기보다는 그저 막막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자위 같은 것이라 다소 억지스럽다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아~ 참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당면한 현실은 물질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기쁨을 무시할 수 없는 사회니 말이다. 뭐 이런 게 속물근성 때문이라 해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물질 소비에서 얻는 기쁨이란 것도 생각해보면 그리 썩 만족스러운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게 사실이다. 포만감이든 뭐든 잠시 동안의 만족이 지나고 나면 뒤미처 밀려드는 허전함에 허우적대는 인생, 그 헛헛함을 밀쳐내려 다시 만족을 구하고.. 뭐 보잘것없는 인간 존재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짓을 수년, 수십 년에 걸쳐 반복하고도 모자라 죽을 때까지 반복하겠지 하고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는 거다. 뭐랄까 정말이지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싶은 뭔가 참을 수 없고 참기 힘든 감정들이 뭉쳐 복받치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어휴~; 누가 되었든 이 답답함의 원인 같은 걸 분명히 규명해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답이 없을까..

언급했듯 절대적인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길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비롯하여 검약과 소박함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삶이 그것이다. 부유함, 풍요 속 낭비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요즘은 교회에서조차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검약 같은 것은 낡은 도덕쯤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오로지 성공과 부귀영화가 제일인 것처럼..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걸 원하실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말이다. 후자의 경우 인간의 처지란 낭비하거나 궁핍하거나, 이렇게 둘로 나뉠 뿐이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생활 속에서의 소박함은 그 자체로 충일감을 맛보며 사는 방법, 아닐까..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서 그러한 충일감을 맛보고자 한다면 일상 수준에서 수시로 범람해 밀려드는 물질 풍요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것들과 그로인한 상대적 박탈감 같은 알 수 없는 내부의 감정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홀로 이런 것들과 대적하기란 정말 힘든 일. 이미 그러한 생활의 선례를 남긴 ‘헬렌 니어링’ 여사답게 후세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원군을 남겨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도서관 희귀 장서 등을 비롯하여 각종 도서를 뒤적여 찾은 인용문을 모아 책으로 전함으로써 전원생활의 기쁨과 고난의 때에 도움이, 건강하고 소박한 자급자족의 생활에 조언이 되게끔 하였으니 원제 ‘WISE WORDS FOR THE GOOD LIFE’인 이 책 ‘하루에 한줄, 일상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짧은 글인 만큼 매일 읽으며 소망을 품어보리라. 머지않은 시기에 소박한 생활이 전해주는 풍요로움 누리고 살 나와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누가미 일족』으로 간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이후 다른 시리즈도 읽으려 했으나 여차저차 하여 이제야『삼수탑』으로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살인사건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설 역시 한 번 잡고서는 끝장을 봤다는.... 단지 결론을 알아야겠다는 일념하나로 말이다. 그리고 이틀만에 알게 된 결론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더라는....

결론은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운명이랄 수밖에 없는 연인의 통속적인 로맨스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다. 특히 정숙한 요조숙녀인 오토네가 악당이라 여기던 (하지만 실은 자신의 운명의 짝이었던 남자) 슌사코에게 빠져드는 스토리는 마치 중학생시절 몰래 읽던 하이틴 로맨스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러브스토리 전개가 더 재미있었다. 사건의 해결보다는... ㅋㅋ

아무튼 결론은 해피엔드이다. 오토네와 슌사코는 무사히 결혼을 하고 거액의 유산도 물려받고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던 적들도 모두 사라졌다. 정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딱 좋은 이야깃거리다. 실제로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근데 말이다. 글이 아닌 영상으로 만났을 때의 오토네는 어떻게 그려질까. 문득 그런 궁금증이 생긴다. 천진무구하고 순수함 그 자체이던 처녀가 한 남자에게 겁탈당한 후 타락해?! 혹은 남자를 알아가게 되는?! 그것도 아니면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어가는?! 그 심오하고도 혼란스러우며 복잡스런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ㅎㅎ;; (이런 걸 궁금해 한다고 변태라고 생각지는 말아주길..^^;;)

1955년에 쓰인 작품이라서인가 정서상으로는 (특히 오토네의 사고방식이..)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신선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뭐 이런 심심풀이용 소설을 읽고 사람의 인연설이니 운명이니 하며 운운하는 것은 헛된 짓 같다. 그저 머리 복잡할 때 아니면 시간을 빨리 보내버리고 싶을 때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좋을 거라는 점만 말해두는 것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