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총 125권을 세트로 구매하라는 지름신이 왔지만 꾹 참고, 일단 미술가들에 관한 책만 사 보기 시작했다.

그 첫 책으로 고흐를 골랐다. 이유는 그에 관한 책이 가장 많이 나온 미술가이기 때문이다. 종류가 참 많다. 무엇이 할 말이 많게 만들었는가가 궁긍하다.

장민 교수가 쓴 '미쳐야 미친다'는 책이 있다. 어딘가에 미치도록 몰두해야지만 어느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 (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주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문자 그대로 미쳤다.

종교인으로 살려고 했던 초기 시절에서부터 그림쟁이가 되기로 결심한 뒤, 귀도 자르고 자살할 때까지의 그의 그림과 사상,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 잘 배웠다.

인간적으로는 주변인들을 전부 적으로 만드는 놀라운 성격의 '미친놈'이다. 고갱도 돌아섰고, 단 한 사람, 동생 '테오'만 그를 이해한다. 형제간의 사랑이 깊어서인지 고흐가 죽은 다음해 테오도 죽는다. 어쨌거나 위대한 사람이라고해서 반드시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란 것이 어찌보면 현실일까? 아니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정이나 교우관계에서는 허당일 확률이 높은 것이 진리일까?

단순히 그의 그림만 보자면, 놀랍다. 원색적으로 그리면서도 그 특징이 잘 나타나고 그만의 독특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흥미롭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은 미술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그림이 독특한 것은 그나마 잘 알겠으니 다행이다.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의 대표작인 '해바라기'는 단순미가 잘 드러난다고 한다. 잘 모르겠다. 나의 내공이 좀 더 향상이 되야할 듯 하다.

이런 종류의 미술책은 처음 접해본다. 부끄럽다. 그래서 그런지 고흐가 살았던 당시의 다른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관심도 이제 갖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인상파와 차별을 두게 되는 이유가 고흐가 그 성격 때문에 고립되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고, 약간 정신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상파 그림도 그렇지만 고흐의 그림에도 잠시 등장하는 일본풍... 왜 우리나라 민속 풍속화는 천시받고 사라진 반면, 일본의 그림은 서양의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진리를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가? 타고난 해학꾼 단원과 혜원의 그림도 충분히 다른나라 화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말이다.

몇 달전, 마네의 그림이 사상 최고가로 경매에서 낙찰 되었다는 해외토픽을 접했다. 그리 많은 돈을 주고 어떤 이의 그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을까? 아니면 단순히 투자를 한 것일까?

고흐의 해바라기도 당시 사상 최고가로 팔렸다고 한다. 본인의 그림이 생존 당시 보다는 사후에 더 평가를 받는 셈으로, 이는 피카소와 다른 부분이다.

나의 그 동안 삶에서의 행동과 생각이 적어도 자식에게는 영향을 미쳐 올바른 삶을 살게 해야 할텐데말이다. 현재 아버지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더라도 나중에는 아버지를 존경하게 될까? 그래야 할텐데 말이다.

나의 고향, 서울.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 부푼 기대를 안고 책을 주문했다.

가끔은 어떠한 성향의, 어떠한 구성의 책인지도 모르고 주문해서 보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다 읽고나니, 나이 30밖에 되지 않은 한 기자의 눈으로 본 서울을 몇몇 장소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라는 것을 알았다. 허나 그는 유명 작가 못지 않은 깊은 이야기를 펼쳐낸다. 권기봉 작가, 다른 책도 집필중이라니 좋은 소식이다.

일단 내가 다닌 서울대신고동학교 바로 옆에 있는 ’독립문’이 전혀 독립정신이 키워질 수 없는 문이라는 것, 삼성에 입사할 때 신체검사 받던 강북삼성병원 현관에 그런 역사적 의미가 있었는지 몰랐다는 것. 가끔 명동돈까스 먹으로가는 명동에 있는 신한은행이 원래 어느 자리였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 말로만 듣던 와우아파트가 내가 근무하는 곳 바로 근처라는 것. 서대문형무소가 어째서 반쪽짜리 역사교육 체험 현장인지에 관한 것. 등등이 이 책을 읽고난 후에 알게된 사실이다.

