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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콤프렉스 인생의 화인들
| 그 중 우리나라고서화 |
2009.11.18 15:2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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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두수로 사람의 운명을 보다 보면 기이한 경우가 많다. 글재주가 있는 이들은 예외 없이 인생의 굴곡이 큰 것을 볼 수 있다. 즉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봐야 그러한 애달픈 사연이 문학작품으로 승화된다고나할까.
변호사 사주는 시비구설이 끊이지 않는 삶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당신 주변에는 항상 말로 화를 입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만약 변호사나 언론인이 된다면 그러한 안 좋은 운을 직업으로 승화시키게 됩니다.’라는 사주팔자에서의 통변이 그러한 경우이다. 내 주변에, 집안 사람들에게 암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분이 있다. 아버지도 암이고 누나들도 다 암이다. 유전적으로 내려져 오는 듯 하다. 다행이 그 분이 의사이다.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평소에 병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본인에게도 그러한 질병이 걸리게 되는 것을 직업으로 승화시킨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 분 역시 암을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프렉스가 예술로 승화된 화인들에 관한 예가 바로 이 책, ‘화인열전2’이다. ‘기본적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깊은 시련과 고통의 날들을 보내 봐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말년이 되면 비로소 기구 원통하고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뒤로 보낸 채, 그윽하게 세상을 관조하며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 명품이 나오게 되는가?’ 이 명제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아 보았다.
현재 심사정, 드라마에서나 들어본 단어인 ‘대역죄’로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다. 능호관 이인상, 양반과 중인 사이에 낀, 세상의 부정부패를 못 참은 대쪽 같은 성품의 ‘서출’이다. 호생관 최북, 그의 이름인 북녘북(北)자의 변을 180도로 돌려 (北=>七七) 칠(七)자 두 개로 자칭하는 호를 쓴 ‘칠칠이’ 중인 출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론 집안인 겸재와 비교해 볼 적에 상대적으로 타고난 신분이 낮은 중인인 단원 김홍도.
몰락한 양반과, 서출, 그리고 중인 둘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생에 콤프렉스가 있다. 이제 이들 사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1. 현재 심사정
금년이 겸재 정선 서거 250주년이라고 이곳저곳서 전시회가 개최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라고 알려진 현재 심사정의 그림은 딱히 그의 이름이 걸린 전시회를 못 봐왔다. 몇 년전 간송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가 개최 되었다고해서 당시의 도록을 헌책방에서 주문하여 받아 놓기는 했지만 아직 읽어보질 못했다. 내 자신 역시 별 특징 없는 그의 그림에 끌리질 않는 듯했다.
이제서야 이 책을 보니, 그의 그림이 당시에도 주변의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제문을 달거나 하질 않았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는 대역죄로 몰락한 가문 출신이었다. 대역죄 이전에 그의 할아버지가 과거시험 부정행위를 하여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고한다. 당시 몰락하지 않은 남인과 소론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이를 그림으로 승화시켰으니 말이다.
조선고유의 그림을 최초로 시도한 이들은 그들의 선구자적 정신때문에 요즘 높은 평을 받지만, 현재심사정은 그런 부류의 화인은 아니다. 당시에는 평가기준이 ’창의성’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중국그림을 모사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라고한다. 모사가 아닌 ’방의’작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방의작’이란 기존의 그림을 토대로, 작가 나름대로 이를 재해석하여 그린 작품을 말한다.
어찌되었건, 그의 삶은 피곤했고, 그의 그림 역시 애수가 젖어있다. 만약 그가 밝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었다면, 그의 그림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심사정, 하마선인도 간송미술관]
말을 안 듣는 다리 세 개 달린 개구리를 엽전뭉치로 유인하고 있는 신선 그림이다. 도도하게 졸면서 바다를 건너는 신선이 아닌 왜 하필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롭고 귀챦아하는 신선을 그렸을까? 이 그림은 그의 자조적인 도석화라고 저자 유홍준 선생은 이야기한다. 한 달전 간송미술관에서 보았을 때는 느낌이 안 와 닿았는데, 지금 보니 느낌이 다르다.
[심사정, 촉잔도 간송미술관 (사진:한계레신문)]
위의 그림은 8미터가 넘는 현재의 죽기 직전 그린 ’촉잔도’이다. 몇 주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고온터라, 이제 이런 파노라마식의 그림은 그 작가의 모든 역량이 집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모든 그림의 노하우가 이 그림에 담겨 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분명 이 그림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 빨리 보고 싶다. 2년전에 간송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고하니 수 년 혹은 십 수년 기다려 봐야 함을 알기에 더욱 보고 싶다.
2. 능호관 이인상
예전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란 책에서 그의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
[설송도, 이인상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함께, 문인화의 대표작이다. 기교를 부리는 전문화인들과는 다르게 고고한 선비정신을 드러내는 화인이다. 가뜩이나 좁은 세로폭을 질러가는 우뚝 솟은 소나무를 보라. 솔직히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무슨 구리판에 별 특징 없는 소나무 한 그루, 아니 자세히 보니 두 그루 있네. 근데 뭐 이게 어쨌다구?’의 생각을 가졌었다.
