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이런 데에 솔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만) 나는 커피에 대해 잘 모른다. 뭐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도 좋아는 한다. 모르면서 애호한다 할 수 있냐는 식의 비난 섞인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인걸 뭐, 몰라도 좋아는 할 수 있다. 그러니까 愛/好한다 해서 그 모든 걸 꼭 알아야 하냐면 그렇진 않다. 적어도 나, 나란 인간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이 지구상에 하나 더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 된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만 적어도 그러니까 최소한 둘 이상은 될 테니. 그래서겠지만 앞서 좋아하노라 이르긴 했어도 사실 그리 즐겨 마시는 편도 아닌데다 마셔도 잘해야 에스프레소 베이스 계열, 뭘 선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물을 탄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정도 마셔준다(나 외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그치는 달달한 걸 좋아하는 탓에 그 계열에 뭔가 이것저것 뒤섞어 만들어진 걸 꽤 자주 찾긴 한다, 이건 뭐 애도 아니고~^^a). 그러니 이런 수준?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사실 뭣하다. 그게 너무 유야무야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아, 아니다 커피에 물 내린 듯 커피에 물 섞은 듯 하나 싶어 그래도 좀 알자 싶어서 그래서 접하게 된 책이 곧『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

그래서 좀 알았냐 하면 확실히 알아먹긴 하겠더라. 그러니까 알고 나면 가려서 먹으려(마시려) 애를 쓰게 될 만하다 싶었다. 산지(産地)에서부터 발생하는 품질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차이부터 로스팅 과정에서 나뉘는 맛의 차이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그리고 책 내용 중 맥스웰社의 예를 비롯 그걸 극복하려는 데서 비롯된 스타벅스가 오히려 맥스웰化 되어가는 듯한 아이러니, 대중화의 미명 아래 부득이하게(금전적으로는 확실하게 득을 볼 테지만) 잃어버린 커피의 眞맛을 가리고자 부단히 애쓰는 노력을 생각하니 ‘아메리카노’조차 떨떠름하게 느껴지긴 한다. 과연 프롤로그부터 진짜 운운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맛의 달인』등등을 인용해가면서까지 자신이 찾은, 혹은 찾았다고 여기는, 그래서 읽는 이 또한 찾기를 바라는 커피의 참맛이란 건 역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산지, 운송 과정, 로스팅 등의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커피의 맛 자체를 천변만화(千變萬化)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변만화하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닮았다는 게 아닐지. 어쩌면 알 듯 말 듯한 차이에 열광하는 이면은 실은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커피 자체가 知的인 음료니 어쩌니 하는 말엔 도무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의 상태에 알맞는 커피가 있어주면 그때그때 그걸로 족할 뿐이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다. 그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달뜨지 말자 싶다.

표지의 커피콩(bean)이 눈에 띈다. 지은이나 출판사, 표지 디자인 어느 측도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마치 쉼표/숨표 같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야말로 그런 게 아닐는지. 허덕이는 일상 중에 잠시나마 숨 고르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런 시간. 이것을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커피의 참 매력이지 않을까?

 

 

