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침대와 꼬마 릴리 by 실비 푸알르베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 커다란 침대의 의미에 대해서 확 와닿지 않았어요.

거인마을에 꼬마 요정이 사나, 하고 단순하게만 여겼지요.

하지만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줬더니 아이는 커다란 침대의 의미에 대해서 바로 캐치하더군요.

혼자 잘 수 없을 만큼 침대가 큰 거 아니야? 하고요.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그림책이 아닐까 싶더군요.

생각을 더 확장해 들어가면 커다란 침대는 좀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혼자 잠을 자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것은 아닐까 하고요.

늘 엄마 아빠랑 함께 자느라 침대의 넉넉함을 몰랐는데, 혼자 자려니 침대가 너무나 컸던 거지요.

그래서 곰 인형도 가져오고, 그래도 침대가 크자, 고양이도 가져 오고, 토끼도 가져와 보고, 엄마 스카프, 아빠 목도리,

좋아하는 책들을 모두 책으로 가져와요. 그러는 사이 릴리는 커다란 침대에서 쿨쿨 깊은 잠을 잤지요.

꼬마 릴리의 속 마음이 잘 드러나 있어요. 릴리의 행동도 마치 진짜 아이가 행동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아요.

내 옆의 아이도 어쩌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인형을 눕히고 토닥이는 모습도 그렇고 하품을 하고 팔을 뻗는 모습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쿨쿨 자는 모습까지 영락없이 우리 아이의 모습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릴리의 모습에서 깊은 공감을 할 것 같아요.

혼자자는 것이 두려운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혼자 자는 습관을 갖도록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혼자 자야하는 커다란 침대를 보며 무슨 상상을 할지도 궁금해집니다.

수영장 by 이지현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들에게....들려주는 그림책!!"

 

바다!! 여름 하면 역시 바다지요.

주말마다 틈이 나면 바다에 찾아가 물에 발도 담궈보고 조개껍데기도 주으며 나름 재미있는 추억을 쌓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이는 만족이 되지 않는지 여전히 물에 대한 갈증이 큰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가봐요. 언제 바다에 가냐고 졸라댑니다.

 

사실 바다 물놀이하면 단순한 놀이인 것 같지만 바다가 주는 은유적인 상징 또한 바다의 그 깊이만큼이나 넓고 깊지 싶어요.

작가는 그런 바다의 숨겨진 비밀에 매료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수영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 깊고 깊은 이야기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니까요.

상상으로 채워 가는 글자 없는 그림책 수영장 이야기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이면에 상상도 못했던 근사한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르지요.

보이는 것처럼 북적북적 대는 곳일 수도 있고,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요.

뜻밖에 멋진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상상만 하던 놀라운 것들을 만나기도 하고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여전히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상상력을 이끌어내주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아이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며 함께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맹수로 알려진 사자와 호랑이는 약한 새끼는 버리고 강한 새끼만 키운다고 한다. 대부분의 육아 전문가들도 말한다.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달려가 작은 상처에 제발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런 말들이 하나같이 거짓말 같았다. 약한 제 새끼일수록 더 짠해서 마음이 가게 되고, 아이가 넘어지면 달려가 안아주고 다친 곳은 없는지 호들갑 떠는 게 당연했다. 아이의 표정에서 안심이라는 마음을 읽고 나서야 평정을 되찾게 된다. 모성애라고 해야 할지,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최대한의 성의랄지 한 인간의 성장을 돕고 어른다운 어른으로 커가도록 하는데 정답이란 없었다. 마음이 가면 가는 대로, 마음이 쓰이면 쓰이는 대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보다 백배 안심이 되었다. 애초에 인간의 마음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면 어떤 답이 나올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으며 안타까운 가족사를, 유진이와 유진이의 엄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봉착하고 말았다. 무슨 근거로 타인을 저울질하며 살아왔는지,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세계에서만 안전한 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대로 흐르도록 놔두는 것이 정말 괜찮은 건지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종의 기원>은 평생의 테마인 '악'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글쓰기를 해온 정유정 작가의 전작을 잇는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한다. 모든 주제가 궁극에는 철학적 사유에 다다르는 것처럼 악의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곳곳에 던지고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화두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벌어진 사건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유진은 사이코패스다. 사이코 패스하면 1초도 망설임 없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유진도 갖고 있다.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사이코패스 유진을 그냥 사이코패스네! 하고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고, 나약하고 마음이 쓰이는 게 당연한 누군가의 자식일 수 있는데 그들도 어떻게든 이해해야 하지 않나,라는 가슴속 메아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도 유진이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외면하거나 거부해봐야 소용없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일이 그렇고,

누군가의 자식이 된 일이 그러하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그렇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추측항법으로 날아가는 제트기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마지막 주권 정도는 되찾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_본문 171쪽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엮어가는 그 사슬이 때로는 엉키기도 하겠지만 엉키면 풀기도 하면서 또 다른 사슬을 엮어나가며 살아지게 되는 거라고. 유진과 가족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지켜보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부분이 소통이었던 것 같다. 유진이가 비록 남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관계속에서 유진이의 삶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모든 게 제한되었다. 엄마는 유진이가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마음속에 각인시킨 이후 한 번도 유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았다. 그 악을 관찰하고 억압하고 제거하는 데만 급급했다. 아들의 살인을 목격하고 난 후 돌아온 유진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때, 죽었어야 했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삶도 죽음도 결정권은 마치 자신에게 있다는 양, 평생을 조종당하며 살아온 유진에게 비상구는 없어 보였다.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라는데 애초에 유진은 자신의 삶에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유진이의 마음속 고백은 그래서 더 안타깝게 들린다.

 

"나는 지극히 당연해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아이든, 어른이든 인간에겐 갈 만한 곳과 할 만한 일이 필요하다는 것.

내겐 갈 곳이 없었고, 할 일이 없었다.

해야 할 훈련이 없는 시절,

해야 할 공부가 없는 하루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보고 싶은 영화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밤 9시면 귀가해야 했으니 하룻밤 유희조차 불가능했다.

가끔 어머니가 '넌 만나는 애 없니?'라고 물으면 억장이 무너졌던 이유다.

아무것도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세상 이치를, 뭐든지 다 아는 어머니만 모르고 있었다."

_본문 182쪽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데이비드 버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이 무자비한 '적응 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다,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고. 부인하지 못 하겠다. 아닌 척하지만 나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물론 있다. 다행인 건 상상한 것을 실제로 다 표출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겠고, 불행인 건 우리도 잠재적인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유치원에 간 아이가 매일 맞고 오면 부모들은 맞지만 말고 너도 때리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말로 해봐도 안되고, 선생님께 일러도 안된다면 그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가르친 대로 하지 않는다. 맞다 보면 내성이 생기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때리지 말라고 해도 때리고 싶은 아이는 때릴 것이며, 때리라고 가르쳐도 때리고 싶지 않은 아이는 때리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이지만 늘 선과 악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자랐고 또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도 비슷비슷한 일들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겠다. 사회적 규범과 적절한 자유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법도 익히면서.

 

이 세상에는 순수하고 맑고 깨끗하고 무결한 상태의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보다 나은 것,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선한 것을 지향하고 추구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선한 것만 가지고 있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선할 수만도 없다. 살다 보면 불쑥불쑥 내 안의 악마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저자가 그토록 '악'에 관심을 갖고 찾은 해답이 내면의 어두움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하며 나를 먼저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우리 본성에 악이 분명 존재하고 있고, 그 어두움 또한 우리 존재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은 어쩌면 그 물음에 좀 더 현실적인 대답을 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