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말께에 출간되었던 도서의 개정판이다. 제명도 같고 내용도 같고 판형과 가격 말고는 변한 게 없는 듯하다(그래서 나쁘다 좋다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개정판이 나왔다. 그렇군’ 이런 느낌이라는 거다).

쿠바를 생각할 때면, 아니 어쩌면 그 반대가 더 정확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체 게바라’라는 인물을 떠올릴 때에야 비로소 ‘쿠바’라는 나라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리라. 쿠바는 그렇게 체 게바라라는 인물과 떼려한들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의 머릿속은 물론 가슴속까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데엔 밀레니엄이랍시고 떠들썩하던 2000년 3월, 뭐 대단한 내용이 실린 것도 아닌『체 게바라 평전』의 영향 탓이리라. 아마도 우리나라에선 특히 더했지 싶은데 그땐 정말이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이 한 마디를 공유하기 위해 붉은색 표지의 평전을 사든 사람들을 거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 한 마디의 위력은 그렇게 대중화된 이래 한국사회에서만 10년을 넘겨 지속되고 있다. 다만 불가능한 꿈같은 건 일찌감치 내버리고 철저하게 순응적 자세로 현실에 임하려는 리얼리스트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젠 아예 넘쳐날 정도가 되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만;

평전이라 해도 일개인을 신격화하는 신화에 익숙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이날 이때까지 체 게바라라는 인물은 물론이요 쿠바는 더더욱 멀고 먼, 곳이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표현조차 어색하다 여길 정도로 그야말로 먼, 것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래서야 누군가 ‘어이 당신이란 작자는 체 게바라 셔츠를 소위 간지난다는 이유로 걸치고 다니는 치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타박한다 해도 할말이 없다. ‘그대가 옳소, 이거 참 미안하게 됐시다;’ 그러나 한편 만일 이런 식의 타박이라면 또 ‘그래서 안 될 게 뭐요?’ 따져 묻게 될 것도 같다. 그러니까 체 게바라 셔츠를 멋으로 입고 다녀서 안될 건 또 뭔가 싶기도 하다. 그 인물을 멋스럽게 여기는 건 결국 고작 한 마디에 불과하지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를 공유하기 위해 평전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과 매일반이다. 동네 양아치라서 안 되고 깊이 없는 습자지 형태라 안 되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안 되고’만 일삼는 치들은 끝까지 안 된다! 그 ‘안 되고’만 죽는 날까지 주워섬긴다. 또 앞에서 안 된다 해놓고 저희들은 뒤에서 딴 짓거리하기 십상이다(내 말에 경험과 육감이 맞장구친다, 역시 그렇군). 나는 이러한 것들, 이런 방식의 접근보다 동네 양아치도 무리 없이 다가설 수 있는 깊이, 그것이 습자지 형태든 뭐든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다 싶다. 적어도 이 책은 쿠바에 대해서 뭔가 말하긴 한다. 실속도 없이 ‘인문학 고전을 읽어라!’ 따위의 말만 남발하는 걸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싸구려들에 비하면 이 책은 훌륭하다. 적어도 체 게바라의 한 마디를 공유하는 이들의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을 쿠바를 알고자 하는 욕구를 완벽하게 해소할 정도는 아니지만(한 권의 책으로 그런 것들을 바라는 치라면 평소 생활이 어떠했을지 빤하다. 날로 먹는 데 능숙하다 세상 만만하게 보다 큰 코 다친다! 이놈아!!) 우리가 몰랐던 특별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풍부하게 얻을 수 있으니 안심하자.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만일 그때에도 알고 있었더라면’과 같은 내용의 잠언은 사람을 달리해가며 거듭되는 속에 말 옮기는 이의 회한과 함께 그에게 그러한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어떤 사건(대게는 자신이 그 사건의 중심인)을 바로 잡고픈 열망 같은 게 포함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잠언은 후세에 전하는 교훈으로 미래지향적이라 평가되기보다 차라리 과거에 붙들린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말로 일러준다 한들 고분고분 인정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마치 어머니 잔소리처럼~ㅎㅎ 한편 결국 당장의 현실이란 꼬집지 않으면 말을 말로써 들어먹지 않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 아닐지?! 풍자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하 그래 그렇구나. 19세기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나고 자란 양키 중의 양키, 실용 중심적 사고의 지극한 전형 행크 모건을 6세기, 중세 영국 아서 왕의 카멜롯으로 날려 보낸 것도 다 풍자의 힘이로구나.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지리상으로도 엄청난 간격이지만 시간상으로도 1300여년을 건너뛰다니! 무모함, 불가능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까지 그가, 행크 모건을 앞세운 마크 트웨인이 건네려 했던 메시지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읽기 전부터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어보니 과연!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군주제 확립, 이것의 기원이라 이를 만하지 않은가 싶다. 神으로부터 비롯되는 권한을 강조하는 교회와 군주, 귀족이 죽이 맞아 ‘자유인’인 순진한 백성들조차 노예처럼 부려먹는 걸 ‘순종’으로 미화하는 사회라니, 쓰레기들이네;

