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주 높다란 그리움

 

이 상 훈 지음

 

  명사 ‘그리움’이란 사전적인 의미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사모의 정’이라고 한다. 이런 명사에 부사인 ‘아주’와 ‘높다’란 형용사를 덧붙여 ‘아주 높다란 그리움’이란 도대체 어떤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시집의 저자 이상훈은 생업과 별개로 단지 글 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저자의 책이 2000년 첫 시집이었던 ‘고향생각’이 20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고 첫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이 시집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 서재를 정리하다 50년 묵은 빛바랜 공책 몇 권이 담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누런 갱지 위에 대학 시절부터 쓴 시와 단상들이 빼곡했는데, 공백으로 남았던 한 시절이 채워지는 것 같아 기뻤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청춘의 비망록 같은 시를 마음에 전율을 느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옮기고 근작의 몇 편을 보태어 이 시집을 발간했다고 한다. 1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인(총 21편). 2부, 아직 피지 않은 꽃(총 22편). 3부, 부질없어 아름다움(22편). 총 65편의 아름다운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집의 첫 시인, ‘울어라 매미’에서 시인은 매미가 우는 것을 말리지 말라 한다. 그 이유를 한순간의 울음을 위해 팔 년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매미를 어린 시절 여름방학 곤충채집용으로 판에 박았던 기억으로 인해 매미의 울음이 유령처럼 허공을 떠 돈다고 한다. 매미는 자신이 다쳤을 때고, 힘들어 할 때도 함께 울어주었노라 한다. 그런 매미의 울음은 자신의 상처를 달래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매미의 상처를 달래주고 싶다고 한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통해 자신의 어릴 적 그리움을 끄집어낸다. 마지막 시인 ‘아버지의 차가운 손’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시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살아생전에 아버지의 손을 자주 잡아 주지 못했던 아쉬움을 ‘왜 따뜻한 아버지의 손을 잡지 못했을까’라는 싯구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들을 아버지가 무섭고 어렵게 느껴졌던 시인의 어린 시절 자신이 느꼈던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유독 말씀이 없으시고 표현함이 없으셨기에 더더욱 그랬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기다려주지 않고 돌아가셨기에 아제 아버지의 손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이상훈 시인의 시는 추운 날씨에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구수한 숭늉이나 아주 무더운 여름 날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냉수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시어(詩語)들로 채워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는 그런 시어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정말 지난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p. 104~105의 ‘기억과 추억’은 나의 지나온 인생이 기억도 있겠지만 많은 추억으로 점철 된 것들임을 깨닫고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거실에 앉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나의 지나 온 삶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일들과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추억들이 아주 높다란 그리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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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와인 사피엔스

 

김 준 근 지음

 

  그 누구도 술꾼을 혹은 주정뱅이를 좋아 할리가 없다. 유태인들의 경전 중 하나인 ‘탈무드’에서 ‘술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 세상에 최초로 난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을 때 악마가 찾아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인간이 "멋진 식물을 심고 있지"라고 대답하자 악마는 “이건 처음 보는 식물인데…” 하며 머리를 갸우뚱하자 인간은 악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주 달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지. 그리고 그 즙을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네.” 그러자 악마는 자기도 그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를 끌고 와서는 그것들을 죽여 그 피를 부었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다.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며,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토하고 뒹굴며 추해지는 것이다. 이는 술이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포도주에 진실이 있다(in vino veritas)”는 오랜 격언도 있다. 그래도 ‘와인’하면 뭔가 소주나 막걸리보다는 고급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와인 역시 술은 술이다.

