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좀 되는가 싶어 너도나도 건드려보는 탓에 우후죽순 난립하는 따라지들. 난개발에 몸살 앓던 국토, 누가 그 땅 아니라고 할까봐 축제하면 너도나도 축제, 축제,… 순식간에 축제 공화국이 되어버리는 판국이니 처음엔 반갑다가도 나중에는 인상 찌푸리게 되는 일 다반사. 그래서 누가 또 박물관 했나 해서 너도나도 박물관, 박물관 하나 싶었는데 읽어보니 그건 아니다. 제주의 테디 베어 박물관을 제외하곤 모두 적자 일색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데 설립 취지야 물론 대부분 저 좋자는 데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 저 좋자고만 해서 감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상당수가 각기 제 분야에서 배고픔과 설움을 견디며 몰입한 끝에 얻은 타이틀(그게 ‘장인’적 지위가 되었든 그러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얻은 재부財富가 되었든 간에)을 발판으로 해당 분야의 역사적 가치를 보다 널리 알려 함께 나누려는 데서 이 박물관들이 싹 튼 것이고 보면 참 대단하다 싶다. 더 대단한 건 일개인이 감당키 어려운 적자를 매년 감내해가며 버티는 것! 그런 개인들 보고 참 용하구나하고 말만 꺼내놓기에는 뭔가 어색한 것이 손놓고 구경만 하다 쓰잘데기 없는 일에 갑자기 감 놔라 배 놔라 까부는 국가의 모양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도대체 이 땅에서 이색이 이색으로 자리매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밖에, 휴우~~

모름지기 국가의 형세라 함은 안팎으로 떠안은 살림을 어떻게 조화롭게 꾸려 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거늘 안팎으로 뒷짐만 지고 있을 거라면 당최 국가는 뭐 하러 존재하나 싶은 거다(다소 논리비약이 없진 않다만). 이건 유한책임도 아니오, 그렇다고 주식회사와는 더더욱 거리가 머니 원; 지금 난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마땅한 책임을 좀 지려고 해보라는 거지. 적어도 궁극의 문화라는 것이 개인의 핍절 위에 서는 것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오래전 옛날만 역사가 아니다. 자꾸 먼 곳만 그윽하게 바라볼 생각 말고 바로 곁에 싹을 틔워 어렵게 성장해가는 역사에 관심 갖고 가꾸자. 물도 좀 주고. 국가가 해준 게 뭐 있냐? 이런 소리 듣지 말길. 하긴 그러려면 우선 그 국가 행정 구성원부터 똑바로 뽑아 놓아야겠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이색 박물관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을 하는 내용이어서 유쾌한 기분이 들어야 맞는데 다 읽고나도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자꾸 걸리고 뭔지 모르게 자꾸 가슴이 답답해서 걸맞지 않게(?) 성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서력으로 2천하고도 11년이오, 단기로 따지면 4344년이다. 긴 세월 유구한 역사 아아~ 대한민국, 잘 좀 하자.

 

 

눈 덮인 대설원(大雪原)의 풍경, 어쩐지 나는 자꾸 <러브레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숨 한번 쉬어주고) 갱끼데스(스~스~~하고 마치 저편 어딘가 주인공의 강렬한 마음이 닿을 듯 울려 퍼지는ㅡㅜ)’ 감독 이와이 슈운지(이렇게 늘여쓰면 어쩐지 운치가 더하는 것만 같다;)를 낭만 본좌로 등극시키고 국내에도 숱한 폐인을 양산했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물론 본좌니 폐인이니 하는 표현은 당시엔 전무했다. 이즈음에 나왔더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 아닐까 하는 마음에 사용한 것뿐이니 사소한 데에 목숨 걸며 따지진 말아주세욧,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그런데 이렇게 숱한 폐인은 물론 나처럼 여리고 여린(ㅋ) 여인조차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설원에 대한 로망을 유머러스하게 다소 무참히; 뭉개주신 이가 등장하셨으니 바로 니시무라 준, 남극의 셰프 되시겠다(내 설원을 내 로망을 돌리도~~).

고요하고 적막할 것만 같은 남극이지만 말 그대로 살을 에는 바람과 영하 4,50도 정도는 가볍게 찍어주시고 그 이하로 하염없이 기온을 끌어내리는 추위라니. 이쯤 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가 아니라 상상 불허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그런데 이 아저씨(들) 보통 유쾌한 게 아니다. 도대체 남극의 추위가 추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이를테면 이런 식인데.. 그야말로 “이것이 남극이다!”라고 지평선을 가리키며 죽도를 들고 달려가고 싶어지는 그런 상황이었다(P53). 만일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죽도니 뭐니 이런 말은커녕 어떠한 말도 입 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넋이 나가 있을 거다. 아 물론 여러분 중에는 이보다 더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것 보세요! 아무개씨 그건 낙천적이라기보다 무책임한 거 아뇨; 아무튼 시종일관 이런 식인데 이건 뭐 남극에 파견된 하루키 같다고 해야 할까?ㅎㅎ 아무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태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낙천적 성격. 그런데 이게 남극이라면 좀 다른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아저씨들 그러니까 남극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훌륭하십니다, 진심으로 존경해요.(__)