어릴 적 남자 녀석들이 하도 따라 부르는 통에 흥얼흥얼 하다 어느 순간 내 입에도 붙어버린 만화 주제가가 있는데 언제가 어느 리뷰에선가도 살짝 언급한 적 있는데 아무튼 그 노랜 이런 가사로 시작된다. ‘모험의 날개를 활짝 펴라 태양소년 으으응(자체 음성모자이크 처리  되시겠다ㅎㅎ)~♬’ 어쩌다 본 일도 있는데 내용이 황금 같이 귀한 것들이 잔뜩 나는 금광? 엘도라도 같은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던가?? 제대로 기억하는 바가 하나도 없지만 꽤 재미있게 본 듯한 느낌이 지금까지 남은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상존하는 위험(내 기억엔 그 만화 주인공도 번번이 고생 꽤나 했던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이란 점을 감안하면 보상이 약속된 고생이긴 하다만 그에 비하면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생이란 정말이지 ‘흥, 주인공의 고생 따위 개나 물어가라지ㅡ,.ㅡ’라고 시니컬하게 혹은 시큰둥할 정도)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을 찾아 나서서는 기어코 목적지에 닿고야마는 인간 불굴의 모험정신이란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 물론 정복욕을 과시하는 여정도 이와 유사한 것이겠지만 그 목적에 따라 그러니까 최종 목적지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 산이 있으니 산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건 나 자신인 걸 생각하면 역시 최종 목적지는 거기 있는 곳이지만 그 곳에 가려는 이유를 따져 묻는 물음에 대답할만한 그럴싸한 목적 따위는 최종 목적지인 그 장소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목적은 처음부터 그 목적지와 관련 없이 길을 나선 자의 내면에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거기 있다는 것만을 어렴풋하게 아는 것일 뿐 결국 길 끝까지 가서야 겨우 만나게 되는, 자신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이 여정 중에도 그리고 길 끝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 결국 자기 속에 있어온 자기 자신임을 알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는 건 뻔한 비유이기보다 차라리 인생의 참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가장 훌륭한 비유일지 모른다. 그러하니 모든 여정은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그렇지만 그 탐험의 끝은 자신을 정복하는 데로 이어지기도 하는 반면 끝내 타인을 짓밟는 데 머물러,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바. 어쩌면 인류의 역사라는 긴 여정 가운데 일어났던 모든 비극은 자기를 정복하지 못한 인간들에 의해 초래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억측이라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팀북투로 가는 길』은,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무모한 탐험가로 기록된 멍고 파크(1795년 12월 첫 번째 니제르 강 여행을 떠났던 이후 수차례 여행을 반복하다 결국 원주민에게 살해되고만)를 따라, 그가 한 여행을 최대한 똑같이 따라 해서 무엇이 그를 서아프리카 내륙으로 몰아넣는지 알아내고 싶었다는 여인 키라 실락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역사가들 중에는 그가 죽음을 갈망했거나 실성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에서는 돈이나 명예를 좇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파크가 미지의 땅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짙푸른 강기슭과 평화롭고 고요한 강, 수면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이 아름다운 나라가 그의 호기심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P21)

키라 실락을 사로잡아 니제르 강 유역까지 내몬 것 역시 그러한 호기심 자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은 현지에서 여행을 위한 장구 등을 마련하려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되면서부터 어떤 의문들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라니! 분명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특별한 오락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회에서 성장한 덕분이다. 그런 신분으로 말리에 왔다는 걸 나도 안다. 이 때문에 미개발국을 여행할 때면 언제나 당혹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마주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그런 평균적인 삶을 앗아간 힘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P27)

여인 키라 실락의 여행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되었을까? 그녀는 목적지인 팀북투에 닿았을까? 아니 거기서 자기 자신과 대면하였을까? 그리고 정복하였을까, 자신을? 대답 대신 의문으로 맺겠다. 여러분 내면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팀북투를 찾아가는 여정은 온전히 각자의 몫일 테니. 'The cruelest journey', 험난한 여정이다. 아무쪼록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겠다.

 

 

한때는 그녀의 말에 위안을 얻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도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사랑과 그 부수적인 상황들이 일으키는 감정놀이가 시시하게 느껴질 뿐이고 세상 전부도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감정들이 사실은 한 때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세상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사랑을 이루었거나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녀의 말은 그저 아련한 추억 하나쯤 떠올리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도 미처 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건조해져있을 거라고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새삼 이렇게 글로 읽고 있는 동안에서야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사랑이란 단어에 설레어 하지 않고 이별이란 단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움이란 단어를 봐도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슬픔이란 단어에도 희망이란 단어에도 행복이란 단어에도 그 어떤 단어에도 그 단어만이 주는 혹은 주고자 하는 감정을 더 이상 불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래서였나보다. 라디오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것이... 아니 들어도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있는 프로그램보다는 줄기차게 클래식만 나오는 클래식 라디오에 주파수를 고정시켜 놓았던,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변화를 이제야 알겠다. 나는 어느새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공감하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버린 아니 너무 지쳐버린 마음만을 갖게 된 것이다. 쉽게 체념하고 쉽게 잊으려하고 쉽게 동요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 그렇게 해야만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울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너무나 잘 알기에...

카피문구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를 닮았다. 그래서 한 때는 그녀의 이야기에 아픈 마음을 달랬고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여전히 과거의 나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변해가는데 그래서 세상의 모질고 비정한 규칙을 점점더 이해해가게 되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과거에 남아 비슷한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있다. 그 이야기에 여전히 지금의 누군가는 과거의 나처럼 위로받고 공감대를 형성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그런 말랑말랑한 감성에 더 이상 마음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랑말랑한 글에 더 이상 감동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도 왜 나는 아직도 이런 글을 좇는 걸까. 그래도 조금은 덜 마른 채 감성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글을 보면서 덜 마른 감성조차 바싹 말리려하는 지독한 성격 때문일까. 그녀의 이야기는 새삼 내가 너무 변해버렸다는 것, 색감이 다 빠져나간 회색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변하는 것도 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