독립문에서의 독립은 500년 조선 왕조가 ’섬기던’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일 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다. 독립문 보수공사를 조선총독부에서 했다니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강북삼성병원 현관이 백범김구선생이 집무하고 살해 당한 곳이다. 다시말해 서울로 옮겨온 임시정부이다. 명동 신한은행은 역시 한국근현대사에서 항상 언급되는 호텔이었고, 동작구 국립현충원에는 친일파였다가 이승만, 박정희에게 딸랭이를 흔들어댄 인사와 독립운동가가 섞여서 안장 된 곳이다.

곳곳에 숨은 역사의 이야기를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사라진 뒤에 조사를 통해서 저자는 밝혀낸다. 시청 근처 프라자 호텔 뒷마당에 무엇이 바싹 붙어있는지 보라. 어느 버스 회사 주차장 입구에 문으로 무엇이 쓰였는지 보라. 그리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품위있지 않게 땅딸막하게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보라.

예전 이덕일 저자의 ’송시열과 그의 나라’ 그리고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을 읽은 뒤의 느낌이라고 할까, 뭐라 말할 수 없는 잘못된 역사의 흐름 앞에 속이 답답하다.

상쾌한 서울 여행이나 해 볼까 했는데 전혀 상쾌하지가 않다. 저자가 후기에서 서울의 ’점’에 관한 여정은 여기서 끝내고, 지금은 ’선’과 ’면’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라고한다. 그리고 그 책은 일제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를 조명하겠다고 하는데, 상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후속작들은 기대된다.

난 물리학과를 다녔다. 석사는 영어교육학이다. 물리학을 포기한 이유는 ’내 머리는 적분문제 풀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것’을 3학년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물리학을 전공하고자 결정했을 때의 설레임이 다시 생겼다. 당시는 물리학이 ’적분학’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이고, 이 책 역시 수학이 없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다룬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에는 양자역학론적 세계관을 싫어한 그의 심정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신의 이론과 양자역학이 끈이론으로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으니, 그도 저승에서 자신이 한 말이 잘못 되었다고 인정 할 듯하다.

동기생 중 나중에 석박사를 마치고 모교에 강의교수로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쓴 논문 제목을 보면 맨날 symmetry / asymmetry 라는 단어들이 있었다. 당시 영어 공부 한답시고 비디오방가서 하루 종일 살던 나로써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물리학에서의 그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 책 덕분에. (물리학과 나온 것을 어디서 얘기하면 안 될것 같다. ^^) 이제 그 친구에게 끈이론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볼만한 내공이 생긴걸까?

학교 다닐 때, 적분 문제 하나 가지고 하루 종일 씨름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자꾸 물어보니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그 눈길이 아직 기억에 남아서 질문 못 할 것 같다. 본인은 기억 못한다고 하지만 내 맘 속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나쁜 놈! 이번 연말엔 물리학과 동기들 얼굴 한번 봐야하는데.

내 동기들은 삶이 고달프다. 이 땅에서 이공계 출신, 그 중에서도 순수과학을 전공한 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 그러한 것일까? 나야 중간에 선회하여 적성을 찾아갔지만, 불쌍한 동기들, 이 학문을 끝까지 고집한 친구들은 만나기만하면 성토다. 물리학은 선진국에서는 각광 받는 신비롭고 재미있는 학문이지만,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 부설로 무슨 연구소가 있어, 학자들이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지만 (<-물리학과 출신의 입장으로 이 책에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물리학은 일단 뒷전으로 처진다. 정치가들의 말로만하는 기초과학 육성. 100년이 아니더라도 10년 앞 만이라도 내다 봤으면한다.

잠시 리뷰가 옆길로 샌다. 새는 김에 한 마디 더 하겠다.

이 책을 읽는 관심있어하는 청소년들이 물리학을 전공할 것이고 천문학을 전공할 것이다. 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적당한 때에 유학가고 거기서 자리 잡아라. 한국의 분위기가 성숙하거든 그 때 돌아와라. 그전에 돌아오면 괴롭다. 강의교수로 있는 그 친구 연봉이 영어 사교육에 종사하는 내 연봉의 1/3이다. 현실을 직시하라.

빗나간 주제의 리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기 힘들다. 흥분해서 죄송하다. 나중에 정리되거든 수정, 보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