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이 끝났다. 주말을 기다릴 이유가 사라졌다. T.T ‘현빈앓이’까지는 아니었지만 드라마속 두 커플의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진정으로~~ 행복했다. 그건 그렇고 이 드라마가 막바지로 이를 때쯤 엔딩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원이가 죽나 라임이가 죽나 아니면 막바지의 행복한 장면들이 모두 꿈이거나... 뭐 이런 예상들이 오가는 가운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해피 엔드이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뚜껑이 열린 드라마의 결말은 조금은 시시한 느낌이 들 정도로 블링블링한 엔드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해피한 사랑의 결말을 그토록 원하는 걸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그런 판타지에 가까운 드라마 같은 사랑의 결말이 거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을 이루기까지는 드라마속 사람들도 현실속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지만 (물론 현실에서는 재벌이 등장하지도 으리으리한 집이나 별장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드라마는 길어봤자 20부면 끝나는 것에 비해 현실의 사랑은 뜨근한 구들장 위에서 녹은 엿가락이 늘어지듯 가늘고 길게 이어지다보니 별의별 감정들과 상황들이 끼어들고 이런 복합적인 원인들로 결국은 상처투성이가 되기 싶다. 이같은 현실속 사랑에 지치거나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피한 결말을 맺는 동화 같고 판타지 같은 드라마속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사랑에 있어서만은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슬프고 잔혹한 결말보다는 행복한 결말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작가의 최근 작품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전작 두 소설 『얼마만큼의 애정』과『서른다섯, 사랑』은 그야말로 만족할만한 결론을 보여주는 연애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오키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는 읽었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연애소설이다. 드라마보다는 현실에 더 깊이 발을 담근 연애이야기라고나 할까. 결론도 그다지 해피하지 않고 과정 또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와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 라는 제목의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남녀를 그린 표지까지 더해지면 당연히 참으로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 아닐까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소설들은 드라마처럼 그리 아름다운 소설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사랑의 부정적인 이면을 들춰 보여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는 소위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형제들에 비해 잘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키오의 사랑이야기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배경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배경을 부담스러워하고 그로 인해 자신감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던 차에 바에서 일하던 아내를 알게 되고 비교적 빨리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내의 엑스 보이프렌드가 이혼을 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듯 새로운 짝을 만나게 된다.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 역시 바람기 많은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만 빼면 아키오 집안 정도는 아니어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미하루의 사랑이야기이다. 직장에서 사내 연애를 하여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미하루는 한 때 사귀다가 몇 년간 헤어졌던 회사 상사와 다시 관계를 맺는다. 미하루는 결혼이라는 것에 설레임이 없다. 결혼할 사람과 섹스를 한 후에도 그녀는 옛애인을 만나 섹스하는 것에 죄책감이 없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그녀는 다시 옛애인의 집을 찾지만 그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이다.
소설 속 두 남녀 주인공은 뭐하나 부족할 것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부담스러워하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남자는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 그리하여 부모가 극구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결혼을 서둘렀고, 여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옛애인과의 격렬한 섹스에 빠져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같은 두 주인공을 통해 볼 때 이 소설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남녀의 공식적인 배우자 혹은 애인과의 사이는 언뜻 보면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어 금이 가기 시작한 것 같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만남이 흔들린 원인은 바로 본인들에게 있다. 처음부터 잘 못 끼워진 단추였기에 결국은 언제든 탈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마음의 상태도 정확히 확인해 보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모자란 점이나 부족한 마음을 채워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작한 사랑이니 쉽게 흔들릴 수밖에...
아키오는 자신의 힘만으로 회사에서 인정받고 자신도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면서 남들 눈에는 못생기고 나이도 많아 여자로서는 매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사의 숨은 매력을 점차 알아가게 되고 결국은 그 사람과 운명같은 사랑을 한다. 반면 미하루는 자신을 향하던 옛애인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마음을 굳히고 결혼식 전날 옛애인의 집을 찾지만 그의 자취는 이미 사라진 후이다. 한 남자는 사랑의 참 맛을 맛보았지만 한 여자는 사랑의 참 맛을 맛보지 못한 채 두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상황에서 아니 할 수 없는 말.. ‘사랑은 타이밍...’ 미하루가 조금만 더 일찍 옛애인의 마음을 알아챘더라면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 볼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녀도 아키오처럼 참사랑을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뭐하나 부족할 것 없는 젊은 두 남녀의 운명의 짝으로 적어도 객관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아키오의 상대는 아키오보다 나이도 많고 본인도 인정하는 못난 얼굴에 젊은날 폐암에 걸린 적도 있고 이혼까지 한 여자이다. 또한 미하루의 상대는 그녀보다 11살이나 많고 집이 가난하여 대학교도 중퇴 했으며 키는 작은 데 비해 거구인 한마디로 외모도 볼품없는 남자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비록 외적으로는 부족하고 못난 점이 많으나 스스로를 믿었고 결국은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남들에게서 인정받았 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외형적으로는 그럴싸하나 내면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두 젊은 남녀의 운명의 짝으로 객관적으로는 모자라 보이나 내면만은 단단한 두 사람을 선택하고 있다.
누군가의 모자란 점을 누군가가 채워준다는 것.. 작가는 이런 사랑이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도 여타의 연애 드라마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아가씨에게 나타난 재벌의 백마탄 왕자는 그야말로 완벽한 보완의 관계니까. 물론 그것이 상호보완이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이 소설은 한국판 연애 드라마를 평민수준으로 살짝 비튼 버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 그 놈, 참 어렵고도 거슬린다. 나이들면 절로 알아서 되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나이 들어도 아니 나이 들어서 더욱 어려운 게 사랑인 것 같다. 세상의 냉정함에 점점 정신차려 갈수록 사랑에 대한 환상은 옅어져만 가고 어느 지점을 지남으로써는 자포자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도 사랑은 찾아오더란 말이다. 동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현실적인 사랑이긴 하지만... 그런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시크릿 가든>을 볼 때만은 동화같은 사랑을 꿈꾸다가도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현실의 사랑에 만족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