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억은 상상 속에서 튀어나와 연민도, 증오도, 어떠한 희망도 일으키지 않고 흘러가버렸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었던 일, 그리고 지금 시작된 일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마지막 힘을 모아 흙으로 쌓은 둑 뒤에서 몸을 일으켰고, 달려들어오는 자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명중했다. 적은 쓰러졌다. 그런 뒤 하지 무라트는 구덩이에서 완전히 기어나와 무겁게 다리를 절며 단검을 뽑아들고 적에게 다가들었다. 총성이 몇 발 울렸고, 그는 비틀거리다 고꾸라졌다. 민병들이 환성을 지르며 쓰러진 몸뚱이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그의 몸이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파파하를 쓰지 않은 빡빡 깎은 피투성이 머리를 일으켰고, 그다음 나무를 움켜잡고 몸을 완전히 일이켜세웠다. 너무나 무서운 그 모습에 달려들던 사람들은 발을 멈췄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몸을 떨며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몸을 곧추세우고는 마치 베어낸 엉겅퀴처럼 앞으로 고꾸라졌고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잘 쟁기질된 밭 한복판에서 짓뭉개진 엉겅퀴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죽음을 떠올렸다...

...아무도 나를 때리지 않고, 아무도 나를 굶기지 않으며, 아무도 나에게 침을 뱉지 않는다. 내가 당하는 고통이 이토록 사소한데, 어떻게 내가 박해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고통은 사소하기 때문에 훨씬 더 수치스럽다. 나는 처음 감방에 들어와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질 때 웃었다. 일상적인 삶의 고독에서 감방의 고독으로 옮겨가는 건 큰 고통이 아닌 듯했다. 생각과 기억을 갖고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자유라는 게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자유가 남았는가? 먹거나 배고플 자유, 침묵을 지키거나 혼자 지껄일 자유, 혹은 문을 두드리거나 비명을 지를 자유이리라. 그들이 나를 여기에 감금했을 때 내가 불의, 경미한 불의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피와 뼈와 고기가 뭉쳐진 불행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에민은 평생 딱 한 번 도둑질을 할 참이었다....

...한 번은 결혼할 때, 한 번은 아내가 죽었을 때, 한 번은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집 안을 그 자신이 전혀 모르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유한 분위기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것들 속에는 빵처럼 필요한 것과 축음기처럼 불필요한 것들이 때로 위치와 상태가 바뀌면서 불필요하거나 필요한 것이 되었다. 에민은 그 변하는 선호도에 놀라곤 했다...

...그때마다 훔치고 싶은 욕구는 어렴풋했다...

...한 번은 아이가 태어난 지 7년 만에 죽었을 때 어렴풋하게 느꼈는데 그때는 아주 강하고 분열감을 띤 형태의 욕구였다...

...어느 여름날, 에민은 돈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며칠 후에 잡혔다. 돈은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법의학과로 보내졌다. 정신 균형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카페의 한구석에 초라하고, 머리가 뒤엉켜 있고, 착해 보이는 얼굴을 한 저 사람이 세상을 사고 싶어 했던 그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