  이 책은 와인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 한다. 소믈리에가 와인의 세계를 좀 더 쉽고 유쾌하게, 그리고 규칙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한다. 저자 김준근은 프랑스 국가 공인 소믈리에 자격증(Brevet Professionnel Sommelier) 보유자이다. 부르고뉴의 ‘Centre de Formation Professionnelle et de Promotion Agricole’를 졸업했다. 와인 강의와 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지만, 본업은 소믈리에다. 각 부분 부분에 Somm’s Tip(합계의 팁)을 수록하여 이 책을 읽기에 편리함을 더해 준다. p. 20에서 소믈리에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믈리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을 위해 일했던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는 직업으로 때로는 귀중한 화물 관리 담당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음료를 관리하기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역할이 조금씩 변해 온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을 위해 일해 온 직업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한다. 저자는 소믈리에가 모호한 경계 탓인지 어느 순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 직업적 ‘소믈리에’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레스토랑 혹은 바에서 와인을 비롯한 음료를 관리하며 판매를 책임지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일해야만 한다고 말한다(p 21). 현장 판매자라도 바에서 일하는 사람은 소믈리에(sommelier), 와인 숍에서 일하는 사람은 카비스트(caviste)라는 직업명이 있다고 한다.p. 50에는 세계적으로 내추럴 와인 붐이 일어나면서 재미난 라벨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와 함께한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있어 초보자들이 와인을 고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p. 59에서는 와인에서 떼루아(Terroir)는 와인의 주 원료가 되는 포도의 밭이 자리한 곳을 둘러싼 모든 자연환경을 의미한다고 한다. 떼루아에 따라 생산되는 포도의 맛이 다를 것이고, 그 맛이 다른 포도에 따라 와인 맛과 향 역시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p. 240에서 Somm’s Tip를 통해 대형 마트나 백화점 와인 숍에서의 공통적인 꼼수를 가르쳐 주고 있다. 상식 외의 할인율이 적용된다면 대부분 정상 가격의 기준 자체가 뻥튀기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자는 Prologue에서 ‘와인 허세꾼’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와인은 아는 것이 아니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허세로 말하는 와인이 아닌, 즐기면서 마시는 와인, 와인보다 맛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와인(wine)과 사피엔스(sapiens/현 인류)가 결합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현대의 사람들은 와인을 즐기는 인류라는 의미일까? 나는 알코올에 아주 약하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거나 즐겨하지 않지만 와인에 대한 관심은 많다. 이 또한 허세일까? 이 책의 저자가 밝히고 있듯 와인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면 나 자신은 한계가 있을 듯 여겨진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이라면 마시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이 저서를 통해 와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용어와 마시는 법 그리고 와인을 고르는 방법까지. 나는 가끔 알코올 도수 2% 정도의 와인을 찾을 때가 있다. 저혈압인 아내를 위해 래드 와인을 찾지만 알코올 도수 2% 정도의 래드 와인은 거의 없다. 가끔 화이트 와인 중 2%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샹그리아 즉 탄산이 함유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와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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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산책길

 

탁 승 관 지음

 

  명사 ‘산책’의 사전적 의미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멀지 않은 거리를 천천히 거닒. 산보(散步)”이다. 이런 명사에 ‘길’이라는 명사가 붙어 산책길이 탄생했다. ‘산책길’이란 책 제목이 고즈넉한 쉼을 생각나게 한다.

 

  탁승관 시인 역시 “고요함이 숲길에 젖으며 물들어갈 때 언덕 너머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따뜻한 햇살 머금은 산길을 나그네는 걷는다”고 시집 표지에 수록하였다. 이 시집은 시인의 세 번째 출간 된 책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펴내며 나그네에게 바치는 글로 시작을 한다. 부지런히 살아온 시인은 “쉼 마저도 나에게 맞는 옷을 부지런히 찾아 입을 수 있어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p. 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살아왔을 시인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하게 옹이처럼 박혀 있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이 시집에는 총 96편의 주옥같은 詩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 시집의 특징은 시인이 시를 지은 날짜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날 그날의 시심과 시상을 한자 한자 글로 풀어 시로 적어냈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88의 2021년 11월 2일에 쓴 ‘그리움의 그림자’라는 시에서는 2019년 말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휴가문화 트렌드가 생겨났음을 시로 풀어내었음을 보게 된다. 나 역시 긴 코로나 기간으로 인해 사람이 그리워지고 만남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별한 것은 p. 91 2021년 11월 4일에 쓴 시로 김형석 교수 백세일기 중에서 라는 부제가 붙은 ‘노인고(老人考)’라는 산문시다. 노인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여덟 가지를 통해 오늘의 깨우침의 글로 마무리 지은 것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p. 218의 ‘경춘선...’은 춘천 출신의 나에게 고향을 그리워하기에 충분한 시였다. 송어횟집과 닭갈비 집, 그리고 공지천과 의암댐 소양강 댐과 청평사 등 귀에 익은 특산물과 지역들이 등장함에는 나도 모르게 춘천에 와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이 시집의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간간히 흑백 사진이 함께 수록되었다는 것이다. 온통 컬러풀한 세상에 흑백의 사진 역시 고즈넉함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나그네 인생길에 하루의 삶을 일기 삼아 시로서 표현한 시인의 시는 천상병 시인에 인생을 즐거운 소풍으로 표현함을 생각나게도 한다. 사람의 인생 자체가 산책길이다. 인생의 목표를 ？i아 아등바등 살아가다가 어느덧 인생의 황혼 길에 다다라 인생이 산책길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시집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 시집을 이렇게 평하고 싶다. 나즈막한 산모퉁이를 따라 허리에 뒷짐을 지고 머리에는 밀집 모자를 쓰고 석양을 등지고 여유 있게 산보를 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마음 푸근하게 하는 시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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