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포인트는 여러가지이다. 그 중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무너져가는 과도기로서의 일제시대를 그린 에피소드인 ’24.세월의 상처’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방 출신인 백종두는 일제의 앞잡이가 된다. 끝발있는 면장이 된거다. 양반인 김창봉은 그에게 뇌물을 주고, 이에 백종두는 양반이 자기 밑에서 설설 기어다니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유교적 사상이 베어 있는 사대부 신세호는 집안에 신민회 간부인 신채호가 쓴 금서인 ’을지문덕’과 ’성웅 이순신’이 발견되는 바람에 신민회 일당임을 불라는 고문을 받게된다. 신세호 문중의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이에 항의하자, 백종두는 그들과 담판을 한다. 그리고 너그럽게 신세호를 석방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백종두 밑에 있던 일본인 경찰서장은 어리둥절하게되지만, 백종두는 몇년전만해도 양반인 그들이 현재 자신의 말 한마디에 기는 것을 즐기고 있다.

당시에는 양반과 상민의 계급이 붕괴되는 시기다. 의병들의 활동도 처음에는 사대부들도 같이 나섰지만, 이내 물러나고 천민과 양민 출신들이 주도가 되어 활동하게된다. 가장 웃긴 이야기는 의병대장인 이인영 장군이 의병끼리 연합하여 한성을 치자고 한 거사를 앞두고 갑자기 부친별세를 이유로 낙향한 에피소드이다 (17.서로 다른 길). 이는 그가 무서워서 중간에 발을 뺀 것이 아니다. 워낙에 성리학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가 그 무엇보다 앞서기 때문에, 사대부라면 응당 그리해야하는 거였다. 이런 성리학 사상의 문제점 때문에 조선 말 실학이 일어난 거였고, 이런 사상의 문제점이 여실히 당시에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타깝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세계의 흐름을 받아들였어야 하는건데, 일제의 발 밑에서 이런 근대적 사상과 현대적 사상의 과도기를 거치게 되었다니 말이다. 일제 시대에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이에 홧병을 얻어 죽게된 양반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득권을 누려오던 이들이 그러한 기득권을 빼앗겼을 때의 심정은 물론 참담했을 것이다.

현 시대에도 돈 없는 자와 있는 자 사이의 이러한 신분 구분이 분명히 있다. 있는 자들은 특목고니 뭐니, 높은 사교육비니해서 돈 많이 들여 자식들을 교육시켜서, 되도록이면 돈 없는 이들이 자신들의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못 사는 놈들은 못 사는 놈들끼리 공립학교에서 어울리라는 얘기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닐게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할렘가가 존재하는 법이고, 같은 교육기관이라해도 등록비는 천차만별이니깐 말이다.

과거에 출생을 바탕으로한 신분제도에서 이제는 부를 바탕으로 한 신분제도가 되었다. 그러한 기득권이 사라질 때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되나, 요즘의 양극화 현상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건 사회 변혁이 일어날때, 분명 그 기득권 세력은 예전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무너지는 시기에서 좌절했던 것처럼 좌절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중국에서 조만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양반이면서도 민초들을 생각한 '송수익'같은 인물이 정녕 예나 지금이나 귀한 것인가?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 ... 그 다음 기억이 안난다. 연산군인가?...그 동안 조선 후기 영정조 시기에 관한 책이나 드라마는 많이 접하였는데, 전기와 중기의 역사도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조선왕조 전체를 지루하지않게 훑어볼 수 있는 책을 원하였다. 줄기를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나할까.

이 책은 역사에 일가견이 있는 대학 선배가 삼겹살 먹으면서 들려주는 조선사 이야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욕 비스무리한 것도 섞인 쉬운 구어체로 쓰여졌고, 증거자료를 대면서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논문도 아니고 하니 그 선배의 말에 한편 의구심도 들면서, 다른 한편 백배 공감하는 면도 있으니 말이다.

조선중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기득권을 '수구꼴통' (책에 있는 그대로의 표현을 빌렸음) 이라 얘기하는 점은 이덕일의 관점과 비슷한데, 박통의 구테타를 민족중흥의 계기로 보는 것은 현재 보수세력의 주장과 같다. 독특한 역사관을 가진 선배이다. 또한 중간에 임진왜란에 관한 이야기를 할적에는 그 선배가 쓴 또 다른 책인 '조일전쟁'을 대놓고 선전하니 이건 진짜 일반 책이 아니라 내 대학 선배의 이야기의 관점으로 접근해야한다. '너, 내가 쓴 조일전쟁도 꼭 봐라, 좋은 말로 할 때~~. 니 역사관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임진왜란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많은줄 아니? 그 책 한 권 팔려봤자, 나 천원 밖에 안 떨어져. 책팔아 먹으려고 하는것 아니니깐 꼭 사봐라.' 이런 부분이 있다. 책에 있는 그대로의 문장이 아니라 내가 약간 과장해서 이야기 한 것이지만, 하여간 난 이러한 어투로 받아들였다. 하여간 재미있는 선배, 아니 작가이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책이지만, 여하간 '조일전쟁' 그 책, 지금 내 장바구니에 있다.

