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역사에 관련된 문고판 시리즈가 있는 줄 몰랐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훑어보면서 이런 책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틈새시장에서 이 역사서들이 살아남아 면면히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제목은 '우리 역사 속 부정부패 스캔들'로 '재물과 권력을 향한 욕망의 인물사'라는 부제가 붙었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인들 부정부패가 없을까마는 우리 역사 속에서 그런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시대 상황에 비추어 새롭게 다가오고 지금 시대와 비추어 보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친일파를 두루 아우르는 글을 보면서 정말 방법도 여러 가지이고 그런 부정부패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상황이 어지러울 때 더욱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권력과 금력은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부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부분 권력을 잡았을 때 부정부패에 쉽게 빠지고 심지어 매관매직을 일삼는 것이 어디 그 시대뿐이랴.

 

 지금도 수시로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뇌물 수수는 높은 직책일수록 더하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난 후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는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현실을 말해준다. 결국 청탁이나 뇌물은 시대가 변해도사라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부정부패지수를 발표할 때 우리나라의 순위가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국민의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도 어떻게 그런 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는 발전상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더불어 청렴하고 깨끗한 정부, 그리고 기업을 하는 경영자들의 모습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헛웃음이 나오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생태연구가 김재일의 '산사의 숲, 바람에 물들다'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108 사찰 생태기행' 네번째 책으로 사찰 주변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내었다고 한다. 미사여구나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후손에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쓴 글이라는 사실을 읽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이나 넓은 숲은 대부분 사찰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찰 주변만 꼼꼼하게 살피고 다녀도 충분히 생태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일례로 해인사 같은 경우는 뒷산인 가야산의 꽤 많은 부분이 사찰림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찰들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규모를 넓히려는 확장주의에 빠지든지 아니면 신도수를 늘리기 위해 주변을 포장하고 나면 주변 생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찰림도 사유림이다 보니 국립공원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도 그런 일을 부채질하고.

 

 그래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희양산 봉암사 주변은 특별히 관리가 잘 되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禪風을 세우기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수행 도량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의 발길과 차량들에서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자연은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山사람으로서 부처님 오신 날은 개방한다는 말을 듣고 희양산은 찾았다가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막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런 이유로 자연이 살아있다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사찰과 숲 사이에 화재가 났을 경우 불이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防火林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옛날 유서 깊은 절에서 부처님 도량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결과적으로 숲도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樹種 중에서 화재에 강한 나무를 골라 심는 지혜를 확인하면서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다른 일도 그렇게 추진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사찰 주변의 생태가 생물들에게 비오톱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비오톱'이라는 용어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쁨도 컸다. 나무와 풀,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곤충과 산짐승까지 망라하는 시각으로 사찰을 찬찬히 돌아보며 조근조근 건네는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 나도 모르게 어느 사찰로 떠나볼까 마음이 공연히 들뜨는 날이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손에 들었다. 내용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데다가 여성이 쓴 책이다 보니 더 섬세한 시각이 돋보일 것 같아 선뜻 손길이 갔다.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저자는 남미 아마존의 숲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북극 빙하지대, 바다 집시의 마을과 심해, 웨스트파푸아의 산 등을 두루두루 탐험(?)하고 다닌다. 말이 탐험이지 여자 혼자 그렇게 다닌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끊임없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곳에 터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 그리고 지구 전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면서 문명을 전파한다고 자신들의 잣대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며  자원을 약탈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걸까?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보이는 사람들을 향한 고독한 부르짖음이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자연과의 공존을 외치는 저자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길은 단순히 숲에 가느다랗게 난 빈 공간이 아니다. 길을 열어두는 것은 보살핌의 행위이다. 길이란 속해 있음을 드러내며 그 위를 반복해 걷는 것은 친밀한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 p 88 중에서 )

 

 원주민들과 나눈 대화에서 지도는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그들은 내가 가져간 지도가 뭐든 열심히들여다 보았고, 항상 자신들의 지도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들은 지도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지도를 따라 그렸다. 그들에게 지도는 항상 흥미와 열정의 대상이다. 서구인들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지도를 보며 여행의 도구나 소유의 증거로 지도를 사용한다. 반면 원주민들은 이와 다르게 지도를 본다. 지도는 땅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그들은 그 기억을 더듬으며 즐거움을 맛본다. 당신이 친구의 초상화를 볼 때 목적 없는 사랑으로 친구를 인식하면서 기억과 실제의 그림을 비교하기 위해 자세히 응시하듯, 그들은 지도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눈으로 들여다본다.     ( p 352 중에서 )

 

 공기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공기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말은 중요치 않다. 사랑스러운 나비 같은 말은 이곳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쓸모가 없다. 그러나 내 부츠는 쓸모가 있고 비상용 천막 가방, 방수를 위해 콘돔 속에 넣어둔 성냥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은 동전처럼 가치가 없다. 내 발은 중요하지만 내 감정은 중요치 않다. 생각은 단지 차갑고 황량한 깨달음으로만 떠오를 뿐, 내 다리 근육이 내 정신보다 더 중요하다. ( p 501 중에서 )

 

 웨스트파푸아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문맹 퇴치에 중점을 두는데, 이것은 사람들과 야생 세계의 관계를 심각하게 변화시킨다. 글자로 쓰인 말은 명령을 외치기 시작하고, 야생적인 자연의 목소리는 침묵에 빠진다. 또한 그것은 정신과 산 사이의 내재적이고 사랑스러운 상호 영감을 억압한다. ( p 525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