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풀었는데 꽝이에요....50원이라도 주세요...^^;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 중에 미술가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사 보았다. 다양한 사진과 그림이 수록된 장점이 있기는 하나, 번역의 문제인지 원서가 원래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용이 상당히 헷갈렸다. 어떤 인물의 연대기적 순서에 입각하여 쓰기는 했으나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나열된 다이제스트 방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꽤 있었다. 물론 방대한 양 높은 질의 사진과 그림은 이를 보상하고도 남기는 했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는 이에 비해 방대하지는 않은 그리고 아주 높은 질은 아닌 사진들이 있다. 허나 그 내용은 서양인이 쓴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닌, 우리나라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직접 집필한 책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충실하다. 그리고 그 주제도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봉을 달리는 전문가이면서 관련 서적을 내어 글빨이 검증된, 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저자를 바로 섭외하여 이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듯한 인상이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에서 이 시리즈가 꽂혀있는 걸 본적이 있다. 당시는 고등학생이었고 ’앗,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편한 책인데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읽는 내용이군’ 이라 생각하고 바로 다른 층에 있는 당시 나의 관심사인 심령과학서적 코너에 달려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몇몇 분들에게는 후자가 더 고리타분 할 수 있겠다)

이제는 그런데 이런 책들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헌책방에서 이 책을 접하고 내용이 술술 읽히는데 스스로 놀랐다. 그 동안은 인상파 화가들에 관한 번역서와 김홍도, 겸재 정선에 관한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는 그림에 관한 위주의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근대 유화에 관한 책을 읽으니 그 내용이 쉬우면서도 잘 읽힌다.

천재적 화가는 타고난 것이지만 이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은 키워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평소에 이런 그림들을 애정을 가지고 가까이 하며, 당시 시대상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등을 재미있어 하면서 감상을 하게되면 안목은 저절로 키워진다.

개화기와 일제시대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의 유화는 기이한 포즈와 인물들의 무표정이 그 특징이라 지적한다. 그리고는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구도와 색채 등의 해설보다는 당시 시대상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속한 여러 화파들 혹은 단체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림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당시 시대상에 관한 설명, 마음에 든다. 그런 이야기들에 재미를 느끼면 독자는 그림에 관한 더 많은 서적을 보게되고 전시회가 열렸다하면 찾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 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안압지에 다시 가 보고 싶다. 석굴암, 불국사, 그리고 종묘도 다시 가 보고 싶다. 살면서 2-3번 정도 가 본적이 있지만 그 때는 이를 증명사진의 배경으로만 이용했었다. 당시에는 이 곳들이 나에겐 그저 경치 좋은 장소였지만, 이제는 분명 다른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다. 그 안에 역사가 있고, 여러 인물들의 사상과 고뇌가 있으며, 한국 건축의 우수한 흔적이 있다. 나의 머리와 눈을 일깨운 저자에게 감사한다.

안압지가 통일된 신라에서의 통일된 건축물의 첫 시도였다면,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의 결정체이다. 이 책에는 통일신라에서의 백제장인들의 활약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불국사는 다보탑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목재의 특징을 살린 석조건물이 많다. 반면 석재 고유의 특징이 잘 나타난것은 석가탑이다. 저자는 석가탑의 뛰어난 비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다른 석조탑과 비교를 하여 그 비례를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아사달이 장인인 이유를 알겠다.

석굴암은 또 어떠한가? 안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물이 흐르는 통로를 만들어 놓는다. 이를 모르고있는 상태에서 일제 강점기에 석굴을 뜯어내고 나중에 이를 복원 하였는데,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인위적으로 습기제거 기계를 설치하니 오히려 당시만 못하여, 지금 현재 보존 문제가 심각하다고한다. 이느 마치 어느 의학분야에선 양의학보다 한의학의 경험에 의한 치료 노하우가 더 효과적인 것과 같다. 첨단기술보다 경험적 경륜이 뭍어나는 대목이다.

안압지 토사를 들춰내니 고려에 의해 망하기 직전, 당시의 소중한 보물을 안 빼앗기려고 연못에 빠뜨린 통일신라 보물이 다수 출토 된다. 그 중에는 건축에 필요한 목재도구들도 상하지 않고 보존되었고, 안압지에서 술먹고 노는데 이용한 벌칙이 적혀있는 주사위도 출토되었다. (놀다가 빠트린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통일신라가 고려에 의해 망하지 않았다면 경주국립박물관의 유물의 수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수원화성은 천재 군주인 정조 그리고 이를 진두지휘한 또 다른 천재 정약용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실학이 실제로 쓰일 수 있는 학문이라는데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원화성이 아닌가하다. 저자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처음에는 수원화성에 감탄을 하다가, 나중에 보니 이것이 결국은 중국에서 수입한 원리에 기초를 둔 모방품이라는 생각에 실망을 했던 적이 있다 한다. 하지만 중국을 여행 할 때 중국의 성들을 직접 보니, 수원화성은 기실 중국의 원리를 들여 오기는 했어도 이를 독창적으로 응용을 하고 디자인 또한 고유의 것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정약용의 거중기라는 발명품이 사실은 중국에서 발간된 기중도설이라는 책에 나온 기구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던 적이 있다. 허나 그 책에 나온 중국산 기구보다 4배의 효율성을 보인다는 이야기에 흐뭇해 했던 적이 있다.

이번엔 종묘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사극에서 흔히 말하는 "종묘와 사직"이라는 말에서의 바로 그 종묘이다. 종로에 있기에 종묘가 된 것이 아니라 종묘가 있기에 종로가 있다. 왕실의 뿌리인만큼 그 곳 건축물 역시 심오한 철학이 있다. 산 자의 길과 죽은 자의 길이 분리되어있고, 한 건물 안에도 무수한 원리가 숨겨져 있다.

저자의 이름이 눈에 익다 싶어 자세히 조사해보니 예전에 읽었던 가람건축에 관한 책인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을 쓴 분이다. 가람 건축은 자고로 주변 환경과 ’조화’가 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가르쳐 준 소중한 책인데, 이제 가람을 넘어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글을 접하니 식견이 더욱 넓어진다.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에 익숙치 않은 나로써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책 뒤의 용어에 관한 부록을 참고하고,  네이버 지식인 검색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귀챦아서 대충 넘겨버린 부분도 많이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낱 용어의 낯설음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진정한 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