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따르릉 따르릉 소리만 들어도 반갑고 또 반갑다.

다른 소리는 모르겠는데, 어찌된건지 따르릉 소리는 내가 자신있게 낼 수 있는 소리라는 느낌이 든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동네방네 따르릉 울리며 타던 자전거가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도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는 걸 보면 유년기의 경험들이 소중할 수 밖에 없는데, 유아도서에 자전거를 소재로 한 책들이 많다는 것도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일 수 밖에 없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새로운  '따르릉'을 만났다. 스토리는 없고 탈것들 그리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동물 등 소리가 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오고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 다 모여 있다. 글로 그 소리를 정확히 표현해낸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소리들이 다 모여 있다.

 

 

 

더 신기한 건 아이가 좋아한다는 거다. 스토리가 있는 책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소리만 있어서 그런지 더 흥미있게 본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탈것들도 있고 소리도 내 볼 수 있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책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반복된 의성어들이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나오기 때문에 한글을 떼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는가보다.

아이가 커서 어떤 청각의 자극에 의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싶다.

 

그림책, 추천도서

 

책을 펼치자 마자 나온 글. 베란다 프로젝트의 <괜찮아>라는 가사가 적혀 있다. 흥얼거릴 때는 몰랐는데, 책에서 보니 새삼 새롭게 다가오더라.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서툴면 어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속삭여 주는 것만 같았다.

 

나의 삶이 온통 서툴다. 살아보지 않은 삶이기에 서툴수 밖에 없다. 난 오늘을 처음 사는 거니까 당연한거다. 비단 내 삶 뿐만이 아니라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들 또한 나에게는 서툰 것들 투성이다. 육아가 그렇고, 주부로서의 삶이 그렇고, 노부모의 딸이라는 짐도 그렇고. 대체 어쩌자는 건지,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온다. "어떻게 할거야?" 이건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면 돼?" "어떻게 하지?", 내 마음속에선 대답한다. '나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난 엄마고 딸이고 아내이므로 묵묵히 대처한다. '이렇게 해볼까?' '이건 어때?' 그렇게 서툴게 끼워 맞춰가며 살고 있다. 허그덩! 삶이 삑사리 날 때가 있다. 그럴 땐 한없이 약해지기만 한다. 돌아보면 주위엔 또 아무도 없다. 기댈 누군가도 없다. 그저 숨고 싶은 '나'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책은 늘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 책은 내가 한없이 약해지고 바보같다고 느껴줄 때 힘이 되어주는 책이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어.

넌 이제 겨우 짐을 꾸린 것뿐이야"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그렇다. 겨우 몇 번의 실패로 절망하기는 이르다.

포기하기는 아깝다. 삶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인생의 간이역에 설 때마다 매순간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소싯적 연애 한 번 안해본 사람 없을테고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누구를 죽어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뜻모를 약속을 했다고 해도 까맣게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 때의 감정들이 어떠했는지 조차 가물가물해지는 걸 보면 사람이란 세월속에 과거의 추억을 묻고 새로운 기억들을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함께 봤던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거나 함께 갔던 거리를 걸어본다던가 일상의 어떤 매개체가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소재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한 남자와의 말만 믿고 어떤 과감한 선택을 해 봤던 경험, 나에겐 없다. 주인공처럼 강렬한 사랑이 아니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사랑이란 그저 한 때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그런 평화로운 한 장면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나인데, 납득할 수 없는 여인 요코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이자 세 번째 보물인 소우코의 이야기. 그들이 타고 가는 배가 왜 "하느님의 보트'인지 작가의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 간다. 요코에게는 세 개의 보물이 있다. 첫 번째는 여섯번 째 생일날 받았던 피아노. 이 피아노는 단순한 피아노가 아니다. 때로는 생계를 지탱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매번 이사할 때마다 들고 가야하는 짐이 되기도 하고, 과거의 요코를 있게 해준 것이기도 하며, 힘들고 지칠 때 휴식이자 위로가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번째 보물은 요코가 사랑했던 남자. 그토록 사랑했고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고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존재,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인 사람. 마지막 세 번째 보물은 다름아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영리한 딸 소우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침밥을 준비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알아서 척척해내고 엄마의 고통을 대화로 때로는 포옹으로 때로는 존재 자체로 엄마의 숨통이 되어주는 똘똘한 보물 그 자체인 딸, 심지어 공부도 잘한다. 요코는 사랑했던 남자가 남기고 간 말을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된 양 약속을 굳게 믿으며 낯선 동네를 유전한다. 한 곳에 익숙해져버리면 마치 그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란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살려고 하는 유코와 현실을 받아들였음 하는 똘똘한 딸의 시각을 번갈아 가며 표현하고 있어 두 사람의 시각을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다. 엄마와 딸이 같은 배를 타고 영원한 항해를 할 것만 같았는데, 아이는 하느님의 보트를 과감히 내리고 현실을 선택한다. 누가 옳고 그르다로 설명할 수 없는 이것은 선택의 문제였고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길로 간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신이 선택한 길을 오롯이 가는 것처럼.

 

요코를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어느샌가 난 누구보다도 요코를 이해하고 있었고 요코의 슬픔을 내것마냥 감싸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물이었고 살아갈 이유였던 딸이 독립을 선언하고 떠나갈 때 묵묵히 감당해내는 요코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은 누군가의 모습인 것만 같아, 아니면 내가 아는 그 누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면서. 아마도 뼈저린 고독을 이해해버린 것 같다. 누구나 그만큼의 고통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사니까. 그리고 지금도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 이유로 살아가기도 하니까.

 

 

"요코 씨도 이제 그만 소우코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행복을 생각해야죠."

지배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치가 떨린다. 나의 행복?

그런건 벌써 오랜 옛날에 찾았고 그 후로 나는 줄곧 행복하다. (p.247)

 

이젠 기꺼이 현실을 받아들여도 좋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과거의 요코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요코로.

 

사쿠라가 한창일 때 걸었던 신주쿠공원을 기억한다.

햇빛에 반짝이며 떨어지던 사쿠라가 하도 눈이 부셔 눈을 감아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어 눈을 감을 수 없었드랬다.

책을 통해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누구랑 함께 걸었더라??

에쿠니가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