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물리학 일반 그리고 특히 아인슈타인은 추상적이고 난해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는 무관한 대표적인 예로 여겨졌다. 상대성이론, 특히 일반상대성이론은...이해할 수 없고 자나치게 수학적이며 세계의 힘과 물질과 동떨어진 것, 이런 것이 모두...너무나 자주 되풀이해서 언급했던 특징이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얽혀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도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별종이며 약간 미쳐 있으며 구름 위 세계에 사는 사색가로 여겨졌다. 그는 정치적으로 현실과는 맞닿아 있지 않고, 그의 시간과 공간의 이론은 보통의 땅에 매여 있는 물질과 힘 같은 '진짜 물리학'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고 간주되었다.

...위대한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철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실질적으로 같은 정도로 올림퍼스 산상처럼 초연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과학 지식의 많은 부분이 단순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약속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과학 지식은 언제나 인간이 우리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할 필요성에 냉혹하게 매어 있다고 푸앵카레는 믿었다.

...이 책을 쓸 때 내가 가졌던 더 큰 야심은, 이 책이 시간과 공간에 대란 가장 엄청난 주장들이 물질 속에서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즉. 추상과 물질성은 각각 함께 맞물린다는 메시지에 가락을 맞출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모든 답은 정확히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기본적인 절차에서 시작된다...이 경계선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그것이 쉽게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계선은 다시 그어질 수 있다.

...경계선에는 그것을 긋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다...그 중 사람들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공통된 경계선은 유기체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경계선'이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나 아님'의 경계일 것이다. 피부경계선의 안쪽에 있는 것은 모두 '나'이며, 그 밖에 있는 것은 모두 '내가 아니다'

...우리는 일단 피부를 '나/나 아님'의 경계로 인식한 후에, 그 '나'라는 유기체의 '내부'에 좀더 의미 있는 또 다른 경계선을 긋기 시작한다...당신은 자신이 '몸'이라고 느끼는가, 아니면 몸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가? 대부분의 사람은...자신이 몸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몸은 '나'라기 보다는 '나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의 것'은 정의상 '나/나 아님'의 경계선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나'라는 유기체 속에서도 특정 부분을 좀더 친밀하게 느끼며 강하게 그것과 동일시한다. '진정한 나'로 느껴지는 그 부분을 흔히 마음(mind), 정신(psyche), 에고(ego), 성격(personality)등의 이름으로 부른다...요컨데, 이제 그의 정체성은 전유기체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에고라고 하는, 유기체의 일부분으로 한정된다. 다시 말해 정신적인 자아상(self-image)과 그와 관련된 지적, 정서적 작용에다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이렇게 우리는 에고 또는 자아상을 나의 정체성으로 확립시키는 또 하나의 경계선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그는 곧 마음의 일부분을 '내가 아닌 것'이라고 부정하게 된다. 그는 자기 정신의 내용들 중 어떤 것을 소외, 억압, 분리, 투사하기 시작한다. 즉 '나/나 아님'의 경계를 에고의 경향성 중 일부분에만 국한시킴으로서 동일시 영역을 더욱 좁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더 협소해진 자아상을 우리는 '페르소나'(가면이란 뜻이며, 외부로 드러난 인격을 말한다.)라고 부른다. 이처럼 정신영역 중에서도 일부(페르소나)하고만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 자연히 그는 '내가 아닌' 그 나머지 영역은 실제로 이질적이고 이상하고 두려운 대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이것이 또 하나의 보편적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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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의 사라진 스푼 그림 안에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 라고 적혀있다. 주기율표... 분명히 내가 학생이었을 때 본 기억이 있다. 본 기억만 있다.

...학생들에게 주기율표를 소개할 때에는 칸들에 어지럽게 들어 있는 문자와 숫자를 모두 없앤 텅 빈 표를 먼저 보여주는 게 좋다. ..자, 이것은 무엇처럼 보이는가? 일종의 성처럼 보이지 않는가?...'벽돌'로 쌓아올린 이 성의 첫 번째 특징은 각 벽돌의 위치를 서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각각의 벽돌은 하나의 원소, 즉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에 해당한다. 만약 벽돌 중 하나라도 제자리에 정확하게 들어가 있지 않으면 성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한 원소가 다른 원소에 들어갈 수 있다거나 두 원소의 자리를 서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날이면, 주기율표의 전체 구조는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뭐 나름대로 규칙,원리를 가지고 표를 만들었겠지...라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위치를 바꿀 수 없다 는 둥, 주기율표에 대해 이해 언저리의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할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할까, 인상적이지 않았다고 할까. 가끔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있으면서, 그 오랜시간동안 난 뭘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