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박석무 씨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그 책을 통해 느꼈던 다산 정약용은 잔소리 많은 할아버지 같다는 인상이었다.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는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으나, 누구라도 다 아는 삶을 살아가는 내용이고, 몰라서 그리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천을 못 할 뿐인데라고 생각하며 별 내용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였다. 내게는 그다지 현대 사회에서 유용하게 쓰일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언듯 봤던 목민심서라는 책도 실상 누구나 다 아는 잔소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간만에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다시 읽으면서 초반부에 느낀 것은, 역시나 예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니 무엇인가 건질 것이 있지 않나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1/3쯤 읽어내려가니 무엇인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다산은 진짜 지식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아는 위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의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특히나 논문을 쓴다거나 무슨 발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거나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하여 대입논술에 대비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산선생이 직접 이 책에서처럼 여러 지식경영의 전략을 세우고 이를 전파하지는 않았으나, 그러한 다산의 업적에 깔려있는 지식경영의 노하우를 저자는 체계화하고 설명을 붙여 하나의 멋진 "다산정보수집처리학" 이라는 이름 (내가 개인적으로 붙인 이름이다^^)의 학문을 완성한 것 같다.

사실은 사물을 비교하고, 빗대어서 이해하고,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식의 지식경영의 방식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이를 저자는 다산선생의 업적에서 추려서 정리, 체계화 하였다. 그 동안의 다산에 대한 저작이 그의 업적을 고찰하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업적을 "어떻게 (HOW)"이루었는지를 고찰한다.

당시에도 다산선생은 메모를 하고 책에다 포스트잇을 붙여 (?) 부연을 하는 등, 붓과 먹물로 어찌 그러한 일을 했는지 존경스럽다, 요즘 같이 볼펜이 있는 시대도 아닌데. (특히나 메모습관은 내 아킬레스건이다).

예전에 나에게 실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제대로된 개념이 없었다. 허나 이 책을 읽고나니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이 무엇인지도 또한 알게 된 듯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정보를 어떻게 (how)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저자의 업적은 정말 놀랍다.다산 선생이 이 책을 본다면 "내 사고의 방식을 잘 정리하였네, 자네."라며 저자를 분명 칭찬했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특히나 더욱 중요한 필독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첨언: 독서를 하다보니 두세번 읽어서 곱씹어야하는 책이 있고, 한 번 정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책이 있는 듯 하다. 관건은 이러한 책들을 완급을 조절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이 책은 후자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볼려고 했다. 허나 계속 읽다보니 이 책은 두세번 탐독을 하여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독서 진도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되었다. 서재에 쌓이는 주문만 해 놓고 읽지 않은 새 책들은 다 이 책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도 신경질 안 난다. ^^

저자의 작품 중 제일 먼저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었다.  다른 많은 동 저자의 작품 중 왜 하필 이 책인가? 그것은 이 책이 놀라운 할인률이 적용되서다. ^^  ’럭키경성’과 ’황금광시대’에도 30-40% 할인률이 하루 빨리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

사실 앞 쪽에 나오는 살인사건 4가지 케이스는 흥미 본위가 아닌가싶다. 그 부분을 앞쪽으로 쓴 것이 저자의 의도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 생각엔 후자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중간과 뒤에 있는 내용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위자료를 주고 이혼한 한국 최초의 여성, 빗쟁이들에 시달린 방탕한 희대의 왕의 장인어른, 스웨덴과 인도에서는 반겨주는 곳이 있지만 아무도 반겨 주는 곳이 없는 조국을 택하고 바로 죽게 된 여성. 몇몇 독자들에게는 앞 쪽의 살인사건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을 것 같기도한데, 나에게는 후반부의 이런 내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했다.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작가가 생각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어찌보면 예전에 보았던 이솝우화에서 이야기가 끝날때마다 교훈적인 내용이 한 두 마디씩 들어있는 것과 같은 진부하고 유치한 구성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책의 시대배경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데, 그런 ’진부한’ 구성이 오히려 신선하기까지하다. 저자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래된 ’교훈을 주는’ 서적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남들은 미처 생각치 못 했을 부분인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겨우 3개월 옥살이를 한 점이나,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명해진 사건에 대해서는 그래도 과학적으로 수사를 하려고 노력한 점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 군사독재 체제에서 빨갱이는 무조건 사형과 무기징역으로 다스리던 시절과 대비되는 느낌이다.

얼마전 읽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에 언급이 된 내용이라서 그 부분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의 독재 치하에서의 탄압, 그리고 좌우대립 구조에서 일어난 학살이나 사건이, 일제가 한국인들에 했던 탄압 보다 더 강도가 쌔다는 것.

또 다른 느낀점: 일제치하에서의 친일파들의 방탕하고 생각없는 생활이나 해방 후 그러한 친일파들이 그대로 주요 정부 기관에서 그대로 일하게 되는 불행한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슬하다.

일제로 부터의 하사금(?)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 쥐었는데도 수 년내에 이를 탕진하여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돈 더 내 놓으라고 땡깡부리는 친일파들이 그대로 해방 후에도 자유당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에필로그에서는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냄새’가 나는 인문학. 저자의 그런 생각이 앞으로도 이런 좋은 책을 계속 집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그 즐거움을 계속 맛보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