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부터 세상에 대해 항거하는 듯하다.

조선시대 주류에서 벗어난 선비들을 모아 그 시대와 어떻게 불화하였는지 또 왜 그래야만 했는지 둘러보는 책이다.

김시습, 서경덕, 박세당, 정제두, 이익, 홍대용, 이벽, 유수원, 최한기. 이 9명의 사상과 세상을 살아간 면면을 살펴보는 책인데 대부분의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부분까지 많이 소개가 되었지만 정제두는 생판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떤 인물인가 더 관심이 갔다.

 

 오세 신동이라고 소문났으나 계유정난으로 목숨을 잃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의 미움을 받아 세상을 떠돌고 경주 남산(금오산)에서 '금오신화'라는 책을 남김으로써 후세에 확실하게 기억되는 인물 김시습,

개성에 은거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自足하는 삶을 살며 황진이로부터 송도삼절이라는 말을 들은 花潭 서경덕,

주자학이 진리로 여겨지던 조선에서 반주자학을 함으로써 반항아로 낙인 찍히고, 양반이면서도 직접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해서 생활한 인물 박세당,

주자학이 성한 조선에서 양명학을 연구하고 이미 멸망한 명을 숭상하고 청을 배격하는 조선의 태도에 현실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진 혁신적인 인물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주자학을 공격하지 않아 말년까지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인물, 그의 사후 강화학파라는 이름으로 그의 학문적 성과가 이어져 내려오는 행운아 정제두,

다양한 분야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실학의 방법론을 제시하지만 시대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보이는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혼천의를 제작하는 등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썼지만 중국에 대한 사대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 홍대용,

유교의 세계에서 천주교로 들어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한 인물 이벽,

실학자이면서 다른 실학자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고 상공업의 진흥 및 양반에게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등 현실적인 제안을 많이 했으나 적서차별이나 노비 문제 등 극복하지 못한 문제가 있고 자신의 의견을 과격하게 피력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인물 유수원,

개성 출신으로 평생 개성에서 살면서 벼슬을 하지 않고 양부가 물려준 재산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하고 살면서 경험론을 바탕으로 한 철학을 세운 인물 최한기.

 

 이 9명의 인물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또는 이론을 중시하는 주자학이 판치는 조선에서 독자적인 자신의 세계를 꿈꾸다 세상과 불화한 인물들이다. 물론 본인이 원해서인 경우도 있고, 당파에 밀려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주류보다는 이런 인물들이 도리어 세상을 바꾸고 사람답게 사는데 一助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책 한 권에 여러 명의 인물을 다루려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사상적 깊이를 들여다보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저자도 밝혔듯이 서양이나 중국의 다른 사조나 철학, 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비교해 봄으로써 그들이 이룬 학문적 成價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고 나서 '大學'에 나오는 '惡而知其美者' 이 말이 기억난다. 이익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싫어하면서도 그에 속한 좋은 점은 인정할 줄 안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말은 아니다. 지키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번 더 생각하고 곰곰이 새겨볼 말이다.

 

 자그마한 문고판 책을 연속해 손에 들었다. 내용도 충실하고 들고 다니며 읽기도 편해 좋다. 80년대 한동안 문고판 책이 유행을 하더니만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보기에 좋은 하드커버 장정의 책이 매대를 장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책값만 비싸고 무거운데... 그러더니 조금씩 실용적인 면을 감안해 이런 책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 반갑다.

 

 제목이 '책쾌 송신용'이다. '책쾌'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았다. 물론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려니 하는 짐작이야 하지만 서적 중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물론 단순히 책을 사고 팔도록 중개해 주는 역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름대로 서지학이나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전문적 지식이 갖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책쾌 송신용을 그리며 이렇게 표현한다.

 

 해방 후 송신용은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의 활약상을 보면 그를 단순한 서적 중개상으로 불러도 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는 서적 중개상이자, 학자이자, 문화 보존에 열렬한 관심을 보인 위인이었다.

 

 송신용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의 고서가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서적 중개상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보고 보충하고, 주를 달 정도였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학자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직업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늘 자신이 '책쾌'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리고 학연(휘문의숙)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인맥도 그가 책을 사고 파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이나 전형필, 박종화, 이병기, 오세창 그리고 종로에서 한남서림을 운영했던 백두용 등과 교류하며 비록 상인이기는 하지만 좋은 고서가 나오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것을 지키는데 공력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팔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 시대에 방법은 달랐지만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전 중에서 지금 그의 손을 거쳤기에 남은 것들이나 그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 필사를 했거나 출판을 했거나 - 것들을 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직업인 송신용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문가란 모름지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이 사람을 얼마만큼 자신만만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책의 홍수 속에 살면서 때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할 때 송신용 같은 안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안목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읽기 전에는 하나의 물건이 탄생하기까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노력이 들어가는지 그 과정을 그린 책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과 공기, 산림, 석유나 석탄 등 화석 연료, 그리고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의 지하자원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우리가 과연 지금 지구에 있는 것을 이렇게 함부로 소모해도 되는지 묻는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140%를 소모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많은 반성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나도 나름대로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무엇을 살 때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씩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커피 원두를 만들기 위해 물 140L가 들어가고, 여름에 입는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물 970L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 물건들의 가격은 제대로 책정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연히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배운 개념이 바로 '내재화된 비용'이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5,000원을 주고 마시면 그 비용은 외재화된 비용이 계산된 것이다. 내재화된 비용은 커피콩을 기르기 위해 농약을 주면서 오염된 지하수나 토질, 그리고 그 농약으로 인해 장기간 병에 시달리거나 아랫세대까지 유전적으로 고통 받는 근로자들의 문제 등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저자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건에 정당한 제 값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물건 값은 비싸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소비지향적인 삶이 지양되고 꼭 필요한 것만 사는 문화가 정착되며 더불어 쓰레기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이 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환경보호론자인 존 뮤어는 "어떤 것이든 그것 하나만 꺼내려 해도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이 함께 당겨져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 하나에도 엄청난 재화와 자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소박한 삶의 철학'의 저자 듀안 엘진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으로 말해서, 과잉보다 충분함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은 인간의 터전으로 우리를 되돌려준다. 가족, 공동체, 좋은 일, 좋은 삶의 옛 질서로, 숙련과 창조에 대한 존경으로, 일몰을 볼 수 있고 물가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으로,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는 공동체로, 그리고 수세대의 추억을 간직한 나의 마을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건을 덜 만들고 덜쓰기 위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과 물건을 더 잘 나누기 위해, 그리고 이 귀중한 자원들을 훨씬 덜 낭비하기 위해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다.'라고 하는 저자의 말이 귀를 울린다. 나 혼자 다운시프트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데 더 나아가 시민운동을 통해서 그런 삶의 방식이 확산되도록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