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느날이었다. 일거리도 가져가지 않은 채,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리고 이 책이 있었다. 이제는 책을 읽으러 그곳에 간다. 딱히 갈 일이 없어도, 있는 책 읽으러 간다.

나이 좀 먹은 사람이라면 그냥 답답해서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때가 많을 것이다. 저자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런 마음을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이다. 책 뒤편의 후기를 보니 67일간의 여행을 마치고나서 일거리는 많이 줄었지만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수입을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 정도로 일하겠다고 말한다. 초탈의 경지이다. 난 못 그러겠다. 그러니 저자의 삶에 대한, 밥벌이에 대한 태도가 신선하면서 한편으론 글쟁이 비스무리한 프리랜서라면 한번은 자신을 성찰할 이런 기회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신혼의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나도 나의 와이프와 남해안을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각자의 회사에서 휴가기간을 잘 맞추어 전국일주 비슷하게 한 적이 있다. 물론 자가용을 이용했다. 남해의 어느 허름한 여관에서 잤는데, 난 피곤해서 바로 누웠고, 와이프는 MBC베스트극장 '세 발 자전거'를 보고 잤다. 다음날 차를 운전하는 나에게 와이프는 '세 발 자전거' 줄거리를 이야기 하였고, 난 재미있어하며 귀 기울여 들었다. DJ Doc의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이라는 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벌써 11년 전 일이고, 최근 그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려고 그 주변을 다시 방문하는데, 그 때의 감흥이 안 살아났다. 도로가 새로 깔려서 옛 꾸불꾸불 바로 옆에 논과 밭이 있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직선거리 신작로를 운전했기 때문인가? 아님 우리가 감성이 많이 메말라져서 그런 것인가?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젊었을 때 여행은 돈 주고서도 살 수 없다, 세월이 지나면. 그리고 그것이 평생의 반려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이 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사람들은 그것이 추억이 될 것이라 당시에는 생각치 못 한다는데에 있다.

이 책의 저자는 66년 생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제 배우자와 그런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그런 추억이 만들어진 듯 하다. 약간은 인문학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 나보다 감성이 풍부해서인가?

나도 나의 배우자 그리고 나의 딸내미와 언제 한번 그런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둘이아닌 셋이 만들어가는 추억. 유럽 여행은 어떨까 하는데, 문제는 시간이다. 음...일단 사표부터 내야하나?

난 못하겠다.

’다산 정약용과 그 형제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은 이후 간만에 읽은 이덕일 작가의 역사서이다. 중간에 다른 작가의 역사서들을 읽어본 결과 역시 명불허전, 이덕일씨만한 역사 이야기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의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있으며, 이와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관점을 제3자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이야기꾼으로써의 재능 또한 있다. 그러니 그의 책은 유아독존이다.

삼국시대만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당시 당나라 건국 전후에 관한 이야기와 왜나라 사정 또한 자세히 전개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오국사기’인가 하다. 내가 원했던 책이다. 아직 1권만을 읽은 상태라서 뭐라 결론 짓기 힘들지만 일단 1권은 흥미를 유지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게끔 만든다.

몇 달전 정비석의 소설손자병법을 감명 깊게 읽었다. 왕과 신하, 동맹과 배반, 여러 전략에 관한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인간관계나 지도력에 관한 통찰을 제공했다. 허나 이 책을 읽으니 굳이 중국의 손자병법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역사 이야기도 역사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무언가를 제공한다.

영양왕이 수나라를 상대로 싸운 여수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것이 단초가 되어 수나라는 망하는 길을 가게된다. 험준한 산세와 날씨를 이용하여 대군 수나라 군사를 물리친 고구려 군사를 보면서 미국을 상대로 싸운 베트남와 오버랩된다.

암튼 자세한 리뷰는 2권을 읽고 작성해 보겠다.

일거리가 없는 틈을 타서 스타벅스의 ’지식인의 서재’를 또 들렸다. 여행가고 싶게 만드는 날씨 좋은 4월 아침, 비어있는 시간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책 읽으러 왔다. 잠시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맡은 매체는 많다. 그 중 책이 제일이 아닌가하다. 그래서 책에 관한 책을 가끔 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도원의 독서란? 독서는 밥과 똑 같아요. 어제 먹은 좋은 밥 한 그릇이 평생을 보장 못합니다. 다시 또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p.32)

화가 김점선의 영감이란? 영감은 기다리는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가운데 오는 것. (p. 66)

이어령 교수의 좋은 책이란? 나는 내가 지닌 독창성과 상상력의 원천은 어려운 책들을 읽으면서 모르는 부분을 끊임없이 메우려는 것에서 생겨났다고 봅니다. 또, 억지로 세운 독서 게획 보다는  즐거움 속에서 가리지 않고 책을 읽도록 해야 합니다. 책은 악서와 양서가 없어요. 읽는 사람이 양인이 있고  악인이 있을 뿐이지. (p. 84)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보면 독서광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잡식성 독서광. 인간은 환경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우울한 존재라고 한다. 자신의 자율의지는 생각보다 한참 미미하다고한다. 예전 EBS에서 인간이 얼마나 주변 상황에 자율의지 없이 굴복하는지에 관한 아주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방송한적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 책읽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책을 읽게되고 그런 아이가 커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다. 나의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지 아빠가 산 책들을 뒤적이다, 내가 쳐 놓은 밑줄과 메모를 발견하고 전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