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은 많지만 이제서야 몇 권의 책을 읽으며 그 분야에 관한 지식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박정희의 용인술은 굉장하다. 김종필이 어쩔 수 없이 외유를 떠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를 마침내 꿰찬다. 하지만 김형욱이 너무 크게 성장하는 것을 막기위해, 그와  대립을 시킬 인물로 이후락을 택하여 그의 입지를 키워준다. 이에 김형욱도 사뭇 조심을 하게된다.

박정희는 윤보선과의 대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중앙정보부가 어느 정도까지 이 선거에 개입했는지는 이 회고록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진다. 김형욱은 이 책에서 자신이 부정선거운동을 안 했음을 자랑으로 이야기한다. 허나 그 내용을 보면 획실한 선거개입으로 부정선거이다. 요즘과 기준이 다른 것일까, 이를 자랑이라고 회고록에 쓰다니.

아이러니 한 것은 좌익의 표가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신물이 났길래 민심은 구테타를 저지른 장본인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박정희가 좌익 경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당선이 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우익의 역사 속 우상이 되니 아이러니이다. 현 이병박대통령도 대학때 데모를 하다가 잡힌 경력이 있지 않은가? 그도 지금은 친 대기업 선향을 가진 보수이지만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만년 야당에서 여당이 되어 대통령이 되었으니, 종합하여 보건데, 어찌보면 좌우대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입신양명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통하던 사회, 바로 박정희 시대이다. 물론 지금도 이런 기회주의자적 행태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 때 보다는 좀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기회를 노리는 것만이 그 때와는 다른 점이다.

김형욱은 이 책에서 이후락에 대해 한마디 한다.

'그는 솟아오르는 권력가였으나 그때까지 아직은 일가을 차릴만한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강한 듯이 보이는 세력의 심중을 헤아려 알아서 기는데 거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정치적 신조는 없고 다만 이해관계만 있었다. 그는 어떤 권력 심지어 김일성에게까지도 충성을 바쳐 그의 마음을 사로 잡을 만한 전형적인 간신이 갖추어야 할 온갖 자질을 풍부히 지니고 있었다.' (교육도서판 김형욱 회고록 II, p. 92)

특히나 마지막 문장에서 웃겨 죽는줄 알았다. 그의 입을 빌린 이후락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도 흥미진진 할 듯 하다.

몇일 전 부분일식이 있었다. 구름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마치 조명이 조금 어두어진 느낌, 기이했다. 분명 하늘은 맑은데 곧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 동료 중 하나는 ’나이들어 내 눈이 어두어졌나.’ 하면서 안경을 닦았고, 주변의 몇몇 대학생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세룰로지로 태양을 보고 있었다. 이를 보고 나도 어렸을 적 일식이 있을 때 두꺼운 종이에 구멍을 뚫어 그 그림자를 봤던 기억이 났다. 집에와서 9시뉴스를 보는데 어느 초등학교 여학생이 한 말이 인상에 남는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었어요.’

태양이 정말 초승달 모양이 되었고, 이를 가린 달은 영락없는 태양의 형태인 원형이다.

그 초등학생의 감수성, 내 동료의 안경닦이, 대학생들의 관찰. 당신은 지난번 부분일식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 인생의 현재 모습이다. 옛날엔 일식이 일어나면 왕의 실책에 대한 하늘의 분노로 보았는데, 그 생각이 났는가? 그것이 현재 당신의 관심사이고 현재의 모습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남들이 쳐다보니 쳐다보고 다시 아무 생각 없이 가던 길 갔는가? 그것이 현재 당신의 인생 모습이다.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하느라 볼 시간이 없었는가? 그것이 현재 당신의 인생 모습이다.

난 맑은 날씨의 흐린 조명이 신기했고,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신기했고, 이런 글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쓰고 있다. 이 또한 내 인생의 현재 모습이다. 이런저런 책을 읽고 다양한 인간군상에 관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현재 내 인생 모습인 것이다.

당신의 현재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

원래 이 책은 ’김형욱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에 나왔던 책이다. 총 3권 짜리인데, 이번에 저자인 김경재씨가 그 후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한 권 더 내어, 그리고 기존에 촘촘하여 읽기 불편하게 쓰여진 3권 짜리를 4권으로 늘려 총 5권이 되어 다시 출간 되었다. 다시 출간된 이 책이 나오기 직전 인터넷 헌책방 서점에서 예전판 3권짜리를 만원에 판매를 하여 냉큼 주문하여 보고 있다. 예전에는 헌책이 싫었는데 요즘은 빛 바랜 헌책이 왜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나이 탓인가. 약간은 노리끼리해진 책. 마치 오래된 사진이 노랗게 되듯, 해떨어지기 직전 세상이 온통 노랗게 되는 광경처럼.

516구테타 직전과 이의 성공, 이후 김종필의 1년 반 동안의 중앙정보부 부장 시절 이야기까지 읽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내용은 장도영 당시 국방부장관의 기회주의적 태도이고, 이 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를 꿰뚫고 이용한 박정희의 통찰력이다. 516직전 혁명이 대세라는 인식을 군 내부에 퍼뜨리게 되는 과정, 다양한 사람들의 포섭, 혁명에 가담한 인물들을 급수별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작전을 세우는 내용, 등이 긴박감 넘치게 전개된다. 결론은 하나이다. 목숨을 건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의 대결에서 승자는 정해져 있다는 사실.

박정희는 516을 인조반정에 비유한다. 그럼 김종필의 일인지하 만인지상, 1년 반의 권력은 홍국영에 비유할 수 있는가?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만고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군사 구테타가 다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정치, 사회, 경제에서의 구테타 말이다. 기업에서는 어느 누구의 지분률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기존의 그 기업의 소유권이 넘어가고 (금호그룹),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하극상의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

하극상이 성공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가 그 명분을 위해 장도영 같은 이를 이용하듯이 말이다. 지금 회사에서 하극상을 하려하는가? 그럼 명분을 찾고 누군가를 등에 업어라. 그리고 주변을 포섭하고 대세는 정해졌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라. 그럼 성공한다. 단순 하극상은 해프닝으로 끝난다. 지금 당신의 회사에서 장XX 부장이 그렇게도 싫은가? 박정희가 한대로 하라. 안그러면 실패한다. 물론 짤릴 각오는 기본이다. ^^

’김형욱 회고록’은 원래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전직 중앙정보부 부장이 이에 악의를 품고 낸 책이고, 그는 이 폭로로 인해 프랑스에서 죽임을 당한 뒤 고기분쇄기에 갈린다. 어찌보면 목숨과 바꾼 책이다. 여기 있는 내용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주인공 자신이 당시 시대의 중심부에서 활약을 했던 인물이었고, 그는 이를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각과 그가 가진 이해관계로 당시 상황을 살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