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 삼성에 처음 입사 했을 때가 생각난다. 한 달에 걸쳐서 신입사원 연수를 했는데, 나에게는 추억이다. 나의 와이프를 거기서 만났으니 말이다. 2박 3일의 공주 여행, 그리고 진주에서의 하루 동안 외판원이 되어 물건을 팔아본 경험.

당시 연수 기간 중 '삼성헌법'이라하여 '도덕심'을 강조한 교육이 지속 되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쓴 사원교육용 책에는 각종 청사진들이 제시되어있고, 한 번 삼성 가족이 되면 자질구레한 일에 대해 신경 안 쓰고 일 할 수 있게끔 이런 비젼을 제시하기까지 골몰했을 그의 노력과 배려에 감탄을 했었다. 이러다 이거 우리 회장님도 대선 출마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성식구, 나아가서 조국을 생각하는 그 분의 고뇌가 읽혔다.

문제는 그 교육 내내 강조한 '삼성헌법'에 나온 '도덕심'이었는데, 이에 대해 조별 토론 시간에 내가 한 발언이 기억난다. '노태우에게 수백억의 뇌물을 먹인 것이 엊그제 밝혀진 마당에 약간은 어불성설입니다.'라고 말해 버렸다.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다른 동기들도 완전한 동의는 못하지만 '유구무언' 식의 동조는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매우 기묘했다. 나의 말에 다들 '허허허'하며 웃을 뿐 별다른 발언을 하지 못하는 기묘한 분위기. 나는 바로 뒤에 이런 부연 설명을 안 할 수 없었다. '대기업을 이끄는 입장에서 상황이 어쩔 수 없었을 것이기에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라고.

이는 내 진심이었다. 최고 통치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으면, 수 많은 삼성식구들의 밥줄에 이상이 생겼을테니 말이다. 이것이 진정 나의 생각이었었다.

허나,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경영자가 숭고한 도덕심을 고수하고도 어느 독재치하에서건 기업을 성장시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가 있으니, 그가 유일한이다. 당시 이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이런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또 다시 감동을 안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건희는 나쁜놈이고 유일한은 좋은 분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건희는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킨 위대한 기업가이고, 유일한은 위인전에 나와야 하는 모두가 존경 할 수 밖에 없는 위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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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탈루을 한 적이 없어서 세무조사를 하는 공무원들이 감명받아 박정희로부터 표창을 받은 깨끗한 기업인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실 그는 기업가 이기 이전에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로써의 그의 인생에 대한 고찰은 나중 기회로 미루겠다.

예전에 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학생일때, 나의 선생님께서 너희들도 곧 40된다고 하셨는데, 내가 지금 40대다. 그러니 너희들도 곧 늙는다 이놈들아." 그렇다. 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갑자기 기억이 난다. 내가 40이 되니깐.

나이 40은 나의 스승님과 그 분의 스승님이 경고한 숫자이다. 한세대가 다음세대에게 또 그 다음세대에게 경고를 한다, 너희들도 늙는다고. 어쩌면 선생님의 역할은 그 전 세대와 그 밑의 세대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시조시인으로도 활약을 하시고, 각종 어린이 만화 주제곡을 만드셨던 오동춘 선생님, 검색을 해보니 몇년전 고희를 넘기셨다. 한번 뵈면 좋겠다. ’나는 왜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없었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 분이 생각이 났다. 비록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던적은 없지만 존경할 만한 분이라면 당연 그 분이시다.

왜 바로 그 분을 떠올리지 못 하였는가? 내가 당시 너무 어려서이다. 참스승이 어떤 분인지 알아 볼 줄 하는 안목이 없어서이다.

당신은 한자를 잘 알면서도 한글전용을 주창하셨다. 어느 한 쪽만을 고수하며 살아온 사람은 다른 쪽의 것을 폄하하기 십상이다. 익숙하지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허나 그 분은 직접 몸소 보여주셨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잘 알고 나서야 그것을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을.

후기: 그 분의 홈피 방명록에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남기니, 보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남기셨다. 내가 먼저 찾아가 뵈었어야했는데 말이다. 송구스럽다.

저자의 저작 ’종횡무진 서양사’는 읽다 말았다.

이 책은 인문학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이들이 지하철이나 공원, 커피숖에서 들고다니며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으면서 그 세계의 용어들에 친숙해지게 해준다.

겉표지가 인상적인데, 학원 앞 복사집 아저씨가  "이 색지는 좀 단가가 비싸. 나중에 제본 할 것 있으면 말해. 이 색지로 해줄께."라며 꺼내 줬던 그 색지이다. 놀랍다. 복사집 조그만 영세 인쇄소에서 고급 색지라고 하는 그 색지가 이 책의 표지이다! 그런대도 14쇄를 찍어낼 정도로 잘 팔리다니 이 또한 놀랍다! 아마도 내용이 좋아서이기 때문이리라.  

궁금한 것은 저자의 직업이 무엇이냐이다. 약력을 보니 인문학 서적을 집필하면서 번역을 한다고 하는데, 밥벌이는 되시나 모르겠다.

이 책의 내용은 마치 상식이 풍부한 대학 선배가 후배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듯 자신이 알고 있는 사상 혹은 개념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은 느낌이 난다. 이런 분이 사회에서 인정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하는가? 정작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는 사회이다. 만약 이런 분이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서 대입논술학원에서 강사로 뛴다면 기막힌 템플릿을 만들어 학생들 논술 점수 향상이 될 수 있기에 분명 더 돈을 벌것이다. 허나 그러기에는 사회적으로 아깝다. 하지만, 집필과 번역일만 하기에는?

아마 알바식으로라도 논술 강의를 하시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