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 맨 앞쪽에 무엇을 썼는지 아직 기억난다. '저는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윤회사상을 믿습니다.' 이 문장을 시작으로 나의 모든 세계관, 친구관계, 성격 등의 이야기를 풀어 나갔었다. 자기소개서에서 떨어지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상하신 부모님 밑에...' 이러면 절대로 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좀 튀게 쓰려고 노력했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이었는지 잘 입사하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2년 반 동안 근무 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 연수 기간 중에 내 배우자를 만났으니 그 자기소개서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껏 결혼도 못하고 있을 듯 하다.

예전에 SBS코메디 프로 '웃찾사'가 한참 잘 나가고 있을 때, 사연을 보내주어 당첨되면 방청권을 보내준다는 방송 자막을 보고 사연을 보낸적이 있다. 당연히 몇 주 뒤에 하는 웃찾사 공개방송 방청석에서 컬투의 '그때 그때 달라요~'하는 유행어를 바로 눈 앞에서 감동적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설령 재미없는 유행어라 할지라도 원조가 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 진짜진짜 재미있다. '군대가기 전에 꼭 추억을 만들고 깊어요, 친구 생일 기념으로 꼭 방청권을 선물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사연들 속에서 눈에 띄는 글을 쓸 자신이 있었고, 성공했었다.

말을 잘하면 행여 사기꾼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지만, 글을 잘 쓰면 세상이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많은 이들의 존경 혹은 부러움도 받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맞춤법, 띄어쓰기가 훌륭해서 잘 쓴다고 볼 수 있나? 절대 아니다. 그 내용이 공감이 가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딸내미에게 세상 살이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글쓰기를 가르쳐보려고 작정했었다. 그리고는 아이의 일기에서 '나는 오늘' 과 '오늘 나는' 부분을 지워주고 맞춤법 틀린 곳을 지적해 준적이 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글의 앞쪽에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도입부가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 어떻게 가르쳐 줘야하나' 그리고는 내가 그동안 써 왔던 글의 도입부을 생각해 봤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회사 지원 했던 경험, 사연을 보냈던 경험, 영화를 본 기억 등등이 없으면 도저히 그런 도입부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이 교육을 이내 포기 했다. '그렇군, 결국 많은 경험과 독서를 통한 사색이 맞춤법 교육보다 우선해야 되는군.' 그렇다, 콩이 없으면 아무리 맷돌을 갈아봤자 나오는 것이라고는 돌가루 뿐이다.

경험과 사색 만으로는 좋은 글쓰기가 나올 수 없다. 성대모사 하듯이 남이 쓴 좋은 글을 모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기본기 없이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 고흐가 르부르 박물관가서 램브란트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기본기를 키우지 않았다면, 귀를 짜른 천재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냥 귀 짤린 정신병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겸재 정선이 중국의 북방화법과 남방화법에 능통하지 않았다면 이를 접목시켜 진경산수화 시대를 열 수 있었을까? 통역대학원 준비하는 영어 실력 좋은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타임지 사설 암기하는 것이다. 충분히 기본기가 훈련되고 나서 나중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나오기 마련이다. 스티븐 킹도 어렸을 적, 영화 한편 보고나서 그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써서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인쇄한 뒤 친구들에게 팔아서 짭잘한 수익을 올렸었다. 선생님이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꾸중한 뒤에야 자신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경험과 사색, 그리고 좋은 글 모사. 그 다음은 무엇인가? 실전 연습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면서 가장 실천이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쓴 만큼 는다. 나도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꾸준히 써 보니,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남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기도 했고, 재미있게 쓰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자뻑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 조정기간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이 나온다. 지금 나도 그러한 과정에 있다.

1. 직접경험과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한 간접경험, 그리고 성찰. (성찰을 위해서는 영화보다는 책이 낫다)
2. 모사 (결국 실제로 모사하듯 좋은 글, 문장을 노트에 카피해보는 작업도 필요하고 좋은 글을 접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3. 직접 꾸준히 써보기

이 세가지가 순서적으로, 혹은 어느 정도 중첩이 되어 진행되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이 세가지가 되어야 영어 강사인 내가 수업 중에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웃찾사' 개그맨 흉내 내면서 그 프로그램 선전해 주니 방청권 보내달라고, 안 보내주면 개콘 선전한다고 하는 사연을 방송국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방학 에는 많게는 사 오백명이 내 웃찾사 선전을 듣는 다고 협박성의 설득력 있는 사연을 방송국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의사이면서, 프로그래머, 그리고 CEO를 역임했고, 이 세 분야를 각기 10년 혹은 1만 시간 몰입하여 했다. 각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교수님이 되었다 그는 열심히 산 인생, 4명째 분량을 살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는 배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데 인생이 짧음을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있으니, 저자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그래도 목 위의 근육은 움직일 수 있어서 행운아라는 그의 말은 일반인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그가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즐거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에 두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그는 육체가 자유롭지 못함을 단순히 좀 불편한 것으로 치부하여 어려움을 극복 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다.

