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권유로『가난뱅이의 역습』과 함께 읽은 책이다. 전편에 이어 여전히 대책 없이 마구 저지르는 ‘마쓰모토 하지메’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일을 예삿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그야말로 ‘까짓 거 해버려!’라는 식으로 해버리는 걸 보고 있자니 은근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 싶지만 무엇보다 그 대책 없이 그냥 마구 저지르는 것 같아 보이는 마쓰모토 하지메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가만히 뜯어 살피니 그게 또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이런 형태야말로 이 빌어먹을 누구 말마따나 全지구적으로 꼴값을 떨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참으로 시원하게 제대로 한 방 갈겨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 물론 가정을 꾸리지 않고 사는 젊은이의 치기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거꾸로 피해의식으로 읽히는 거나 아닐지. 가정을 비롯한 사회에서 열심히 삶을 일구고 산다는 것도 사실 그렇게 큰 소리 칠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냉정하게 보면 가정이고 직장이고 그러한 사회관계라는 것은 결국 욕구불만을 해소하려다 이런저런 관계 속에 서로 얽혀든 것뿐이지 않나? 그러니 딱히 누굴 특히 이 가난뱅이 마쓰모토 하지메씨를 탓하고 말고 할 건 없다. 덧붙이면 댁이나 잘 하세요~고, 제발 그런 시선은 정말 댁들을 저희들 마음대로 굴리고 사는 부자놈들에게 쏘아붙이기 바란다. 정작 큰 소리 쳐야 할 곳에선 찍소리도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 엄한 데서 마구 쏟아내는 건 좀 부끄럽지 않은가 말이다;

너도 나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사는 게 정말 어려운 사회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인간의 품위란 건 내가 타인의 품위를 가난 등을 이유로 깔보지 않고 지켜줄 때에야 비로소 지켜지는 게 아닐지. 가난하고 보잘것없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의 인격체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없는 것, 인격체로써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정말 문제 아닐까. 나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 성공하리라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대세로 여겨지는 마당에 가난뱅이로서의 품위와 그걸 주장해 보이는 마쓰모토 하지메의 유쾌한 소동은 이 지랄 맞은 세상에 어울리는 그리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하는 난장의 格이란 어떠해야하는지를 아주 훌륭하게 보여주는 사례 아닐까 싶다.

 

 

우선 띠지의 광고문구에 사로잡히지 말자. ‘수십만 독자를 사로잡은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말이 그렇고 ‘구도적 문체와 시적 감수성이 빛나는 명상의 절 순례기’라는 말이 그러하며 ‘가까이 두고 되풀이해 읽으며 수행의 도반으로 삼고 싶은 책’이라는 말이 또한 그러하다. <책 머리에>라는 지은이의 머리글 역시 그러하니 붙들리지 말자(이렇게 말자, 말자 이르는 것 또한 껴듣는 것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말로 되어질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데서 모든 오해가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오해를 마치 진리인 것처럼 내세우는 건 무지(無知)의 소치(所致), 제 용렬(庸劣)함을 감추려는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세속의 잡사는 잊어버리고 고요함과 하나 되라는 말은 자기 내면에서 비롯되어 솟은 게 아니면 죄다 공염불이오, 공허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잡념의 먼지를 털어내고 참된 나와 만나는 행복 여정이라 일러준다 한들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것, 그러니 그 행복이란 것은 참된 나와 만나게 되는 그러한 때에 비로소 홀로 조용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삼독(三毒)을 씻고 홀연히 만나야 할 미소 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P217)과 같은 것. 그렇다, 다만 그러하니 절은 절하는 곳일 뿐이다.

