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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하여 백석이란 시인을 알게 되고 어떤 시를 썼던 사람인지 궁금하여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을 산 것이 벌써 몇 년 전이다. 이 시집은 그리 시를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어 좀체 시집을 사지 않던 내가 산 몇 안 되는 시집 중 하나였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몇 장 읽다 덮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의미도 그렇거니와 현대 국어 문법과는 거리가 먼 시어들로 인해 골치가 아프더란 말이다. 게다가 책 뒤편에 실린 원본을 보는 순간 ‘아! 백석의 시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바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이제야 『백석평전』이라는 책 때문에 다시 한 번 펼쳐 보게 되었다.

물론『백석평전』을 읽었다고 하여 백석 시에 대한 내 이해가 깊어졌다거나 없던 시심이 새삼 생겨났다는 건 아니다. 그저 한 예술가의 백석 시인과 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봄으로써 그 사랑을 조금 전해받았다고나 할까. 이 평전을 통해 백석이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대강의 삶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에 얽힌 사연과 백석의 시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너무 주관적인 평전이라고나 할까. 저자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백석이란 시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감격과 환희를 넘어선 기적과도 같은 체험을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자신만의 감정에 깊이 빠져 있는 나머지 백석이란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한 평가의 객관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허긴 너무 딱딱하게 평론가들이 말하듯 백석 시인과 그의 시를 평했다면 나같은 사람은 아예 읽기조차 못했겠지만 말이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백석의 시가 대중가요에 영향을 미쳤다며 여러 노래 가사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놀랍기도 하고 신선했다. 천재라 불리던 시인의 시가 알게 모르게 지금도 불리고 있는 대중가요에 영향을 주었다니... 그런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백석 시인을 잘 아는 아버지와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들어보니 또 그럴싸하더란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평전에서 백석이란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글을 쓴 저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고 있는 예술가의 인생 굴곡이 진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절망적인 고비를 이겨낸 사람의 비범한 기운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그에게 있어 백석과 그의 시는 하나의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걸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런 구원에 대한 헌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백석의 젊었을 때 사진이 실려 있는데 정말 잘생겼다. 그 시대 모던보이의 대표격이라 할만한 얼굴이다. 이렇게 잘생긴데다가 시까지 잘 쓰고 게다가 몇 개의 외국어를 할 정도였으니 그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이런 그가 왜 북으로 가야 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남한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의 시를 좀 더 많이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의 소설까지도... 백석을 잘 모르는 나도 그를 조금 알게 되니 이런 마음이 들 정도인데 그를 아끼던 사람들과 그의 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독자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책에는 이 책의 저자의 그림도 함께 실려 있다. 아마도 자신의 오른손을 망치로 내리친 후 왼손으로 그린 그림들이지 싶다. 그림에도 역시 문외한인 나지만 저자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시골에서 자란 어릴적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짐을 느낀다. 한 시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의 그림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나도 좀더 백석의 시를 알게 되면 이런 서정적인 감흥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남산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이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