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거대한 묘소임에 틀림없지만, 그걸 만들게 된 원래의 의도에 무덤이나 죽음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즉 그 두 개념과 상관없이 피라미드는 탄생했고, 그 둘과 피라미드를 연결짓게 된 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다고...
...폐하, 피라미드는 위기의 시대에 구상된 것입니다...
...위기였고 말고요...파라오의 힘이 약화되어 있던 시기였습니다...원인은 풍요에 있었습죠...
...풍요 말입니다...즉 안락한 생활 말이지요...
...안락한 생활 탓에 사람들은 독립심과 훨씬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어 권위 일반에, 특히 파라오의 권위에 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거였지요...날이 갈수록 이 새로운 위기야말로 앞서 경험한 어떤 위기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지요...
...기이하게도...이집트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을 찾자 했다는 것니다...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대규모 수로 공사가 진행중인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비해 거기서 도출되는 경제적 이득은 미미했습니다...이집트 역시 백성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즉, 상상을 초월하는 과업을 시도하자는 얘기였습니다. 일의 규모가 틀수록 백성들의 체력이 소모되고 정신이 피폐해질 터였지요. 요컨대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지히 무용한 무엇이어야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백성들에게 무용한 만큼 국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업이었습죠...
...결국 파라오와 대신들은 차츰 거대한 묘비를 생각해내기에 이르렀지요, 왕의 무덤말입니다...
...피라미드야말로 필요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지요. 그 근저에는 더없이 고귀한 이상이 자리했습니다. 즉 파라오와 죽음. 더 정확하게는 파라오의 신성이라는...그것이 유한성과 무한성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라오마다 자신의 피라미드를 갖게 되고, 한 세대가 피로와 마비 상태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다른 파라오가 등장해 그의 피라미드로 또다시 사람들의 허리를 휘게 할 터였습니다. 그런식으로 가차없이, 세상의 끝날까지...
...그러니까 지존이시여...피라미드는 저세상을 지향하기에 앞서 현세에서 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것 영혼에 앞서 육신을 위해 구상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