서양화에는 그 화가의 성격이나 품행은 그 작품과 별개로 얘기한다. 허나 우리나라의 ’문인화’에는 그 작가의 특징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능호관은 지조와 청렴결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살아간 인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성향은 그가 서출이라는 사실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한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예전 대학 기숙사 방을 같이 썼던 동기 하나는 유명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자격지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녀석이었다. 그러한 그가 자신 보다 낮은 수준의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깔보는 언행을 일삼았다. 자격지심이 있는 이는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밑에 사람을 얕보는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겉으로건 속으로건 아님 둘 다이건 간에 말이다. 능호관 역시, ’정통’ 사대부들에 대한 자격지심이 소론이나 남인에 대한 깔보는 듯한 경계심으로 작용을 했다고 본다. 고고한 학과 같은 기상이 지나쳐서 남인, 소론 들과 절대 말을 섞지 않았을 정도였다는 기술이 이 책에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일게다. 어쨌거나 그가 노론이 아닌 사람들을 멀리하는만큼, 그는 더욱 ’정통’사대부들의 고고한 정신을 따라갔고, 절대 아랫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애정 없이는 그릴 수 없는 속화를 그릴 수 없는 작가가 되어갔을게다.
이 책에는 능호관의 그림을 좋아한다고하면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준다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기교를 못 부리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붓놀림을 자제하면서 사대부의 정신을 맑게 표현한 그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러한 그의 그림의 성향은 그가 서출이라는 콤프렉스의 산물이고 그것이 병적으로 흐른만큼 그의 그림이 숭고해져 갔다고 생각한다. 취향의 차이이겠지만,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게된 화인이다. 이 책의 작가인 유홍준 선생의 의도와는 다른 느낌을 내가 받은게다.
3. 칠칠이 최북
그의 기이한 행적과 뛰어난 그림은 조선초 연담 김명국을 닮았다.
 
[최북, 풍설야귀인 이후락 소장] [김명국, 설중귀려도, 국립중앙박물관]
왠지모르게 연담 김명국의 ’설중귀려도’와 유사하지 않은가. 눈이 오는 밤풍경이라는 소재가 같아서일까? 꼭 이것만이 아니라, 바람에 휘어지는 나무의 느낌이 일필휘지 김명국의 느낌과 동일하다. 또한 칠칠이 최북은 작품의 기복이 심한데, 연담 김명국 역시 그러하다. 공통점이 많은 화인이다.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소장하고 있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씨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최근에 접했다. 권력도 순간이고 화인도 순간이고, 소장자도 순간이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예술작품과 그 작가의 정신이다. 칠칠이에게는 무슨 작가정신이 있었을까? 양반 사대부들에 대한,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이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직설적인 내뱉음, 그것이 그의 작가 정신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왜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복이 심하게 드러날까? 저자 유홍준 선생은 그가 프로페셔널리즘이 부족했다고 평한다. 나도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저 그림, 풍설야귀인, 이후락씨가 사망했는데, 누가 가져갔을까? 내가 찜했다. 저 그림만큼은 욕심난다.
4. 단원 김홍도
말이 필요없는 조선 그림의 완성을 이룬 대화원이다. 이 책에 있는 네 명의 화원 중에 유일하게 속화를 그린 인물이다.
진경산수와 속화는 현실을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거나 현실 속에서 기꺼이 개입할 마음 자세가 있어야 다룰 수 있는 장르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로서는 차라리 관념의 세계가 자신의 처지를 담아내는 데 맞았던 것이다. 같은 관념성을 지향하면서도 현재는 정서의 심화를 추구하였다. 그의 그림에 서려있는 깊이가 바로 그것이다. 능호관은 관념산수를 통하여 높은 도덕과 정신적 고양을 추구했다. 그의 그림에 감도는 삼엄한 기상이 그것이다. 이에 반하여 호생관은 부정적 사유와 반항적 기질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였다. (p.164)
이 넷 중에 난 단원이 제일 좋다. 이는 그가 사물이나 생물을 바라 보며 관찰하는 자세에 치밀함이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치밀함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세상만사, 만물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화인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좋다.
단원 김홍도에 관한 고찰은 오주석 선생의 ’단원 김홍도’의 리뷰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여러 콤프렉스가 있는 화인들을 잘 고찰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의 그러한 콤프렉스는 있어도 괜챦지만, 그것이 과할때는 너무 극단적인 사고 방식을 갖게 되고, 이는 예술 분야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화인열전1&2’를 읽으며 많은 좋은 그림도 보게 되었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리뷰작성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유홍준 선생이 우리나라 고서화에 대한 다른 책을 안 내시나 기다리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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