그의 MIT시절 이야기는 내가 잠시 대학생이 되어 학문에 잠시 뜻을 두었던 3학년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 해양과학계와 서양의 선진 해양과학계의 괴리를 느끼고 그곳에서 적응하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유학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핸디캡을 극복한 이야기, 생의 고뇌을 극복한 이야기 등은 대충대충 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 무언가 목표가 설정되면 끈기 있게 이를 물고 늘어져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승리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나는 과연 이런 분들처럼 열심히 살아 왔는가? 육체적 어려움이건 정신적 어려움이건 이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길 정도로 한 가지 일에 매진해 본적이 있는가? 로또가 되면 뭘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무엇하겠는가? 나중에 바람필 궁리 밖에 더하겠는가? 엉뚱한 곳에서 인생의 자극을 찾게 되는 것 밖에 더 하겠는가? 지난 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 앞으로의 날을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지 생각해 보자. 어차피 한 번 살다가는 인생, 폼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보람있는 일, 즐거운 일에 몰입하여 한번 ’카타르시스’ 좀 느껴보자. 앞으로 살 날이 살아 온 날보다 많지 않은가!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

요즘, 인터넷 리뷰를 위한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책을 한 권 읽고, 리뷰를 하나 남기고 하는 일에 이제 약간의 회의가 든다. 자신이 느낀 바를 글로 그때 그때 남기는 버릇은 아주 좋은 것인데, 그것이 짐이되거나 수박 겉핥기 식의 글이라면 약이 아닌 독이 될수도 있다.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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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주석씨의 책에 대한 관심이 그 가지를 친 결과, 겸재 정선의 책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 책은 일단 사 놓기는 하였지만, 읽지 않고 있었는데 간송미술관에서 2주 동안 겸재정선과 진경화파에 대한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손에 들게 되었다.

겸재는 당대에 최고의 화가로 칭송되었고 중국에서까지 그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중국 북방과 남방의 화법을 접묘하여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화풍으로 정착시키고 이 그림안에 조선 성리학의 근원인 주역, 음양론을 집어 넣어 성리학자 다운 면모도 그림을 통해 드러낸다. 금강산을 그린 것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36세 때의 첫 화보집은 그의 명성의 시작이었고 (안타깝게도 전해 지지 않는다) 또 다른 36년이 흐른 72세 때 다시 한번 금강산의 곳곳을 다니며 36년전 그림을 그대로 다시 그리게 된다. 화제를 그의 벗인 이병연이 다시 달아주고 스승은 이미 타계하고 없어서 그 스승의 제자의 글씨로 역시 다시 단다. 이 본격적인 두 번째 금강산 화보집을 위한 빠른 휘지로 그려내려간 단순 스케치 본도 또한 개인 소장가에 의해 발견되어, 이러한  여러가지의 버전으로 그의 금강산 그림을 조명하는 책이다.

겸재의 그림에는 조그만한 사람이 꽤 있다. 그 산수의 규모를 나타내기 위함인지 그저 사람이 있으니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조그만한 사람들이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을 먼저 알게 되었기에 그런것이 아닌가 하다. 여러 그림에 대한 작가의 해설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고 있는 착각이 드니 작가의 겸재에 대한 이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요즘 젊은이들도 이런 일을 (한국 고미술화 연구) 하는 이가 많기를 바란다.

금강산 관광중에 북한군에 의해 한 남한 여행객이 저격을 당한 이후로 금강산 길이 막혀 있는데, 나 죽기전 한번 가보고 싶다. 간송미술관이 2주 밖에 개관 안 하는데, 빨리 가보고 싶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가을에 진경시대에 관한 전시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허준 박물관 옆에 새로 생겼다는 겸재정선 박물관도 가 봐야지. 이래저래 바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