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관통하는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를 대중문화로 꼽는다면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자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세기는 평화의 세기는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전쟁으로 점철된 세기라 해도 좋을 만큼. 허긴 지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 평화로운 날이 얼마나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딱히 20세기만으로 국한하여 전쟁의 세기라 일컫는 것 자체가 어폐이겠지만 아무튼 세계 대전(그것도 두 번씩이나)을 비롯하여 적대적 감정이 싹 틔운 무수한 반목과 그로 인해 발생한 각지의 전쟁들로 인류는 엄청난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렇게 빗발치듯 무수히 쏟아지는 적의의 포화를 견뎌내느라 애쓰는 세상을 위로한 것도 음악이다.

만일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지구상에서 인류 같은 건 벌써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송 이즈 유’에 등장하는 줄리언이나 그의 아버지를 위로한 것 역시 음악이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니 모든 삶이 상처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보면 그런 삶을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우리에게 있어 위로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그러니 그 자체로 위로가 되어주는 음악은 또 얼마나 중한가. 그 존재가 갖는 무게로서의 존재감이란 따로 의미를 두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다. 설사 그 음악이란 것이 단지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하지만 저는 이제야 제 슬픔을 잊었어요.” 토시로는 항의했다. “그때가 바로 행복이 끝나야만 하는 때다.” 수도승이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토시로가 우겼다. “아니다,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PP405,406)― 우리에겐 역시 그 꿈이, 그 꿈을 만드는 방법이 중요하다, 너무도 중요하고 중하다.

한국전에 참전 생각보다 빨리 종전을 맞게 되긴 했지만 한쪽 다리를 잃은 채 절름발이로 자신의 인생에 복귀해야 했던 줄리언의 아버지. 그리고 왕성한 젊음을 과시하는 이면은 정체모를 공허함에 쫓겨 난봉을 일삼던 줄리언, 겨우 가정을 꾸려 안정을 찾나 싶었지만 아들을 잃고 나서 아내와도 헤어져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맞닥뜨려야 했던 그. 안팎으로 드러난 외상(外傷)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 부자와 그들을 위로하듯 감싸는 음악의 선율과 가사들이 어우러진 내용을 통해 어쩌면 우리도 이 구원 없는 현실을 우리 귓가를 맴도는 노래처럼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덧없는 것일수록 아름다운 저 예술은 그래서 그토록 가슴 아픈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덧없는 예술을 보고 울어주는 얼간이들이 있는 한, 세상에는 시적인 것들의 드문 승리가 반드시 존재한다. 저들은 이혼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개념이지만, 그 개념은 나와 아내의 사이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거기엔 형상이 필요하다. 그림이건 음악이건, 가슴 아픈 형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응준 단편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에서 옮김)

 

 

이 책 ‘예수와 함께 본 영화’를 읽는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 읽고 나니 머리 속에 잡다하게 떠돌던 생각의 편린들은 가지런히 정돈된 느낌이고 가슴 속엔 무언가 형언키 어려운 감정들이 가득 차올라 뿌듯하기도 합니다. 마치 한 학기 교양강좌를 수강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라는 표현 자체는 흔한 요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많이 쓰이는 현실이니 특별하다 여기는 것이야말로 별스럽게 구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정작 일상 중에 그러한 경험을 하며 사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역시 드물지 않을까 싶고 그렇게 드문 걸 보면 누가 뭐라 해도 그건 여전히 특별한 체험 같습니다.

저도 제게 속한 사실로서의 특별한 체험을 이렇게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면서 부딪게 마련인 여러 문제들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곤 하는 인간의 아니 나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하나님은 분명 내게 위로가 되어주셨어요.’ 라고. 하지만 이는 내게 속한 사실인 동시에 나라는 개인 바깥에서 사실로 증명되기 어려운 형태로 일종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기도 합니다. 객관적 사실로 증명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타인에게는 그저 한낱 나라는 개인의 믿음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증명, 경험 속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실에서 비롯된 믿음을 증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 같습니다. 경험에 속한다는 건 다시 말해 경험에 국한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어떤 개인의 경험에 속하는 사실은 그 이의 경험 안에서만 진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이라 해도 ‘특별한’이라는 전제가 따르는 말 그대로 ‘특별한 사실’일 뿐이지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인의 특수한 체험 ‘특별한 사실’에서 비롯된 믿음이 전파될 수 있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객관적 사실로 입증되지도 않은, 아니 거의 대부분 입증이 어려운 데서 비롯된 믿음이 어떻게 보편화되는가를 생각하면 참 신기합니다. 소위 ‘전도’라 일컫는 온전할 수 없는 행위, 그러니까 인간이 타인의 사실을 자신의 진실로 받아들이기 위한 추론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객관적 사실이 부재한 중에 이뤄지는 전달 행위를 통해 어떻게 타인에게서 믿음이 불러일으켜지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신기한 건 오히려 이러한 믿음을 공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객관적 사실로 증명키 어려운 부분들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나마 믿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처럼 현실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객관적 사실의 지위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 지위를 인정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 역시 문제입니다. 허긴 불완전한 인간이 개입된 이상 모든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여길 만도 해요. 그러니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바깥, 불가지(不可知) 영역에 거하는 神,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인적인 사실, 개인의 믿음만을 기준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진 않겠죠. 그런데도 자신의 오해를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걸 믿음의 부족으로 몰아붙이며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 편협한 가치관을 고수하는 경향이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인본주의 운운하며 인간의 이해에 준하여 하나님의 뜻을 변질시키지 말라는 주장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 앞서 한번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뜻이라 강력하게 믿는 그 기준을 잠시만 내려놓고 우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믿고 주장하는 그 기준이 정말 하나님의 것인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같은 인간조차 그것이 정말 하나님에게서 난 기준인가 싶을 정도로 편협한 것이라면 특히 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교계를 비롯해 비난하는 측도 이런저런 식의 자기 오해에서 비롯된 그릇된 믿음을 강요하는 형태가 팽배한 이즈음에 그러한 것들을 한번쯤 돌이켜 반성할 여지를 주는 것이 바로 이 책 ‘예수와 함께 본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를 비롯한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데칼코마니와도 같다는 지인의 말이 떠오르네요. 일상을 닮았지만 일상과 꼭 같지는 않은, 영화를 통해 삶을 반추하듯 가장 세상적인 방식을 거울로 두어 자신의 믿음이 그릇된 오해에 기반한 것은 아닌지 함께 점검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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