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조용헌은 조선일보에 컬럼을 쓰고 있는 등, 많은 독자층을 형성한 작가이다. 그의 문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역학 이야기가 가득하고 그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유불선을 넘나드는 통섭이 있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간송 전형필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시선을 끌어 사보게 되었다. 그 부분을 먼저 읽고, 이내 첫 장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우리나라의 현재 대부분 기득권 층은 일반 서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운이 좋아 혹은 권력 정보력이 있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 책을 읽으니 과거에는 많은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 명문가 집안이 꽤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집안의 공통점이 있다. 과거 동학혁명이나 일제치하, 육이오 등을 슬기롭게 견뎌 내었다는 점인데, 기득권이면서도 민심을 잃지 않고 항상 주변 이웃들을 염려하고 더불어 살아 가려는 노력이 있기에 그런 혼란의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던 것이다. 그것이 조상의 음덕이건 깔아 놓은 선행이건 간에 말이다.

이건희도 정권의 칼날에는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 예전 노태우에게 수백억 뇌물을 준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으나,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평전을 읽고 더 바람직한 지혜로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세상사람들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으나, 이 책을 읽으니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라 다른 현명한 부자가 되는 길이 있다는 교훈을 깨쳤다.

책의 곳곳에 나오는 과거 정권의 장관, 대학 총장 자리를 꿰챴던 명문가들의 후손 이야기 부분에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강했으나, 이내 이 책이 제시하는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방향타에는 심히 동감한다. 조상의 덕으로 말미암은 현재 후손의 명예와 재물은 그것이 잘 쓰여 지는 경우에라야만 그의 후손 또한 대대로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기울어져가는 명나라를 끝까지 아버지의 나라라 섬기고, 청국은 오랑캐의 무리들이라하여 인정하지 않던 조선은 결국 청나라의 진격에 조정이 남한산성까지 가서 항전하였으나 무릎을 꿇는다.

이 소설은 그 곳 '남한산성'에서 있던 일을 사료를 참고 삼아 살을 붙인 역작이다.

김훈의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사유는 알아 줘야 한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인물들 모두가 '김훈'과 같은 사유를 하는 것이 약간 우스웠으나, 이내 줄거리에 몰입된다. "각오하고 있는 일을 각오할 때는 각오를 해야 하지만, 그 각오 하던 일이 막상 닥치면 각오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는 식의 김훈식 사유. 중간에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며 읽으면 줄거리를 놓친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독자들을 배려하며 글을 쓰지는 않는 그의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이 멋지고 사물을 꿰뚫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진짜로 저자는 독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고 하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는 듯 하다. 허나 읽다 보면 '그래 이런 것도 재미있네'라고 하면서 독자들은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도 못 하였던, 자신의 의식으로 떠 오르지 않던 것,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원하던 것을 얻게 된다.

바로 단순 재미를 떠난 당시 인물들에 대한 독자의 감정 이입이다.

그 동안 김훈의 에세이집을 몇 권 읽었으나 그의 소설은 읽지 못 하던중, 오랜만에 바쁜 생활 중에 휴가를 얻어 그의 소설을 처음 보게되었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안정효 작가의 ’글쓰기 만보’라는 책이 생각났다. 둘 다 글쓰기에 관한 치밀하고도 애정어린 분석이 인상적이다. 스티븐 킹 역시 간결한 문장을 위해 부사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초반에 그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역시나 영화건 책이건 이야기가 있는 것을 좋아했고, 결국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만들어 내기"를 직업으로 가지게 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떡잎부터 알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분명 그 아이는 무언가 이룰 인물이 되는가 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건,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 되건,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관심을 갖고 이책 저책 살펴보니, 내가 책벌레라고 알고 있는 인물의 수가 점점 추가된다.

자신이 얘기 하고 싶은 것을 겪었던 이야기를 이용해 풀어가는데 아주 인상적이다. 특히나 ’연장통’이야기가 그러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에서도 자기가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팔심을 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설령 힘겨운 일이 생기더라도 김이 빠지지 않고, 냉큼 필요한 연장을 집어들고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p.131)

누가 무거운 연장통을 들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켜서 기껏 낑낑매고 가져다 줬더니, 그 통 안에 있는 조그만 도구 하나만 쓰고 말았다. 어차피 이럴꺼면 왜 무거운 연장통 들고 오라고 했나고 물으니 어떤 변수가 발생해서 다른 도구가 또 필요 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깔끔하고 오히려 편한 것이라고 답 했다.

평소 글쓰기 연습을 해 두는 것은 비단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터넷에 글을 다는 일을 하게 되건 회사 내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건 언제 어디서 필요할지 모른다. 연장통에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면 당황해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 소설 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어찌 그리 안정효씨의 책과 같은지 신기하다. 어쨌거나 그 부분은 생략하고 읽었다.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읽는 내내 유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