어쩌면 그곳은 무엇을 만난다기보다 차라리 잃어버리는 곳, 잊고 끊어내는 곳이라 해야 옳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참된 나’라는 화상조차 여의는 것, 처음부터 내(我)가 없는 바에야 어찌 잡념의 먼지 따위가 끼겠는가. 그렇다 어느 곳에 먼지와 티끌이 앉을 손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자각이 시작되는 곳이 곧 절(寺)이다. 그러니 실은 어디든 절(寺) 아닌 곳 없고 이르는 處處가 또한 절(寺)이다. 이렇게 마음에 있어 마음 닿는 곳마다 절(寺)이지만은 미망(迷妄)에 惑하여 이런저런 일에 붙들리니 끊어내지(絶) 않고는 평안을 얻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 잡념과 잡사를 털어내기 위해 절하는 곳으로써의 절(寺)을 찾게 된다. 왜 아니겠나. 절(寺)이 마음에 있다 할 때 절(寺)도 마음도 생겨난 채로 머문다.

이래서는 무상이 아니다. 마침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자각조차 그러한 것이 이는 마음조차 여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러니 무슨 말을 더할까. 말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여의기 위한 소용과는 더욱 멀어질 뿐이니. 다만 이러할 진데 겨우 이른다면 절(寺)은 절(絶)하는 곳이라 이르는 정도일 뿐. 극찬과 헌사는 욕망에나 붙여질 이름이다. 그러한 부분들에 붙들리지 않고 제하여 살피면 담담한 여정 속에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윤이형의 두 번째 소설집『큰늑대 파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대로 ‘양다리’라는 거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 딱 반반씩 걸치고서는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나 할까. 너무 가상에 치우친 글을 읽으면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반면 현실만을 충실하게 그려낸 글은 읽다보면 밋밋해서 지루함이 슬쩍 고개를 쳐들던데 윤이형의 소설은 거부감과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가상이 고르게 섞여 있다.

좀비가 돌아다니며 사람을 물어뜯고, 돈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튜닝할 수 있다. 또 다른 자신과 죽고 사는 결투를 해야 하는가 하면 핵전쟁이 일어난 후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장을 삽입한 후 여러 가지 버전을 작동시키면 전혀 새로운 글로 만들어주는 기계가 등장하는가 하면 딸이 쓴 글로 인해 미래의 시간대로 옮겨간 엄마가 등장한다.

이렇듯 윤이형의 소설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익숙한 가상의 소재들을 가져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거부감과 지루함이 상쇄된 그 자리에 식상함이 들어서는 이유는 뭘까. 어느 SF영화 혹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본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도플갱어와 좀비, 핵전쟁은 이제 너무 흔한 이야기 소재가 되었고 미래로의 이동이나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특별한 기계도 낯설지 않다. 이런 낯설지 않은 가상의 소재가 식상함을 느끼게 하는 원인인 듯싶다.

예전에 한 노작가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한참 후배인 작가들이 글쓰는 것뿐 아니라 여행이나 다른 활동들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시대적인 아픔이나 상황을 겪지 못해서 인위적으로라도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글을 쓰기에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라는 뜻으로 난 받아들였다. 그때는 그냥 듣고 잊어버렸었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다보니 이 말이 새삼 떠올랐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 말이 너무 많은 세상, 볼거리가 넘쳐흐르는 세상, 누구나 마음껏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남들에게 읽힐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만족할만한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울까 지금같은 세상에...   

이 단편집 때문에 작가의 첫 소설집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과연 작가의 첫 소설집은 어떤 느낌일까. 7~9편정도의 단편들을 모아놓았어도 하나의 향기가 나는 것이 단편집인데 작가의 첫 단편집은 어떤 향기가 날까. 이 단편집과는 또다른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과 비슷한 향기가 날까. 자신만의 향기를 갖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 다시 한 번 절실히 하게 된다.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소설집이었다. 데뷔하고 나서 5년 동안 두 권의 소설집을 냈으니 고민이 적지 않으리라. 글쓰기에 대한 걱정은 물론 이것으로 업을 삼은 사람으로서의 고민까지... 그런 끊임없는 고민들이 작가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 거라 믿는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세상은 작가란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글쓰기’와 ‘작가’라는 화두로 자기성찰을 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