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에서의 수탈을 위해 직접 나서지 않는다. 교묘하게 한국인을 이용하여 이를 이뤄낸다.

더러운 일은 절대 직접하지 않는다. 농토를 빼앗을 때도 ’지주총대’라는 사람을 뽑아 놓고 그 사람들이 알아서 기존에 서류가 없는 농토를 총독부 소유로 하는 작업을 하도록 한다. 결국은 서류 작업이 안 된 농토를 소유하고 있던 힘 없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적락하게되고, 이 과정 중에 생긴 반발하는 사람들은 결국 지주총대에게 달려가 항의를 하지 절대 감히 총독부나 총독부의 지방 분원인 주재소까지 와서 난동을 부리진 않게 된다. 지주총대가 된 사람들은 한마디로 일제의 방패막이가 되면서 동시에 지독한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던 신분구조는 이제 서서히 친일파와 소작농으로 분류가 되기 시작한다.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아마 아래 정도가 아닐까한다.

조선시대: 양반--상놈
일제시대: 친일파--소작농
이승만/박정희/전두환시대: 정계제계cartel--일반서민
노태우/김영삼시대: 정계제계언론계--일반서민
김대중/노무현시대: 정계제계언론계법조계--일반서민 (노무현정권시절 김앤장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정점에 달한다)
이명박시대: 돈많은이--돈적은이

물론 칼로 무우를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예전부터 돈 있는 놈과 없는 놈 사이의 경계는 있어왔다. 요즘 그 골이 가장 깊을 뿐이다.

그럼 각 시대에 있어서의 ’지주총대’의 역할을 한 부류는 누구일까?

조선시대: 이방과 포도청 포졸
일제시대: 지주총대 및 어줍쟎은 친일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시대: 정치폭력배, 국내 정치를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직원
노태우/김영삼시대: 언론 (당시에는 언론이 정권에 알아서 기었다)
김대중/노무현시대: ?
이명박시대: ?

밑으로 갈수록 잘 안 떠오른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누가, 어떤 조직이 가엾게도 기득권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기득권 흉내를 내며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손을 대신 더럽혀주는 일을 하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자.

스스로 생각해 보며 사색에 잠겨보시길.

가난한 집의 예쁘게 생긴 막내딸 수국이는 정미소에서 일을 하며 쌀과 겨자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일을 마치고 나면 남자 감독관에 의해서 몸수색을 당한다. 쌀을 훔쳐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 하다 중간에라도 쌀톨을 먹다 걸리면 둘 중 하나다. 예쁘지 않으면 그대로 짤리는 거고, 예쁘면 몸을 바치면 안 짤린다. 아니, 계속 몸을 바치면 쌀을 삥땅쳐도 눈감아준다. 이런 수모를 용케 견디다가 결국 수국이는 정미소 주인 아들인 백씨의 손에 겁탈을 당한다. 조정래 작가는 이를 노골적이라 할만큼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치 수국이가 일제에게 겁탈 당하는 우리민족을 상징하듯 작가는 수국이가 몸수색을 당했을 때의 치욕과 결국 겁탈을 당하게 되었을 때의 힘 한번 써보지 못하는 수국이의 몸뚱아리에 우리 민족을 대입시킨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국이는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한국인의 손에 이런 일을 당하는거다. 오히려 일본인은 겉으로는 신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한국인 수족을 내세워 수탈을 일 삼는다.

일본서 정보부 교육을 받고 국내로 귀국한 한 한국청년 이야기도 시작된다. 군산 앞바다에서 막노동을 하는 인부들 중 의병 잔당을 섬멸하라는 임무를 맡고 이를 착실히 수행한다. 그는 그의 뒤를 봐주는 일본인에게 입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정보부 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친일파 중에서도 기회주의자라기 보다는 사상자체가 한국인은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종자가 다른 친일파이다.

작가의 당시 이러한 다양한 인물군상에 관한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당시를 살아보는 듯한 느낌이 온다.

점입가경, 2부에서부터는 만주에서의 활약이 시작 될 듯 하다.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국사였는지 도덕시간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우리나라에 있던 평등사상을 엿볼 수 있는 제도나 사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운이 없게도 그 선생님은 내 번호를 지목하셨다. 난 일어서서 얘기했다.

’우리나라는 원래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그런것 없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시는 것 같더니, 이내 칠판에 무슨 제도 이름을 적으셨다. ’탕평책’이었던가? ’과거제도’였던가?, 여하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난 혼자서 생각했다. ’저것도 결국 양반에게만 해당되는건데? 아닌가?’ 난 선생님에게 대드는 학생이 아니었기에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때 나의 심정이 이 책에서 저자에 의해 고스란히, 아니 좀 더 과격하게 살아난다.

’하여간 청에 포로로 잡혀가서 팔자 핀 사람들은 기생들이나 백정같은 천민들이었다...기생들은 차라리 청군에 잡혀가면 조선에서보다 훨씬 더 사람 같은 대접을 받았다...(중략)..짐승을 도살할 일이 생기면 조선백정을 찾았다. 백정은 여진족들에게는 소중한 기능인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짐승이 청에 포로로 붙들려가더니 사람이 된 것이다.’ (상권 p.466-477)

’무신 우대는 (효종) 이후 정조(22대)대와 대원군대 등 두 번에 걸쳐 더 있게 되는데, 이런 철학을 가진 왕들은 다 괜챦은 통치자들이었다.’ (하권 p. 24)

저자는 극단적이라 할만큼 사회소외층과 배곪는 사람들에 대한 ’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배고픔을 잊고 잘 살게 만들어 준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사에 속하는 박정희정권 당시를 조선왕조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치명적인 이러한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이러한 오류도 결국은 배고파 죽어가는 백성들이 이를 면하게 되는 것과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이 두가지에 중점을 둔 저자의 역사관의 발현이다. (물론 이 경우 전자의 기준으로만 봐야지, 후자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의 역사관이 오락가락 한 것 같고 잘 이해 안된다.)

저자의 김구라식의 막말 발언이 처음에는 좀 수월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그의 이러한 발언에는 철저한 ’애민의식’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 책의 제목 ’백성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이 참 정확하게 지은 책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신선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