조선 중기로 넘어가면서는 진즉 망했어야 했다고 피를 토해 열변한다. 특히나 어정쩡한 '가운데 중'자를 이름으로 받은 중종과 조일전쟁 당시 도망다니기 바빴던 소인배 선조, 이 두 왕이 합쳐서 근 100년간을 해 먹은 순간 조선은 이미 국운이 다 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세종의 훈민정음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쳅터로 상당히 자세하게 내용이 전개된다. 결국 저자, 아니 이 선배의 주된 주장은 사대부들의 관점이 아닌 일반 양민, 천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시대는 전반적으로 개같은 시기였는데 (책에 있는 표현 그대로 인용했다), 그나마 세종이나 정조와 같은 시기에는 살맛이 난 시기였다는거다..그래서 당쟁이니 하는 것들을 누가 식민사관이라고 소리하는가? 당시 양반이 아닌 다수의 백성 입장에서는 전부 뭐같은 거다라는 주장이다.

덕분에 전기와 중기의 흐름이 잡혔다. 이제 2권을 읽으면 전체의 줄기가 잡히겠지.

친구가 관리자의 지위로 스카웃트되어 가게 되서 이 책을 선물하고, 나도 봤다.

각양각색의 왕 밑에는 역시나 각양각색의 참모들이 있었고, 그 성과도 다양했다. 개인별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 책에 나온 8명의 참모 중에 하륜에게 가장 많이 마음이 간다.

그는 일찍이 고려 말에 유배지에서 천문과 음양오행을 익혀, 천기를 읽을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을 세울 적에 이성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그의 5째 아들인 이방원을 점찍어 군주로 모시게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볼 때, 조선 초에 정도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견제가 심하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고, 분명 천기를 읽고 내린 결정일게다. 역학의 달인이라는 점을 제쳐두고라도, 그는 사람을 볼 줄 알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참모이다. 그의 감식안과 통찰, 내가 갖고 싶어하는 자질이다.

이리하여 1401년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즉위했는데, 이때 하륜의 나이 55세였다. 그는 이 두 차례 난의 실질적인 지휘자였고 세간의 비난을 달게 받으며 군주의 방패 역할을 했다. (p.79)

당시의 55세이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으나, 그는 그 때 부터가 그의 인생의 시작이었다. 사람을 볼 줄 알고, 거기에 따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다. 이는 마치 오나라가 월나라를 칠 적에 와신상담하면서 17년을 조공바치고 차근차근 힘을 키운 결과와 다를 바가 없다.

황희는 원래 세종(충녕대군)이 왕위를 물려 받는 것을 결사 반대 하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상왕이 된 태종 앞에 문안 인사 드리러 갔을 때, 그의 옆에 있는 세종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 졌다고 한다. 자신이 반대했던 왕이 아니던가. 선왕이 황희를 적극 칭찬하자 나중에 세종은 황희를 중용하게된다. 이는 황희가 사람보는 안목이 있는게 아니라 세종이 안목이 있다 할 수 있는 점이다. 4대에 걸친 왕을 모신 폭 넓은 인간관계가 있고 신진세력과 기존세력의 중재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중용의 도리를 안 황희를 알아 본 것은 세종이다. 하지만 하륜은 왕이 될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던 인물이다. 하륜이 황희보다 한 수 위다.

신숙주는 말 잘 듣는 실력있는 신하이다. 그 유명한 사육신에 끼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성삼문과는 다른 길을 간다. 그는 항상 준비된 자로, 어느 왕이건 그를 탐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던 인물이다. 그 매력은 중국에 자주 방문하면서 얻게된 당시로서는 귀한 ’국제감각’이다. 세조는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쿠테타로 인한 정통성 회복의 일환으로 신숙주와 같은 인재를 원했다. 태조의 정도전이나 세조의 한명회는 정치 상황의 혼란기에 필요한 인물이라면 신숙주는 안정된 정치 하에서 필요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을 헤쳐나가야 하는 도망쟁이 선조에게는 유성룡이 있었고, 연산군 치하에서 눈치만 늘어난 채 왕위에 오른 중종에게는 조광조가 필요했다. 그리고 척화론에 휘둘려 결국 남한산성에 피신 가게된 인조에게는 최명길이 있었다. 바보같은 왕을 모신 비운의 신하들이다. 정조에게는 채제공이 있었는데, 이는 노론벽파와 남인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위한 정조의 계산에 의해 필요한 인재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본받을 만한 인물은 ’하륜’이다. 신숙주의 꾸준히 외교감각을 키워 몸 값을 높여 놓고 왕의 간택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하륜이 제일이라면 신숙주는 두 번째다. 물론 나라를 가장 걱정한 인물로 치자면 단연 유성룡이 제일이라고 본다.

여러분은 이 8명의 신하들 중 어느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이 책을 읽어보고 스스로 답을 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