꼼꼼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막상 남극으로 향할 즈음에야 빠뜨린 식자재를 떠올리기도 하고(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더니 정말 어떻게 되는 상황은 또 뭔가ㅋㅋ 전임이 남겨놓은 생선 등의 부식재료도 그렇고), 37차들(우리의 주인공 아저씨들은 38차임)과 교대시점에서 일어난 스노홀 붕괴사고 식겁한 나머지 식료 창고에 대한 생각을 미루다 기지 외부에다 이글루를 축조하질 않나(제설작업은 물론 생명과도 같은 물을 만드는 것도 고역인 고지 3,800미터-후지산보다 높단다!- 대지보다 약 20~30퍼센트 가량 부족한 곳에서, 헐~~;), 아무튼 좌충우돌 뭔가 엉성하고 좀 그렇다. 하지만 역시 이건 약과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월동기에 접어들자 관측조와 함께 바깥에서 칭기즈칸 파티(구운 고기 식기 전에 듭쇼~가 아니라 얼기 전에 듭쇼~다)를 열지를 않나, 소프트 볼 경기를 벌이지 않나, 이건 뭐 완전 너무 부럽지 않습니까; 설빙 관측 건으로 3미터짜리 구덩이를 파면서도 이 아저씨들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아 결국.. 결과는 “차갑다, 아프다, 짜릿해 왔다, 마비되어 왔다, 죽는 줄 알았다, 얼른 빼내 줘!” 머리만 설면에 드러낸 딱한 모습의 의사와 교도통신사 기자가 절규하는 소리가 기온 영하66도, 무풍, 황혼의 돔 기지 밖으로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북받친 것은 폭발적인 웃음이었다.(P165)

ㅡㅡ;; 정말 못 말리는 아저씨들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생생하면서도 너무나 유쾌하게 전달해주시는 니시무라 준 아저씨(요리만 잘하시는 게 아니었어;) 때문에 읽는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ㅋㅋㅋ 아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겨요, 아저씨들. 덕분에 입이 귀까지 찢어졌단 말입니다, 책임지세욧! ^_________^

나도 그렇지만 이 아저씨들을 영화를 통해 먼저 만난 사람도 꽤 있을 듯싶은데..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남극의 셰프』를 만나고 싶다면 책입니다! 정말이라니까요!!

 

 

남자라면?!

남자 도쿄?! 심상치 않은 제목. 아니 무슨 이런 데에까지 남녀 구분을; 지은이가 성차별, 그러니까 역차별로 인한 피해의식 같은 거라도 있나 싶었다. 말하자면 그러한 것들이 외상(外傷) 소위 그 트라우마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남자라는 사람들이 피해의식을 가질 만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사이 쏟아져 나오는 여행서를 비롯한 각종 서적들, 그 속에서 날 좀 봐줘요~ 하고 아우성치는 그 수많은 아기자기한 내용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치 여자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는 듯 꾸며진 것들이니 말이다. 여자인 내가 봐도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구분 짓기엔 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운동화 같은 것도 그렇다. 내 남친의 취향은 안타깝게도 일반적으로 여성만이 신을 수 있는 형태로 생산된 것들이 태반이다; 오니츠카 타이거류의 뭔가 화려한 듯 하면서도 경박스럽지 않은 배색의 우아하고 은은한 형태를 좋아하지만 번번이 실패; 발 크기도 남성 평균이지만 애당초 남성 사이즈는 생산되지 않으니 맞는 걸 찾기가 불가능하다. 남성용은 내가 봐도 지나치게 기능 위주, 디자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투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생산 과정상의 비용 문제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거야말로 지나친 편견이다. 외모에 신경 쓰고 예쁜 걸 좋아하는 남성이 증가하는 추세를 생각하면 허물어져야 하겠지만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것은 의외로 견고해서 역시 그리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아름다움의 영역에선 특히나 남성미에 대한 편견이 지배적인 게 아닌지. 단지 이러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때문에 남성미를 발산할 수 없는, 드러내지 못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건 좀 그렇다. 아무래도 역시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서 등장! 21세기 마초들을 위한 도쿄 秘書!! 과연, 역시 일본이구나 싶다. 먹GO, 마시GO, GO~GO~의 연속일 뿐인 남자의 놀이터라는 건 본질적으로 여성의 그것과 큰 차이 없겠지만 소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다양성에 있어선 확실히 그쪽이 조금 더 앞서있다고 할까 선도하는 형편인 것 같다. 그러니 여성의 쌈짓돈도 쉽게 풀리겠지만. 아, 물론 여자만의 전유물이네 어쩌네 하며 괜히 무분별한 소비지향의 된장남이 대거 출현해도 문제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지나 않을까 하는 따위의 우려 때문에 조금 더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우리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다는 건 안 될 말이다.

눈요기에 딱 알맞춤인 책이다. 단순히 어디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식이 아니어서 보는 이에 따라 의외의 정보를 득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경로로든 다양한 이국의 문화를 접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베껴오는 답습이 아닌 좀 더 다양한 변종들이 대안으로 출현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