가만히 두어도 자립 구원이 명백한 운명인 태양을 제가 구해내겠노라 장담, 정말 구해내어(훌륭한 시늉, 연기가 아닐 수 없다!) 화형을 면한 양키 행크 모건. 이로 인해 국왕의 오른팔로, 귀족들과 대등 아니 그 이상의 지위에 서게 된 그(나는 일반 국민 전체에게 태양을 구하는 선행을 베풀었고, 그 덕분에 유명해졌다. 나는 왕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가 실세였고 왕이 그림자에 불과했다. 나의 권력은 어마어마했다. 많은 경우처럼 단순히 명목상의 권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이었다.P81). 이 늘어진 팔자를 주어진 그대로 넙죽 받아들여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그의 19세기적 자존심은 너무 분명했다. 게다가 양키 중의 양키인 그의 실용정신 또한 너무나 투철했던 것이고. 그는 자신의 사소한 필요에서 시작, 공장, 전화, 신문 이러한 바탕들이 교육으로 옮아가 마침내 6세기 영국의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는 데까지 옮아갈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군주를 중심으로 성립된 절대적 권한 한복판에 공화정을 수립하려는 야망까지 품게 되는 것인데 이 부분이 압권이다. 마크 트웨인의 풍자가 그냥 풍자로 끝나지 않는 힘이 여기에 있다. 6세기 영국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묘사를 통해 그러한 구습이 아직도 잔존해있는 19세기 영국을 비판하고 그러한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모든 시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낱낱이 드러내어 보여줌으로써 그 어떤 비판보다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다. 한편 이는 동시에 19세기 당시 미국 가치관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역자는 마크 트웨인이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한계까지 짚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 물론 역자의 시각은 현재 독자로서의 시각으로 훌륭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한계를 마크 트웨인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해선 의문이다. 6세기 영국 현실에서 행크 모건이 시도했던 모든 개혁(이 또한 그가 ‘보스’의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조처가 끝내는 실패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을 두고 19세기 미국 가치관의 한계를 드러내려는 마크 트웨인의 의도로 설명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느낌이다. 오히려「제33장 6세기의 정치경제」와 같이 국부의 실질 가치에 관해 언급한 내용은-물론 그 전에, 중요한 점은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번 돈으로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나는 19세기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북부에서는 목수가 금본위 화폐로 3달러의 일당을 받았다. 남부에서는 화폐 가치가 형편없는 남부 동맹 지폐로 50달러의 일당을 받았다. 북부에서는 작업복 한 벌을 3달러, 즉 하루 일당으로 살 수 있는데 반해, 남부에서는 이틀 치 일당인 75달러를 줘야 했다. 다른  물건들도 그런 비율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북부의 임금이 남부의 임금보다 두 배나 높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부의 임금은 남부의 임금보다 두 배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PP360,361)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긴 하지만-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한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합리적임을 설명하는, 실용적 가치관이 엿보이는 내용으로 19세기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져 온 흐름을 생각하면 분명 미국적 가치관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마크 트웨인이 예견하여 일부러 드러내려 했노라 판단하기에는 이 작품 내용만으로는 역시 무리가 따르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의 의도를 별개로 생각한다면, 그와 상관없이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바라볼 때 이 작품『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러한 점을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뒤에 실린 역자의 해설을 읽으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런 정도로 균형 잡힌 시각이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라면 큰 걱정 없겠지만;).

잃어버린 땅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오래전 이야기 같은 걸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오늘날까지 우리가 처한 이 현실 속에 그 당시 그 땅의 잔여들, 망령과도 같은 불합리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감력이 떨어지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는 전여자친구의 충고를 수용해 그 같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살아있는 한 여자에 대한 전기... 나는 이사벨이란 여자를 만나서 그녀를 나의 첫 번째 전기의 주인공으로 정한다. 그리고 이후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빠지지 않고 글로 옮긴다. 이사벨의 사소한 버릇, 음식 취향, 가족관계는 물론 전기답게 그녀의 과거에 존재했던 옛남자들에 대해서까지...

그는 열심히 한 여자를 파헤쳐갔다. 연인이란 위치에서는 조금 괴로웠을 수도 있는 그녀의 과거의 남자에 대한 글은 집요할 정도이다. 어떨 땐 그저 친한 친구처럼 또 어떨 땐 정신과 의사나 상담치료사인 듯 이사벨의 심리를 철저히 분석해가던 그는 800페이지 전기의 4/5 정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전기작가들의 심정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전기의 주인공에 대단한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얼치기 전기작가의 주인공은 조금은 특별하지 않은가. 바로 살아있다는 것. 이 말인즉 그녀는 시시각각 마음이 변하고 그로 인해 행동도 바뀌며 무엇보다 문제인 건 그녀 자신도 자신의 마음이 왜 그렇게 바뀌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 이런 특별한 사람을 전기의 주인공으로 삼은 그는 결국 전기라는 글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그렇게 열심히 한 여자를 철저히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고 그녀의 마음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일지라도 서로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왜나면 나조차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 서로에 대한 이해에 ‘빈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관계 시작의 전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서로의 뇌구조가 아주 많이 다른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는 더더욱... 그는 결국 또 일방적으로 한 여자로부터 차인다. 그렇게 열심히 한 여자를 알기 위해 전기를 쓰는 노력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결과가 생기게 된 문제를 굳이 찾아본다면 그건 그가 전기를 쓰되 결국은 자기식으로 각색하여 전기를 썼다는 점이다. 다른 여타의 전기작가들처럼... 물론 다양한 사례들과 그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전기의 주인공과의 대화를 통해 정말 생생한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각색하여 전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이해가 부족했던 것. 그의 전기가 실패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 한 때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연애 에피소드를 전기라는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가는 드 보통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 좀 엉뚱하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라는 걸... 그리고 그런 다른 방식을 찾아 평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것이 작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